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김자현 칼럼]

김자현 칼럼니스트l승인2016.11.09l수정2016.11.1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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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푸르나(Annapurna) : 네팔의 히말라야 중부에 있는 연봉(連峰). 서쪽으로부터 제1봉(8,091m) ·제3봉(7,555m) ·제4봉(7,525m) ·제2봉(7,937m)의 순서로 이어지며,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사진(김자현 칼럼니스트) :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Annapurna Base Camp)

[미디어파인=김자현의 배낭을 메고] 심장이 빨리 뛰는 느낌이었다. 홀린 듯, 빨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그리고 마주한, 도시의 끝에 맞닿은 설산. 

설렜다. 나는 더워서 반팔을 입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저 산은 얼마나 다른 세상인지 녹지 않는 눈이 쌓여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이 보이는 신비. 네팔 포카라에서 본 안나푸르나의 첫 인상이었다.

올 8월에 인도에서 한국인 여행자들을 몇 만났는데, 우연히도 그때마다 인도를 지나 네팔로 간다는 사람들이었다. 9월까지의 우기가 지나면 10월부터는 곧 히말라야 트레킹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리고 맞이한 10월이었다. 얘기를 들을 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10월이 되니 마음이 동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언제 갈 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마음을 거들었다. 마침 학사 일정에 여유가 생겼다. 충동적으로 네팔로 넘어가는 국제버스를 예약했다. 델리(Delhi)에서 꼬박 32시간 버스를 타고 가니 네팔(Nepal), 포카라(Pokhara)였다.

No포터 No가이드 No일행
내가 선택한 트레킹 코스는 해발 1050m의 나야풀(Nayapul)에서 출발해 해발 4130m의 ABC(Annapurna Base Camp)까지 가는 6박 7일 코스였다. 준비 차 먼저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다는 한국식당에 갔다. 다녀온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니, 대부분 짐을 들어주는 포터(Porter)나, 길을 알려주는 가이드를 고용하라고 했다. 안전상의 이유였다.

산 속에서 길을 잃을 지도 모르고, 또 고산병이 올 수도 있다하니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하루에 25달러 정도를 지불해야한다는 게, 내겐 부담이었다. 고심 끝에(사실 애초에 답은 정해져있었던 것 같다), 결국 포터와 가이드 없이 트레킹을 가기로 결정했다. 대신 동행을 구해보려고 했다. 성수기라 하니 일정이 맞는 한국사람 한 명 쯤은 포카라에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없었다. 의도치 않게, 혼자 트레킹을 시작했다.

만끽
혼자 맞이하는 시작은 떨렸다. 그러나 막상 걸음을 떼니 어떻게든 헤쳐 나갈 길이 보였다.

길을 모를 때는 그 자리에서 잠시 쉬었다. 그러면 으레 길을 물어볼 사람이 나타났다. 걱정했던 고산병은 다행히 내겐 오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여서, 트레킹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더디게 걷고 싶을 때 더디게 걷고 빠르게 걷고 싶을 때 빠르게 걸었다. 다리가 아프면 그 자리에 앉아 쉬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다. 일정이 늦어져도, 혹은 일정을 마음대로 바꿔도 미안할 일이 없었다. 누군가와 발맞추어 걸을 필요 없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만끽’이었다.

▲ 사진(김자현 칼럼니스트) : 간드룩(Ghandruk)에서 콤롱(Komrong)가는 길

아침엔 늘 일찍 눈을 떴다
산속에서는 새벽이 늘 맑았고 점심이 가까워질 때쯤 다시 구름이 꼈다. 트레킹 첫날 간드룩(Ghandruk)에 숙소를 잡고 나니 구름이 짙었다. 저녁엔 비가 조금씩 내렸고, 산 저편에선 천둥번개가 쳤다.

이튿날 새벽 5시, 날씨가 어떨지 몰라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간밤에 무슨 일이 다시 있었는지 새파랗게 맑은 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 왼쪽엔 안나푸르나, 오른쪽으로는 마차푸차레(Machapuchare)의 모습이 우뚝하다. 이날 아침에 본 풍경을 잊을 수가 없어서, 트레킹을 하는 동안은 아침에 늘 일찍 눈을 떴다. 잠자고 싶은 마음보다 매일 아침 맑은 하늘 가운데 드러나는 설산을 마주하는 설렘이 더 컸다.

내리막
트레킹 중에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났다. 둘째 날엔 그중 마魔의 구간 이라는, 콤롱(Komrong)에서 촘롱(Chomrong) 사이를 지나야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오르막을 오르기 전 내리막이 나오고, 그 후 만나는 오르막에서 ‘1시간 30분정도 심장을 터지기 직전까지 혹사’ 시킨단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정작 힘들었던 곳은 오르막 전에 지나야 했던 긴 ‘내리막’이었다. ‘힘들다’는 것이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오르막에서 땀이 더 많이 났고, 허벅지가 아팠고, 숨을 더 헐떡였지만, 내리막에서는 이상하게 ‘지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기분 탓이었다. 가파름과 관계없이, ‘내리막’이라는 단어는 자꾸만 ‘수월함’을 기대하게 했다. 기대가 깨진 자리에 실망은 더 아픈 법이어서 그 내리막이 유독 힘들게 느껴졌던 것이다.

잠자리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출발지가 제각각 달랐던 사람들은 한곳으로 점점 모여들었다. 반면 물품 조달이 어려운 탓에 숙소(Lodge)는 점차 줄어들었다. 3일차, 해발 3200m의 데우랄리(Deurali)부터는 방이 충분치 않았다. 개인실은 대부분 가이드를 통해 예약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예약을 했을 리 없는 나는 도미토리(Dormitory,공동숙소)에 묵었다.

개인실이나 도미토리나 특별한 난방장치는 없었다. 건물은 오로지 바람을 막아주는 용도였다. 저녁엔 두텁고 무거운 이불 한 채를 줬다. 가져간 침낭 속에 먼저 들어간 후 무거운 이불을 덮으면 그런대로 아늑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숙소가 식당을 겸해서, 끼니를 해결했다. 산 아래에 비해 물가가 4-5배 정도 비쌌지만 이 산속에 재워주고 먹여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 사진(김자현 칼럼니스트) : 데우랄리(Deurali) 공동숙소

계절이 바뀌는 꿈
계절은 산 아래에서 시간의 흐름이었지만 산 속에서는 높이의 차이이기도 했다. 산 아래는 여름이었는데 해발 3000m에 이르니 가을이었고, ABC(Annapurna Base Camp)는 이른 겨울이었다. 데우랄리 부터는 오르막을 올라도 땀이 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기모바지와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해가 비치는 낮은 다시 조금 따뜻했지만 해는 일찍 졌다. 완전히 구름 속에 둘러싸인 ABC(Annapurna Base Camp)의 저녁은 가지고간 모든 옷을 겹쳐 입어도 추웠다. 내복부터 바람막이까지 5벌을 겹쳐 입고도 패딩점퍼를 가져오지 않은 게 아쉬웠다. 짧은 시간에 크게 변한 내 옷차림을 보며, 계절이 바뀌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감탄하는 것이 일인 시간
ABC(Annapurna Base Camp)에 도착한 날은 구름이 짙어 주변을 볼 수 없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새벽과 아침에만 맑은 날씨를 원 없이 만끽하자는 생각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을 때, 차가운 바람이 뭉텅, 얼굴을 감쌌다. 그럼에도 나는 잠이 덜 깬 것 마냥 기분이 몽롱했는데, 그건 앞에 펼쳐진 믿기 힘든 풍경 탓이었다. 구름의 막연함이 갠 새벽, 안나푸르나는 상상보다도 훨씬 눈앞 가까이에, 거인처럼 크게 서 있었다. 

이날 사람의 불빛 없이도 산을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마침 달이 산 너머로 넘어간 시간이었다. 덕분에 별은 어둠속에서 촘촘히 빛났고, 만 년 동안 녹지 않았다는 눈은 그 별빛을 다시 반사해 흰 봉우리를 드러냈다.

우주를 상상했다. 나는 점처럼 작았고 나를 둘러싼 산과 발밑으로 깎아지른 협곡은 끝이 없었다. 추위는 뒷일이었다. 동이 트고도 한참을 그 풍경과 마주했다. 굳이 말하자면 ‘감탄하는 것’이 일이고 목적인 시간이었다. 어둠속이면 어둠속에서, 해뜰녘이면 해뜰녘대로, 해 뜨고 나서는 해 뜨고 난 모습 그대로가 경외로운.

사진을 많이 찍으려고 카메라 배터리를 아끼고 아껴가며 올라왔는데, 정작 ABC(Annapurna Base Camp)에서는 사진을 몇 장 찍다가 말았다. 아무리 찍어보려고 해도 내가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카메라로 온전히 다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 사진(김자현 칼럼니스트) : 새벽 4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완만한 길을 오래 걸었다
해가 다 뜬 늦은 아침에, 생강차 한잔을 마시고 배낭을 멨다. 한참을 봤어도, 안나푸르나를 뒤로하고 내려간다는 건 힘든 일 이었다. 조금 내려가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ABC(Annapurna Base Camp)에서 1시간을 더 있다가 걸음을 뗐다. 오래 봤어도, 내려가는 동안 몇 번을 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MBC(Machapuchare Base Camp)까지 이어지는 그 완만한 길을 오래 걸었다. 내려가는 일정이 2시간이나 지체되어서 오후에 애를 먹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트레킹은 탈 없이 끝났고, 내려와서 다시 위를 생각한다. 산위에서 날이 너무 추워져 도저히 씻을 엄두가 나지 않는 때, 내가 여기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고생을 사서 할 생각은 전혀 아니었고, 멋진 풍경사진을 얻고자 했다면 온라인 검색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얼마 전 본 기사에서, 기업 인사담당자가 말하는 불필요한 스펙으로 ‘극기’를 뽑았다니 스펙도 못될 것이다. 그러니 굳이 말하자면, 마음이 동해서 발길이 따라왔고, 다행이 그럴 수 있는 때였다.

정직한 시간이었다. 막상 와서 경험한 것들을 마냥 좋았다고 포장하지 않겠다. 힘든 것은 그냥 힘든 것이었고, 아름다운 것은 그냥 아름다운 것이어서, 굳이 이 말들을 ‘좋았거나 싫었다’고 재포장 할 필요 없는 시간이었다.

대신, 시간에도 무게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시간을 잘 잊히지 않을 시간이라 한다면, 10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오가는 길 위에서 나는 무거운 시간을 살고 있었다.

김자현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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