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진형의 철학과 인생] 정론직필의 언론인을 꿈꿨을 때다. 당시 심지는 강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문장력의 밑절미는 여렸다. 당장 무얼 해야 할지조차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물어물어 어느 한 카페를 알게 됐다.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아랑’. 이쪽에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이트라고. 거기서 다양한 정보와 경험담을 들었다. 각종 신문사 면접 후기하며 공부법 및 취재 노하우 등등.

그 카페에서 좋은 글 하나를 봤다. 언론고시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라며 줄잡아 백 권 정도의 목록을 정리해 놨다. 사회며 정치며 심지어 심리학, 문학까지. 매스컴 분야로는 네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론 중심의 책들. '공부할 게 이렇게도 많다니’ 푸념도 일어났지만,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는 사명감도 동시에 들었다. 매일 같이 출근길에 오르는 회사원처럼 집 앞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열독했다.

속도는 제법 붙는 것 같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어디 여행이나 나들이를 떠날 때 중요한 물건 하나를 두고 온 느낌이랄까. 온갖 이론을 머릿속에 우겨넣었지만, 허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시 하나를 읽게 됐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한 걸음이라도 방향이 올바르면 결국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함의가 담겨져 있었다.

시를 내 삶에 적용해봤다. 맹목적으로 달음질을 친 것 같지만 귀중한 무언 가를 놓쳤다는 회한이 밀려왔다. 정작 중요한 기자로서의 본령을 깨닫지 못했다. 윤리 의식 등 기본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성찰도 부족했다. 진중하지 못했고 경박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아직도 해당 카페에는 논술 스터디, 신문 읽기, 토론 모임 등 취업과 연계된 활동만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자 윤리에 대해서 논하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었다. 관련 책을 추천하는 사람은 더더욱. 언제나 긴 것은 직선이다. 정정당당하지 않는 것은 오래 가지 않을 텐데.

늦었지만 '미디어 윤리’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여러 가지 보도 원칙이 세밀하게 잘 소개되어 있었다. 비밀촬영 금지, 인권 보호, 광고성 기사 자제 등. 당연한 내용이었지만 당연하지 않았다. 생경한 느낌. 아직 훈련이 덜 됐나 보다. 아는 선배나 지인들이 말하길 유력 일간지의 기사를 필사하라고 한다. 기자의 정신과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기사를 그대로 베껴 쓰면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할 수 있다고. 금과옥조처럼 믿었던 말이 언제부턴가 차츰 깨지기 시작했다.

신문 기사가 예비 언론인의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흥미 본위의 제목. 클릭해보면 제목과 다른 본문. 재난 현장에서 유가족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클로즈업으로 찍은 사진들. 몰래카메라로 찍은 영상으로 한 기업인의 치부를 들어낸 것. 최근에는 정치인의 개인적 사담까지 공론화를 시켰다. 사적 영역까지 탐하는 카메라의 폭력성, 무소불위의 언론 권력. 책에서 본 원칙들이 현장에서는 무참히 짓밟히고 찢겨져 오염된 종잇장이 돼버렸다. 사계절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가 저 멀리서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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