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안용갑의 와인이야기]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와인은 첫째 알코올 농도와 산도가 높아야 한다. 즉 포도의 당도와 산도가 높아야 한다. 이 점은 절대적으로 포도가 자라는 환경 즉 테루아르에서 나온다. 햇볕이 잘들고, 배수가 잘되며, 수확기에 비가 없어야 하며, 단위면적당 당 수확량이 적어야 한다는 등 조건을 갖춘 포도밭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더운 지방의 포도는 당도가 높고 산도는 낮고, 추운 지방의 포도는 당도가 낮고 산도가 높다.

예를 들어 프랑스라면 알자스, 상파뉴, 루아르의 포도는 당도가 낮고 산도는 높을 것이고, 론이나 랑그독의 포도는 당도가 높고 산도가 낮을 것이다. 중간에 있는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이 옛날부터 유명한 이유는 당도가 높고 산도도 높은 와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기후(Micro climate)에 따라서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더운 지방이라도 밤의 기온이 시원하다면 산도가 높아질 수 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산도는 산의 함량이 아니고 산의 해리도로 나타나는 수소이온농도 즉 pH를 말한다. 이수치가 낮아야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둘째는 타닌 함량이 높은 와인이라야 한다. 즉 이런 좋은 조건을 가진 포도를 사용하여 와인을 만들 때 타닌을 많이 추출해야 한다. 타닌은 추출 과정 중 껍질과 씨에서 우러나오고 오크 숙성 중에 더해지기도 한다. 이 타닌은 항산화제로서 작용을 하기 때문에 나무통이나 병에서 오래 숙성시킬 수 있는 레드와인은 영 와인 때 타닌 함량이 많아야 한다. 나무통과 병 숙성 중 타닌은 자기들끼리 또는 색소 분자와 중합체를 형성함으로써 떫은맛이 부드러워지고 붉은 보랏빛에서 벽돌색으로 색깔도 변한다. 오래된 레드 와인의 색깔이 옅은 것은 색소분자가 침전을 형성하여 병 밑에 가라앉기 때문이다.

와인 애호가들이 즐기는 병 숙성 중에 형성되는 관능적인 특성은 병에서 생기는 부케로서, 여러 가지 향이 서로 반응하고 오크 숙성에서 생기는 향까지 더해져서 나오는 다양하고 층층이 숨어 있는 일련의 향을 말한다. 타닌과 다른 성분이 반응을 하면서 와인에 녹아있는 소량의 산소와 헤드스페이스에 있는 산소를 소비하기 때문에 주병 후 한 달이면 병 내부는 산소가 없는 상태가 된다. 이때가 레드 와인에 있어서 산소가 배제된 상태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는 첫 단계다. pH가 낮을수록 이런 병 숙성이 늦어지고 이렇게 늦은 반응이 훨씬 더 복합적인 바람직한 최종산물을 낼 수 있다. 병 숙성은 새로운 차원의 복합성을 더할 수 있다.

셋째는 보관 조건이 적합해야 한다. 와인을 오래 보관하려면 낮은 온도(13~18℃)에서 일정한 온도로 보관해야 하고 온도가 낮을수록 숙성이 더디며 궁극적인 복합성은 더 커진다. 반면, 온도가 높으면 숙성이 빨라지고 아차하면 전성기를 지나칠 수도 있다. 그리고 온도의 변호가 심하면 와인의 팽창과 수축으로 코르크에 힘을 가해 밀봉력이 약해져서 신소가 병 속으로 유입되어 녹고 와인이 오염될 수도 있다. 또 어두운 곳에서 보관한 와인은 빛이 와인에 있는 단백질과 반응하지 않아서 혼탁을 유발하지 않으며 광산화반응도 촉매하지 않는다. 숙성이 천천히 진행되고 진동이 없는 곳에서 와인의 전성기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한 큰 병에 보관하는 것이 더 높음 복합성과 품질을 얻게 된다. 작은 병에 비해 큰 병에 있는 와인은 어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큰 병에서 숙성시키는 것이 훨씬 더 복합성을 얻을 수 있다. 375ml와 1,500ml 병을 비교해 보면 병목에 있는 공기의 양은 거의 같지만 와인의 부피는 4배나 차이가 난다. 이것은 작은 병에 있는 와인보다 큰 병에 있는 와인에 산소가 덜 녹아 있다는 뜻으로 큰 병에 넣어서 숙성시키는 것이 산소와 관련된 반응이 훨씬 적다는 말이다.

대부분 와이너리에서는 레드, 화이트 모두 코르크로 밀봉하기 전에 헤드 스페이스에서 질소가스를 주입시켜 매그넘과 하프 사이즈 사이의 녹아 있는 산소의 양 차이를 줄이기도 한다.

경매에서 비싸게 팔리는 와인이 대부분 매그넘 사이즈인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그러나 매그넘 사이즈보다 더 큰 병은 코르크도 큰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효과는 없다.

▲ 안용갑 힐링포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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