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페이 더 고스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얼마 전 할로윈데이를 맞아 SBS ‘미운 우리 새끼’는 박수홍이 친구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의 주인공 복장으로 이태원 거리를 노니는 모습을 보여줬다. 10월 31일, 할로윈데이는 과연 이만큼 체면과 시름을 잊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흥겹고 역동적인 축제의 날일까?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페이 더 고스트’(울리 에델 감독. 유령에게 대가를 지불하라)는 왠지 어둡고 차고 습한 뉘앙스를 풍기는 켈트족의 슬픈 역사를 농축한 할로윈데이를 경험하게 만들 것이다.

로마제국 이전 유럽의 패권자는 독일과 프랑스 일대에 살던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인 켈트족이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설정한 이들은 10월 31일 망자들의 영혼이 내세로 떠나기 전 인간세계에 들린다고 믿었다. 이날 이들은 유령들이 해코지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 앞에 음식과 술을 놓아두고, 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귀신 분장을 한 사윈(삼하인, 사완)의식을 전통적으로 치렀다.

미국사회에서 소수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국지적 축제 형식으로 사윈의 명맥을 잇던 중 19세기 중반 대기근으로 100만여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들어옴으로써 대규모 축제로 바뀐 게 바로 할로윈데이다.

▲ 영화 <페이 더 고스트> 스틸 이미지

가족을 등한시한 채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뉴요커 마이크(니콜라스 케이지)는 할로윈데이에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종신교수 임명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7살 아들 찰리(잭 풀턴)의 요청대로 거리로 나섰다 찰나에 찰리를 잃는다.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찰리를 거리로 데리고 나갔다 잃어버린 마이크가 원망스러운 아내 크리스틴(사라 웨인 콜리스)은 삶의 의미를 잃고 마이크와 별거한다. 그 후 1년 동안 마이크는 찰리를 찾는 일에만 미친 듯이 몰두한 채 헤매다 할로윈데이 3일 전에야 비로소 실마리를 찾는다.

그동안 환상인지 환청인지 모르게 찰리의 모습과 목소리가 계속 그를 따라다녔는데 그건 환상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갇힌 자신을 구해달라는 찰리의 애달픈 메시지였던 것. 그는 유독 할로윈데이에 없어진 아이들만 되돌아오지 못한 통계에 주목한다.

▲ 영화 <페이 더 고스트> 스틸 이미지

그러던 중 크리스틴 역시 찰리의 환영을 봤다는 말을 하더니 갑자기 찰리의 목소리를 내면서 팔에 자해를 시작한다. 마이크는 그녀의 팔에 새겨진 고대 켈트족의 문양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1679년 뉴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한 켈트족 여인의 엄청난 사연을 알게 된다.

케이지는 마녀라면 이미 ‘시즌 오브 더 위치: 마녀호송단’(2010)에서 충분히 맞서봤고, ‘고스트 라이더’에선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도 했으며, ‘마법사의 제자’를 통해 어둠의 마법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페이 더 고스트’는 이런 화려한 전작들에 비해 스케일이 작긴 하다. 장르도 호러라 하기엔 심장에의 자극이 다소 약하고, 미스터리 스릴러라 하기엔 극적인 장치가 살짝 아쉽다.

그러나 미국영화 특유의 억지스러운 가족애 강조에서 벗어나 한국적 정서와 잘 어울릴 만큼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게 훈훈하다. 찰리를 잃은 후 패닉상태에 빠진 크리스틴은 한국적 모성애와 다름없어 깊게 와 닿는다. 마녀사냥이란 유럽의 극적인 프로파간다의 폐단을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허점과 연계해 자아비판식으로 풀어간 메시지 역시 사고의 값어치가 빛난다.

▲ 영화 <페이 더 고스트> 스틸 이미지

구 소련의 붕괴 이후 세계는 냉전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중동을 기준하면 종교와 민족을 중심체계로 한 갈등과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대현자인 드루이드가 랍비보다 덜 알려지고, 죽음의 신인 삼하인이 제우스의 동생 하데스의 지명도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켈트족의 역사와 샤머니즘의 현 위치에서 그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아이디어 역시 돋보인다.

영화의 주제는 ‘인터스텔라’에서 어린 딸 머피가 아버지 쿠퍼에게 서재에서 유령이 보인다고 했던 메시지와 연결된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의 동화와 신화와 환상의 세계를 무시하고 부정한 채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나 때론 천박한 목적의식에만 집착하는지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

암울한 시대, 더 처절하고 절망적이었던 젊은이들의 비상구를 찾는 번뇌와 생존의 몸부림을 보여준 에델 감독의 대표작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1989)완 달리 처연하면서도 따뜻하다. 15세 이상 관람 가. 11월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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