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현재 우리나라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혼례 문화입니다. 혼례 문화라고는 하지만 더 솔직하게 말하면 결혼 전후의 빚잔치라 해야 할 것입니다.​ 과도한 결혼 비용으로 인한 ‘허니문 푸어(Honeymoon poor)’라는 말도 생겨날 정도이니 말입니다.

결혼식과 혼수를 준비하면서 양가 간에 신경전을 벌이게 되고, 그 갈등 때문에 혼담 자체가 취소되거나 신혼 기간에 갈라서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또 결혼을 하면서 각자 마련한 물품과 금액을 기록하여 남겨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생이란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니까, 혹시나 이혼하게 될 경우까지 철저히 대비하려는 영리한 속셈이지요.​

그런데 과연 이 사람들이 그런 목록보다 더 중요한 결혼 생활과 사랑에 대해서는 얼마나 준비하는지는 참으로 염려스럽습니다. 또 결혼을 하는 당사자나 부모들 중에는 자신의 형편보다 남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생활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결혼 2년차인 미애씨가 상담을 청했습니다. 미애씨는 신혼 집이 시댁과 가까워서 시어머니가 손자를 보고 싶다면서 불쑥 들르거나 자주 오라고 하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신랑을 데려올 테니 자신의 불편한 사정을 신랑이 알아듣게 말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실 신혼 집은 시부모가 마련해준 것이었습니다. 친정 부모의 도움을 받아서 시집과 좀 먼 곳에서 살고도 싶었지만, ‘집은 남자가, 살림은 여자가’ 준비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세태가 그런 식이니 미애씨를 탓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집이든 친정이든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요? 시부모에게 집을 사달라고 했으면서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편한 대로 살겠다고 한다면, 너무 철없는 생각입니다.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고 싶다면 그 독립을 위한 고통도 감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제가 미애씨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 미애씨는 더 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 상대로 부잣집 출신이거나 적어도 전문직에서 일하는 상대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역시 그런 상대와 결혼을 하면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클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경제적 안정을 확보할 수는 있다고 해도, 일반적인 수준을 넘는 부잣집이나 전문직업인 즉 판검사나 정치인 혹은 연예인 등과 결혼하여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 까지는 미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공의 수련 중에 결혼을 한 후배가 있습니다. 이 후배는 외과 수련의였기 때문에 연애기간에는 물론 결혼 후에도 퇴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신랑이 전문의가 되어 대학 교수가 되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다른 과 의사들도 그렇지만 특히 외과 의사인) 제 후배는 전문의가 된 후에도 신부가 기대한 만큼 많은 돈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또 응급 수술이나 학회 등 여러 모임으로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실망한 신부가 불만을 말하면 이 후배는 가뜩이나 피곤한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여겨서, 두 사람은 부부싸움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신혼이 지나기도 전에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정황만을 보자면, 신부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려주지 못한 제 후배의 잘못이 큽니다. 하지만 의사와 결혼하면 여유 있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 신부도 딱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배우자의 직업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생활 방식이나 습관은 고려하지 못한 채 결혼을 하면, 생각지도 못한 불행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전문직종이나 특수한 직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은 일반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여느 직종의 사람들과 달리 일정한 출퇴근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귀가한 후에도 업무 처리를 계속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도 어렵고, 출장은 자주 다니면서 가족휴가는 계획 조차 어렵습니다.

또 보통 사람들과 차별되는 경제력이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생활에 걸맞은 행동 방식이나 성품이 함께 계발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정보다 사업이나 사회적인 성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거나, 때로는 옳지 않아 보이는 일도 강행할 정도로 냉정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 어떤지, 또 그에 따라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준비를 단단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물론 이런 상황은 정 반대의 경우에도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출신 배경의 차이 때문에 싸우게 되더라는 경우 말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식사나 휴가를 꼭 같이 해야 하나? 돈만 잘 벌어다 주면 됐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건 당신이 돈에 한이 맺혔거나 아직 철이 들지 않은 탓일 것입니다. ​그런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는 법인데, 그 상대는 뭐가 아쉬워서 당신과 결혼하려 하겠는가? 설령 그런 결혼에 성공했다고 해도 당신은 물질적인 이득을 얻은 대신 가정의 행복이나 사랑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작은 것을 탐내느라 정말 소중한 것을 잃고서 뒤늦게 후회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소비하라 합니다. 또 그것이 행복의 증거인 양 선전하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얼마나 많이 가지고 얼마나 많이 소비한들, 당신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남들과 비교할 수 있거나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은 사실 그리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것들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진정 행복해지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함께 할 각오가 되어있다면, 경제력이나 직업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시작한 결혼 생활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시작한 부부라면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결혼을 통하여 이처럼 귀한 사랑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또 그 사랑은 굳이 남들의 평가를 통해서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기를 바랍니다. 당신 두 사람이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며 키워가는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이니까 말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