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자를 위한 만가(輓歌) [김나윤 칼럼]

소설 ‘위대한 개츠비’ 김나윤 청춘칼럼니스트l승인2016.11.07l수정2016.11.0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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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김나윤의 베짱이 ‘문화찬가(撰加)’] 개츠비는 왜 위대한 것인가. 많은 작가들이 텍스트의 제목을 고민하는 것도, 독자들이 텍스트 해독의 실마리를 그 제목에서 찾는 것도 필연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 개츠비가 진정으로 위대한 것인가, 위대하다면 무엇이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인가가 독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혹자는 개츠비의 이름 앞의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삶을 풍자하기 위한 수식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개츠비의 진정한 열정이 작가가 말하고자 한 ‘위대함’의 맨얼굴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작가 피츠제럴드는 처음부터 작품의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로 짓지 않았다. 개츠비라는 이름을 따르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는 오랜 고민과 많은 시행착오 끝에야 정착하게 된 것이다.

▲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 이미지

개츠비의 이야기는 건조하게 풀어내자면,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의 사랑을 그리며, 부정한 방법도 마다않고 부를 축적하며 살아가다가, 결국 여자 남편의 정부를 살해한 죄를 여자 대신 뒤집어쓰고 종국에는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받는다면 이런 부박한 이야기가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서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개츠비의 이야기는 수차례 영화로 재창작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까지도 읽히고 있는 유효한 텍스트이다. 비평가들이 ‘울트라 모던’한 텍스트라고 부르듯, 한 문장도 가볍게 쓰지 않고 촘촘히 복선이 배치된, 작품 자체로 상당히 견고하게 짜인 텍스트이다. 그 형식의 견고함에 많은 감명을 받았지만, 그것이 이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을 모두 설명해주진 못한다. 또 혹자들이 말하듯, 단순히 1920년대 화려하고 쓸쓸한 미국의 단면만을 보여준 것이라면 왜 이 텍스트는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한 텍스트인 것일까. 왜 1920년의 개츠비의 이야기가 2016년에도 다시 읽히며, 공명을 주는 것일까.

▲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 이미지

사실상 작품 전체에서 개츠비의 목소리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친구 닉 캐러웨이의 독백만이 개츠비의 이야기를 펼쳐놓을 뿐이다. 화려한 저택과 색색의 양복, 파티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은 모두 ‘데이지와의 사랑’이라는 개츠비의 꿈을 위한 도구들에 불과했다. 개츠비는 데이지와의 사랑이라는 그 녹색 빛을 부여잡기 위해 결코 낭만적이고, 영웅적이지 않은 방법들로 노를 저어왔다. 무지개를 찾아 지평선까지 다다른 아이의 허망함처럼, 강가 너머의 녹색빛은 있지도 않았던 듯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단순히 데이지가 톰을 선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데이지가 개츠비를 선택했다고 해도, 녹색 빛을 좇으며 그려온 환상 속 데이지는 현실의 데이지가 될 수 없다. 데이지는 개츠비를 위한 단 하나의 히로인이었지만, 결국 돈에 살고 있는 ‘썩어빠진 녀석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그릇된 전념 방식과 허상이었던 꿈은 개츠비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더 빨리 달려 팔을 더 길게 내뻗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뒤로 물러가고 있는 녹색 불빛을, 그 격정의 미래를 굳게 믿었던’ 개츠비의 삶은 영웅의 숭고함과는 다른 큰 울림을 남긴다. 그 삶의 끝이 화려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무이지만, 물가 너머의 녹색빛을 바라보는 개츠비의 모습이 깊은 잔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 이미지

텍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츠비의 삶의 가치를 인정해준’ 닉의 목소리로만 진행된다. 그래서 그의 시선이 왜곡될 수 있으며, 그것이 개츠비를 보다 환상적으로 만드는 장치라고들 말하지만, 철저히 닉에 입각하여 본 텍스트는 낭만주의자를 보내는 이의 만가(輓歌)와 같다.

“그들은 썩어빠진 녀석들이에요!” 나는 잔디밭 너머로 소리쳤다.
“당신은 그 못난 놈들 전부를 합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어요!” 나는 그때 내가 그 말을 한 것을 지금까지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말은 내가 그에게 보낸 유일한 찬사였기
때문이다. (출처 : F.S.피츠제럴드(유혜경 옮김), 『위대한 개츠비』, 소담출판사)

김나윤 청춘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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