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파탄주의 이혼법 하에서는 유책성의 유무와 무관하게 이혼이 허용되어야 하는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하여 이를 긍정하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며 이른바 축출이혼이 가능하게 되어 약자인 여성의 지위를 열악하게 한다는 이유로 원칙적으로 부정하되 예외적으로 긍정하는 견해가 유력하지만, 이를 부정한다면 자유의사를 기초로 하여야 하는 혼인의 계속을 강제하게 된다는 점을 이유로 이를 긍정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리 법원은 기본적으로 유책주의 이혼법제를 취하고 있지만, 최근들어 하급심에서 파탄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판결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18년 동안 아내와 별거하고 내연녀와 동거한 남편이 자녀들에게 1억원 정도를 지원한 사실은 있지만,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남편의 이혼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사안이 있어, 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찰관이던 갑(78)은 1969년 부인 을(73)과 결혼해 슬하에 자녀 3명을 뒀지만 1992년 바람이 났고 퇴직 후인 1998년 집을 나가 내연녀와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을은 건물 임대료 등으로 혼자서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갑은 1999년 아내 명의로 된 건물이 "부부 공동재산"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낸 데 이어 이듬해 이혼소송까지 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갑은 두 소송 모두 패소하였습니다. 법원은 "건물은 을이 개인적으로 모은 재산으로 산 것"이고, "유책배우자인 갑의 이혼청구는 인정될 수 없다"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난 2014년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은 갑은 다시 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갑은 "건물은 부부공동재산이고, 혼인 파탄 책임도 을에게 있다."며 이혼과 재산분할, 위자료를 청구하였습니다.

1심 법원은 갑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이되, 나머지 재산분할과 위자료 청구는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18년 동안이나 별거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을이 갑의 내연녀에게 득이 될 것을 우려해 이혼에 불응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인용 이유를 밝혔습니다.

을은 이에 불복하여 2심 법원에 항소하였고,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갑이 을를 상대로 낸 이혼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을이 종전 이혼소송에서 현재까지 일관되게 이혼을 원하지 않고 있고 자녀들 또한 마찬가지"라며, ​"갑과의 혼인관계에 애착을 갖고 혼인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어 을이 혼인을 계속할 의사 없이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갑은 자녀들의 유학자금과 결혼자금을 1억원 가량 지원한 것 외에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아내 명의의 건물에 대한 지분을 계속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갑이 자신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을과 자녀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했다고 보기도 어려워 갑의 이혼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설명하였습니다.

2심 법원은 18년 동안 아내와 별거하고 내연녀와 동거한 남편이 자녀들에게 1억원 정도를 지원한 사실은 있지만,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남편의 이혼청구는 허용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은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민법 제840조 제6호 이혼사유에 관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아니하는 종래의 대법원판례를 변경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유책주의를 유지하면서도,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따른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는 물론,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 판단할 때에는, 유책배우자 책임의 태양ㆍ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연령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기간, 부부간의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의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ㆍ사회적ㆍ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ㆍ교육ㆍ복지의 상황,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며 유책주의의 예외를 인정하였습니다.

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에 따라 유책주의의 예외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에서 갑이 18년간 아내와 별거하고 내연녀와 동거하면서 자녀들에 대한 양육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자녀들의 결혼자금과 유학자금으로 1억원 정도를 지원하였으나, 이것만으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할 정도의 유책성 상쇄의 요소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앞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될 정도의 유책성 상쇄의 정도에 대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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