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얼마 전 인공지능이 바둑 세계 최강자인 이세돌을 능가하는 것을 보며 많은 이들이 전율을 금치 못했다. 혹자는 누가 이겨도 인간승리라며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일리 있는 얘기긴 하지만 왠지 마음이 편칠 않다. 늘 이기도록 교육받고 자란 우리기에 상대가 말 못하는 기계임에도 약이 오른다.

냉정하게 바둑을 두는 알파고를 보며 필자는 이런 의문이 생겼다. 건강에 유익한 요인을 제시하고, 해로운 요소를 제거하며, 장수자들의 환경이나 생활습관 등의 모든 조건을 조합하여 최상의 건강 조건을 제시하는 인공지능이 탄생하고 인간이 거기에 부합할 수 있다면 우리가 과연 100세 또는 그 이상 장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자신의 건강에 적합한 조건만을 골라 취할 수 있다면 100세 건강 수명을 누리는 것은 가능할까. 무릇 인간의 장수엔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아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삶을 방해하는 장애가 제거되어 천수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천수라는 의미로 보면 평균 연령이 40에 불과하던 백 년 전에 비해 현재 인간의 수명이 배 이상 연장되었다는 말은 문제가 있다. 백 년 전 나이 40세의 사람이 현재의 80세 노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늙어 보이진 않는다. 옛날의 60세 노인도 지금의 60세와 외형(?)이 크게 다르지 않다. 40세에 늙어 죽는 시대의 60은 지금의 120살에 해당할텐데 말이다.

비로소 인간은 본래의 수명을 찾아가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맞다. 높은 유아 사망률, 전쟁, 기아, 각종 전염병과 흉년 등을 극복하지 못해 평균 연령이 40에 불과하던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된다면 인간은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그렇다 하여 유전적 한계까지 뛰어넘을 순 없으니 대략 120세 정도로 예상할 수 있다.

생물은 성체(인간 스무 살)가 된 후 곱하기 6하여 그 숫자만큼이 최대의 수명이라는 말은 과연 맞는 것일까. 그러나 오래 사는 것이 마냥 축복이라 볼 수도 없다. 한심한 것은 50에 직장에서 옷을 벗었다면, 살아온 만큼의 세월인 50년 정도를 수입 없이 버텨야 한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래 사는 것이 두렵다는 이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태어나지 않았듯, 죽음도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의 선택 밖이다. 어찌 됐건 오래 살고 볼 일이니 장수는 인간의 오랜 염원으로 남았다. 결국, 사기에 불과한 수많은 장수 식품이 등장하고 거짓말과 왜곡으로 자신의 나이를 속인 자들이 등장한다.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오래 산 것으로 만든 것이다.

하늘 위에 신이 있다면 땅 위에 추앙받는 이는 장수한 자이다. 시대의 권위자가 되면 그의 한 마디가 부족 사회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더욱이 거짓말과 왜곡된 나이조차 자신의 묘비에 새길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다. 제대로 된 글이 없거나 문맹률이 높아 기록이 부실하던 시절엔 자신의 나이조차 기억이 쉽지 않았다 한다. 그러므로 나이를 속이는 것은 현재 학력을 위조하듯, 양심적으로 거리낄 일도 아니었을 거다.

기록이 아주 잘 된 몇몇 국가의 최장수 노인이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턱없이 적음도 이를 잘 말해준다. 장수 고령자층을 연구하는 인구통계학자들이 기네스북에 등재되거나 다가갈 정도의 고령자들을 일단 의심하는 이유는 이렇듯 명확하다.

결국, 미국의 인구통계사무국은 100세를 넘었다고 주장하는 10만 6,000명 중 94% 이상을 위조된 것으로 처리했다. 나머지 몇천 명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노인의 나이 부풀리기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지리적 조건, 식이, 습관 등에 따라 수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파악해야 할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노인이나 정치인 등 사회 선도계층의 거짓말은 우리의 수명을 짧게 만드는 명확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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