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김자현의 시시(詩詩)한 이야기]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정호승 시, '서울의 예수' 부분-

믿음이 깨지고 드러난 이면의 모습이 추하고 역겨우면, 도피를 생각하게 된다. 인도에서 교환학생 중이고 잠시 네팔에 온 나는, 한국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한국 갈 날을 세는 일이 두렵고 싫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내부자'들의 '부당거래'를 숱하게 접한다. 그래도 늘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영화의 내용이 영화 밖에서도 그렇게 극적으로 실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런 믿음.

얼마 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서울청 운전병으로 전출 된 것에 대해 특혜 의혹이제기 됐다. 서울청 국감에서 경찰은 '코너링이 좋았다'는 해명을 내 놓았다. 처음 짧은 관련 기사를 접했을 땐, 떳떳하기만 하다면 운전을 잘 해서 운전병으로 뽑았다는 것이 왜 그리 어이없고 우스운 일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물론 전보 제한 규정을 어기면서 전출 된 것을 알고 난 후엔 생각 속 나름의 변호를 거뒀지만, 섣불리 단정 짓고 싶지 않았던 건 그래도 사람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이어서 '비선실세'라는 수식어를 단 최순실과 그녀의 딸 정유라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사가 쏟아지는데, 하나 같이 영화 같다. 내 상식선을 넘어서는 통 큰 특혜, 통큰 비리다.

정씨의 특혜 의혹들을 따져보면 정말로 믿고 믿어 '우연' 혹은 '운'이라 할 수 있는 건 정씨의 대입 시기에 체육특기자 선발규정이 바뀐 것, 또 그녀가 그중 유일한 승마특기자로 입학 한 것까지 인듯하다.

그러나 이후 제적을 경고한 지도교수가 최순실의 학교 방문 후 교체되었다. 학사규정은 바뀌고 소급 적용되어 정씨의 0점대 학점이 3점대로 올랐다. 출석만 봐도 F학점이라던 그녀가 밤을 새워 작업해 과제를 낸 학생보다 나은 점수를 받았다.

직접 만든 의상이 필요한 수업에 의상 없이 갔고, 쇼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점수를 받았다. 어떤 교수는 과제가 첨부되지 않은 메일에 존댓말로 칭찬과 격려가 담긴 답장을 보냈고, 과제를 도와줄 멘토를 직접 소개 해 주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다 운이나 우연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의혹들이 음모나 누명은 더 더욱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사퇴했다. 사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추진'으로 인한 사퇴압박은 80여일 전 부터 있어왔고, 그 동안은 잘 버텼다. 그런데 정유라 특혜논란이 불거지자 버티던 것을 이유로 들어 사퇴했다. 끝끝내 특혜는 없었다고 말하며.

▲ 사진=mbc 뉴스 화면 캡처

아마 (더 윗선이 있다면) 윗선과 총장은 총장직 사퇴가 이 특혜 논란의 종식과 맞닿은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이화여대'의 것으로 축소시킬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이 문제는 이화여대만의 것이 아니다. 특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로 부패한 권력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고, 깨진 신뢰와 실망, 부끄러움 따위는 국민의 몫이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거나 원하는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한, 그리고 노력 중인 사람들이 최순실과 정유라 앞에서 느낄 허무감은 크다. 학문을 굽혀 권력에 아부한 몇몇 교수들로 인해가치가 바닥에 떨어진 교육의 모습은 참담하다. 교육현장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에 ‘나는 못가는’지름길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은 사회를 박탈감의 늪에 빠트린다.

설마 설마가 결국 사람을 잡고, 영화 속 과장이 실재가 되고, 믿어 온 도끼는 결국 발등을 찍는다. 간절한 자들을 불행하게,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렇듯 불신과 허무, 박탈감을 '창조'하니, 정말로 '대한민국 청년이 다 어디 갔냐고' 할 정도로 한국에 있고 싶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