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불행한 결혼 생활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제가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결혼할 날을 잡고 결혼 준비를 하는 중에 무언가 그 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거나 분명히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는데도 일정에 맞추어 결혼을 강행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내가 예민해서 잘못 느끼는 것이겠지’라고 자신의 지각을 부정하거나, ‘살다 보면 괜찮아지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이제 와서 결혼을 미루는 것은 (그 동안 제대로 확인도 안 해보고 결혼을 하려고 했음이 드러나는 것이) ‘창피해서’, 다른 분들에 대한 부모님의 ‘체면 때문에’, 자칫 ‘공연히 트집이나 잡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일단 정해진 일정에 따르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마치 자신의 인생이 아무렇게나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물론 결혼을 앞둔 시기는 여러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나타나기도 하고, 두 사람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 상당히 예민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닌 실수도 하고, 평소 같으면 쉽게 넘길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는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 결혼할 날짜가 가까울수록 크고 작은 불안감에 휩싸일 수도 있고, 상대에 대해서 미처 몰랐다가 새롭게 알게 되어 갈등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껏 문제가 되지 않았던 점들이 큰 문제가 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마다 일일이 문제를 삼는다면 제대로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말씀 드리려는 것은 단순한 불안감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미처 몰랐던 상대의 폭력성이나 상대 가족의 부당한 압력, 또는 습관적인 빚 등 결혼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실들이 나타났을 때를 말합니다. 또 그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좋지 않은 술버릇이나 맞지 않는 생활 습관 등 미처 몰랐던 점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때, 일부 어른들이 말하는,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괜찮아진다는 충고는 절대로 따를 것이 못됩니다. 이럴 때는 일단 결혼 진행을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그런 상대방의 문제가 고쳐지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면 결혼을 하십시오. 그러나 결혼하여 살면서 상대가 고쳐지기를 바란다면, 그 결혼은 포기하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가 부동산 계약을 할 때를 떠올려 봅시다. 위치는 어떤지, 볕은 잘 드는지, 물은 잘 나오는지, 심지어 주인집 성품은 어떤지 까지 세세하게 따지지 않습니까? 다른 것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집에 저당이 잡혀 있거나 벽에 곰팡이 얼룩이 발견된다면, 계약을 하던 중간이라도 중단하지 않나요? 또 하다 못해 작은 가전제품 하나를 살 때에도 인터넷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하면서, 이것저것 다 따져본 뒤에야 지불을 결정하지 않나요?

하물며 ‘결혼’은 그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부동산 계약이나 물건 구입 보다, 백 배 만 배 더 중요한 일입니다. 물건에 흠이 있으면 반품이라도 할 수 있다지만, 결혼이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런데도 충분히 따져 보지 않거나, 심지어 문제점이 발견되었는데도 ‘좋은 게 좋은 거니까’라는 심정으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박’을 넘어선 ‘잘못’입니다. 아마 (그런 게 있다면) 인생에 대한 ‘방관죄’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혹시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결혼할 수 있다는 거야?” 라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행복히게 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결혼을 말리려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결혼을 결정하지 말라는 점입니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원하지 않은 상황을 겪어야만 하는 경우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배우자 선택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문제에 대하여 두 사람의 인식이 같아야 합니다. 당신이 심각하게 여기는 문제를 상대는 전혀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 해결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함께 풀겠다는 인식을 가지는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 후에는, 그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당신 두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성실할 것인지를 예측해봐야 합니다. 이 점만 확인할 수 있다면 그 문제가 경제적 어려움이든 고부갈등이든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와 상관없이 당신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행복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 편에 기고한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태도에 대하여 에서 찬규씨와 채영씨 이야기를 살펴 봅시다.

찬규씨는 카드 빚 문제에 대하여 여자친구에게 사실대로 알려야 합니다. 그 후 여자친구가 찬규씨의 금전적 사정을 배려하여 데이트 비용을 줄이자고 한다면 찬규씨는 그 문제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여자친구에 대한 고마움으로 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자친구가 찬규씨를 탓하기만 한다면, 그 여자친구는 찬규씨에게 좋은 결혼 상대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채영씨는 남자친구에게 헤어지거나 치료를 받으라는 식의 선택을 요구하는 대신, 서로가 원하는 배우자상에 대하여 함께 의논해야 합니다. 남자친구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다르거나 채영씨가 불안해 하는 점을 풀어주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채영씨는 남자친구가 변하기를 기대하는 대신에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에서 당신이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즉 그 사람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거나, 혹은 풀리지 않더라도 함께 견뎌내기를 바라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에 변함이 없다면,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당신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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