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최현성 청춘칼럼]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의 일부이다. 이 시에 나오는 흔들리는 꽃처럼 우리는 살면서 많은 고통이라는 흔들림을 겪는다. 미성년자 시절은 입시, 대학생은 취업을 위해 학점과 스펙 획득에 대한 압박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커다란 벽이자 생존의 가장 보편적인 길인 취업의 문을 통과 한다고 해서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월급을 얻기 위한 직장에서의 업무, 직장 인간관계의 문제, 결혼에 대한 고민, 집을 얻기 위한 대출금 갚기 등 취업을 통해 물질적인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도 우리의 삶에서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이 많은 대로 재산을 지키고 더욱 안정적으로 살기 위하여 그에 따른 고통이 일어나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통이 일어난다. 이러한 고통의 연속인 삶에 절망하여 고통을 끝내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늘어 결국 OECD 국가 중 우리나리는 자살률 1위라는 명예롭지 못한 기록을 얻고야 말았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삶의 고통은 영원히 해결 할 수 없다. 그것에 절망한 사람들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하여 자살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고통을 해결할 수도, 그렇다고 회피할 수도 없는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얻어야만 한다.

물질만으로, 즉 돈만으로는 우리의 고통을 줄이지 못한다. 돈이 고통을 줄이는 데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뼈가 부러졌을 때 깁스를 한다고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돈이라는 고통을 줄이기 위한 ‘깁스’를 얻었다면 그와 함께 고통을 견디기 위한 ‘진통제’로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대승불교에서는 세상 만물은 고정된 것은 없다는 공사상을 제시한다. 고통 또한 고정되지 않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이러한 가르침으로 기존 종교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많은 인도 사람들과 자신들의 고통을 견디어 내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사람들에게 가져야할 마음가짐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절망하지 말라. 비록 그대의 모든 형편이 절망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 이미 일이 끝장난 듯 싶어도 결국은 또 다시 새로운 힘이 생기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지독한 반대와 결핵이라는 고통을 받았음에도 문학 작업을 한다는 자신의 목표를 끝내는 이루었다.

니체는 한 술 더 떠서 고통을 견디는 것에서 만족하지 말고 고통을 기쁨의 재료로 하라고 전하며 이러한 말을 남겼다.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 갈 수만은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니체는 수많은 반발과 지속적인 질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서적을 내었다.

이렇게 대승불교, 프리츠 카프카, 니체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고통을 견디고 끝내 이루고자 한 바를 이루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삶을 살아간다면 고통이 영원히 연쇄되어 일어나는 것은 똑같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견뎌낸 위 현인들처럼 끝내 변화한다는 마음가짐의 형태를 가지고 고통의 벽을 견디어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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