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의 클래식 세상만사] 다도(茶道)…….차를 달이거나 마실 때의 방식이나 예절을 뜻하는 이 말 한 마디에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차를 마신다’는 행위 이외의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바둑에서 알파고가 제 아무리 이세돌보다 수읽기에 능하다 해도, 바둑의 진정한 의미와 정신을 이해할 수 없듯이, 따스한 차 한 잔을 즐기는 시간은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는 정서적 순간이다. 그것은 혼자만이 즐기는 여유일 수도 있으며 마주한 이와의 교감일 수도 있다. 혹은 어지러운 심경을 다스리려는 처방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의 어색한 순간을 누그러뜨리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거리에는, 커피나 차 한 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이제 대한민국의 점심 문화에서 커피 한 잔 쯤 손에 쥐고 다니지 않으면 낯설 정도로 이 풍경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식사 후에는 언제 어디서든 차 한 잔을 습관처럼 즐긴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연주전에는 일절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 년 전에, 연주 직전 너무나 졸음이 밀려오고 또 피곤하기도 하여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무대 위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 여파로 연주 내도록 바이올린의 활 컨트롤에 큰 곤란을 겪은 일이 있었다. 어땠냐 하면, 카페인의 여파로 심장이 더욱 뛰고 활을 쥐고 있는 오른손이 ‘저절로’ 덜덜 떨리어 제대로 활로 바이올린의 현을 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 때 무대 위에서 당황했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아무튼 당시에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어 연주전에는 절대로 카페인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 나이젤 케네디(Nigel Kennedy)-유튜브 동영상 캡처

영국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Nigel Kennedy)는 연주 직전 홍차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즐링 티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그리고 얼 그레이 같은 것들이 널리 알려진 홍차다. 무대 뒤에서 찻잔까지 제대로 받쳐 들고 홍차를 음미하고 있는 케네디를 보고 있노라면, ‘곧 무대에 나가야 할 텐데 참 여유가 넘치는구나.’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그 여유가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러다 무대에 제때 등장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늘 긴장하고 집중해야 하는 무대 위 예술가의 숙명(宿命)을 상기한다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자신만의 해법이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다도로 풀어낸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면모일 것이다.

연주자들은 손이 차가와지는 것을 꺼린다. 한여름에조차 그렇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날이라 하더라도 대기실에서 무대에 나가기 직전, 긴장 때문에 손이 차가와지는 경험을 한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하여 예술의 전당 무대 바로 뒤 대기 장소에는, 손을 따뜻하게 해 주는 전기 워머(warmer)가 구비되어 있다. 하물며 여름에도 이럴진대 요즘처럼 거의 겨울 날씨에 준하는 때에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필자는 평소에 밀크티를 즐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유를 데워 홍차에 넣는 잉글리시 밀크티보다는 홍차와 우유를 함께 끓이는 일본식 로얄 밀크티를 더 좋아한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로얄 밀크티를 마치 잉글리시 밀크티 만들 듯, 우유를 따로 데워 홍차에 부어 넣어주는 커피 전문점도 많지만, 둘의 맛과 만드는 방식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커피처럼 너무 강렬하지도, 그렇다고 순수한 차처럼 너무 담백하지도 않은 밀크티의 온건함을 사랑한다.

기악 연주자는 손으로 연주하고 악기로 노래하는 사람이다. 차 한 잔을 손에 꼭 쥐고 있으면 그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바라건대 차 한 잔의 여유와 향기가 연주자의 따스한 손끝을 타고 청중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음악가가 되기를 바래본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김광훈 교수]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디플롬(Diplom) 졸업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졸업
현)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정단원
가천대학교 음악대학 겸임 교수
전주 시립 교향악단 객원 악장
월간 스트링 & 보우 및 스트라드 음악 평론가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