[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과학기술대 대륙관] 1931년 일본 관동군의 만주침략 그리고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주변국 침략 이후 광산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1939년 풍수적으로 보기 드문 길지 불암산 자락에 한반도 광산 자원을 반출하기 위한 전문 인력 양성학교가 들어섰다.

▲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의 만주 침략       ▲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 발발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상 경성의 외곽인 경기도 양주군 공덕리였던 지금의 서울 노원구 공릉동. 이곳에 자리 잡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엔 교통과 보안이 유리했던 당시, 한반도의 광산자원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총독부 차원을 넘어 일본 본국의 의지로 마련된 교사들이 남아 있다.

조선총독부는 제2차 세계대전을 효율적으로 이끌기 위해 무기 생산이라든지 생약 개발에 매진하게 되고 두 개의 대학을 신설하게 된다. 하나는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고 하나는 경성광산전문 학교이다.

▲ 다산관(등록문화재 제12호) - 1942년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1호관으로 지어진 대규모 건축물로 해방 후 서울대 공대 본관으로 사용
▲ 대륙관(등록문화재 369호) - 1942년 경성광산전문학교 본관으로 건축돼 경성제대 광산학과와 함께 사용. 해방 후 서울대 공대 건물로 사용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광산전문학교는 경원선과 경춘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보안 유지에 용이하였던 곳이었다. 경성광산전문학교는 일제가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생산할 목적으로 조선의 광산 개발을 위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학교였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륙관은 당시 경성광산전문학교 본관으로 쓰이던 건물로 70여 년 전 건축 당시의 재료와 조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지금도 교수 연구실과 실습실로 사용되고 있다. 대륙관은 一자형 평면의 2층 조적조 및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본관 중앙의 4층부 탑은 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이고 권위적인 학교 양식의 표본이었다.

▲ - 자형 평면의 2층 조적조 및 철근콘크리트조 건물
▲ 본관 중앙의 4층부 탑은 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이고 권위적인 학교 양식 반영 ▲ 목조 트러스 구조의 대칭형 박공지붕

 

▲ 본관 좌우에 1층의 강당과 무도장(武道場) 배치

또한 건물 중앙에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게 설치한 포치와 경사형 통로는 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인 관공서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기도 하다.

▲ 건물 중앙에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게 설치한 포치와 경사형 통로

해방 후, 대륙관은 1946년 국립서울대학 공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가 1980년 서울대 공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現 서울과학기술대학교(前 서울산업대학교)가 사용하고 있다.

여전히 대학의 교사로 남아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대륙관.
하지만 학문적 연구보다 지배 도구로서의 기술교육만을 강요당했던 일제강점기 조선의 인재들. 조선의 인적 물적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세워진 대륙관은 그 오래된 모습과 함께 기억해야 될 우리의 역사이다.

<서울과학기술대 대륙관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188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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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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