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형>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영화 ‘형’이 정식개봉일 전날 밤 문을 열어 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가 하면,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이하 ‘푸른 바다’)이 시작부터 15~6%의 압도적인 시청률로 앞서나가는 가운데, KBS2 ‘오 마이 금비’(이하 ‘오금비’)가 미니시리즈로선 오랜만에 가족최루극으로서의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세 작품엔 공통점이 있다. 남자주인공이 모두 사기꾼이라는 것. 비선실세라는 최순실 씨와 그 측근들이 연출한 국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로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공교롭다.

‘형’은 유도 국가대표 선수로서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다 사고로 시력을 상실한 뒤 자포자기한 채 사는 동생 고두영(도경수)을 돌본다는 핑계로 가석방으로 풀려난 사기범 두식(조정석)의 얘기다.

어머니가 죽자 그녀의 병간호를 하던 여자와 결혼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18살 때 집을 뛰쳐나간 두식에게 세상은 모든 게 불편부당했다. 못 배우고, 가진 거라곤 반항심과 복수심밖에 없는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수단은 사기였다. 무려 10범.

가석방 신청의 이유가 눈먼 동생을 돌보겠다는 것이었지만 그건 새빨간 사기. 18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동생을 극진하게 챙겨주는 이유는 집주인인 동생의 인감도장을 받아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펑펑 돈을 쓰기 위함이었다.

▲ sbs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 홈페이지 화면 캡처

‘푸른 바다’의 허준재(이민호)는 사기꾼이란 직업만 빼면 완벽한 남자다. 잘생긴 외모, 명석한 두뇌, 사람의 속마음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독심술과 최면술까지 갖춘 데다 나름대로 정의감과 인간미까지 넘친다.

그런 그가 수백억 원짜리 중세 보물을 빼앗기 위해 인어 심청(전지현)에게 거짓친절을 베풀었다가 연민의 정 때문에 그녀를 챙겨주다 사랑에 빠진다.

​‘오금비’의 모휘철(오지호)은 고미술품 사기꾼이다. 준재와 비슷하지만 머리와 정조관념은 정반대. 닥치는 대로 여성편력을 쌓아온 그에게 어느 날 10살 소녀 금비(허정은)가 나타나 자신의 딸이라 주장한다. 일단 감옥에서 풀려나기 위해 그녀를 받아들이지만 사기꾼이란 직업상 어린 딸을 키우는 게 영 내키지 않는데다 딸인지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니 생전 처음 보는 맹랑한 소녀를 가슴 안에 품는 건 불가능.

▲ kbs 드라마 '오 마이 금비' 포스터

‘푸른 바다’와 ‘오금비’는 4회까지만 놓고 보더라도 두 사기꾼의 천성이 원래 착했고, 앞으로 각각 심청, 금비와 고강희(박진희)에 의해 변해갈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두식은 두영에 의해 변하고 두영마저 변화시키며 주변사람들까지 바꾼다. 자신에게 친어머니처럼 극진하던 계모가 바로 생모의 간병인이었다는 사실은 그녀는 물론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극대화시킨다. 그건 바로 피해의식이 된다.

그래서 두식은 세상과 대적하고, 사람들을 속임으로써 생존의 법칙을 배워간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싸늘한 감옥. 탈출구로 선택한 인물이 이복동생이었지만 계모와 두영의 진심을 뒤늦게 깨닫고는 갈등한다. 그건 곧 세상은 그렇게 암울하고 냉정하며 불친절하지만은 않다는 메시지다. 아니, 어쩌면 ‘그래도 살아야지, 어쩔 건데’라는 마지막 비상구일지도 모른다.

▲ 영화 <형> 스틸 이미지

진짜 절망하고 타락해야 할 주인공은 두영이다. 그가 잃은 것은 시력뿐만 아니라 청춘과 희망, 그리고 삶의 이유 모두였다. 두식이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는 만큼 그보다 훨씬 어린 두영 역시 18살에 혼자 부모의 장례를 치르면서부터 망망대해에 홀로 버려진 듯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살았다. 그래서 그토록 금메달에 집착했던 것이었다.​

​그마저 잃어버린 그에게 삶의 희망은 전무했다. 커튼으로 빛을 차단한 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던 이유는 감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두식보다 더 확연하고 명료했다.

그런 타당한 좌절의 이유를 지닌 두영을 같은 피해자인 두식이 바꿨다. 안정된 유도 국가대표 코치직을 버리고 신념에 따라 장애인 유도 코치직을 선택한 이수현(박신혜)을 변화시킨 사람도, 척박한 현실 탓에 신학대를 중퇴한 뒤 자장면 배달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대창(김강현)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깨우친 이도 바로 두식이란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 이상이다.

▲ 영화 <형> 스틸 이미지

사기꾼은 분명 나쁜 사람이지만 세 작품은 그들의 사기행각보단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구조를 대입하며 맹자의 성선설을 주창한다. 물론 이 픽션들이 설정한 ‘핑계’는 현실과는 동떨어져있지만 선량한 ‘보통사람’이 왜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야만 했는가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는 점은 고뇌의 가치가 있다.

주인공들은 결국 착한 본성으로 되돌아온다. 그 이면엔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지위와 이득을 챙기는 과정에서 기가 막힌 국가적, 국민적 손실을 야기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합법’ 혹은 그를 가장한 혹세무민으로 무마한 사람들은 결코 착해질 수 없다는 것을 설파하고자하는 의도가 깃들어있을 수도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공존하는 모순의 현실이란 변증법이다.

영화 ‘내부자들’이 마치 묵시록처럼 재평가되는 가운데 곧 개봉될 영화 ‘마스터’가 수조 원 단위의 사기극이란 점 역시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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