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짱구 박사의 행복한 교육]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가결로 인해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 논의는 방향성을 잃고 질주하는 기관차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국가관과 세계관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 올바른 역사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숨은 의도와 국민적 협의 없는 비민주적 절차의 추진 과정 그리고 현 정부를 지지하는 편향된 사관의 집필진과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현장검토본 교과서 초안 등을 종합하여 고려해 볼 때 굳이 역사학자는 아니더라도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매우 의심스럽게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12월 2일자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국정화 추진에 반대하는 여론이 67%, 찬성하는 여론이 17%, 그리고 좀더 논의 해보자는 의견(유보)이 15% 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억압받던 강점의 시기에도 중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한 예는 감히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에 의해 집권하고 유신정권의 산실로 잘 알려진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부터 안타깝게도 국정화 역사교과서의 암울한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이 시대는 정보와 국민들의 알 권리를 통제 당하고 정부 입맛에 맞는 국정교과서를 통해 근현대사의 정치, 경제의 상당 부분을 왜곡하고 조작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설로 인정됩니다. 정치 경제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이 일방적으로 약자였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일부 어르신들은 국정화 교과서 뿐만 아니라 당시 정부의 언론 통제와 권력기관을 이용한 감시 등 다양한 세뇌 정책으로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비민주적이고 통제된 교육을 받았던 시기였습니다.

▲ 사진=kbs 뉴스 화면 캡처

국민들에 의한 민주항쟁을 거쳐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성숙되었다고 생각할 즈음에 200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이든지 역사에 관해서 정권이 재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다루겠다는 것은 정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하겠다는 의심을 받게 되고 정권 바뀔 때마다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과거사는 어디까지나 객관적, 중립적, 전문적인 인사들에 의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우리 당(한나라당)의 입장이며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주저할 것이 없다.”고 공식 언급하였고 더 이상 국정화 논란에 대한 이슈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유신헌법의 독재자였던 아버지를 미화하고 친일파, 정경유착 및 부패에 대해서는 관대하며 역사적 정통성과 민주항쟁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짐작되는 반민주주의적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역사교과서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정권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중립적으로 서술하고 사회적 합의가 있는 일정한 집필 기준과 올바른 편찬 가이드에 의해 다양한 시각이 존중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반영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이렇게 편찬된 교과서를 가능한한 쟁점이 없도록 검정하고 학술적으로 다른 의견이 있는 부분은 충분한 토론을 통해서 다수설과 정설을 채택하고 소수설의 의견도 존중하여 교과서로서의 채택 여부를 조정하고 승인만 하면 될 일입니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를 통해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소설에서는 국가가 통제하는 현재의 권력을 갖는 자가 과거의 역사를 임의로 재단하여 왜곡시키고 이를 시민들에게 세뇌시킬 수 있다는 무서운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국가는 역사에 대한 날조 뿐만아니라 날조라고 의심하는 사상에 대해서도 범죄로 다루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소설속의 가정이긴 하지만 전체주의 국가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 지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두려움을 갖게 만듭니다.

민주적이고 균형 있는 국가관을 배워야 할 중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한다는 말은 조지 오웰이 소설속에서 우려했던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현 정권의 뜻대로 역사를 왜곡, 조작하고 날조된 역사로 학생들을 세뇌시키겠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정화 역사교과서”는 역사 왜곡 여부를 떠나 국정화 그 자체가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주의를 매우 후퇴시키는 일이며 북한과 같은 세습 독재국가나 왕조국가를 지향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됩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현 정권의 어떠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국의 아이들과 우리 어른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정부와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올바르지 않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이름의 국정화 교과서를 헌법에 규정된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지 않도록 지금 당장 폐기 분서(焚書)하고 상식과 보편이 통하는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서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편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서로 다른 역사관에 대해서도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기반한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역사에 대한 가치 판단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자 머슴인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역사학자들의 다양하고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 김승환 박사

[김승환 박사]
한양대 공대 기계공학사
충남대 대학원 법학석사 / 법학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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