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패신저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SF(공상과학)영화라고 하면 다수 관객은 ‘스타 워즈’나 ‘에이리언’ 같은 액션대작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의외로 과학이 공상에 그칠 뿐이거나, 액션이 헛헛한 작품도 많다.

‘스타 워즈’ 시리즈가 건국신화가 없는 미국식 ‘그리스-로마신화’를 그린다면 ‘맨 프롬 어스’는 오두막집이란 작은 무대에서 수천 년에 걸친 충격적인 세계 역사의 미스터리를 완성한다. SF는 이렇게 의외로 철학을 그리기도 한다. ‘프로메테우스’처럼.

‘패신저스’(모튼 틸덤 감독, UPI 배급)는 굳이 분류하자면 후자 쪽이다. 직선거리 1km의 거대한 우주선 아발론과 경이로운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지만 액션은 물론 외계인도, 우주의 오묘한 변화도, 과학의 복잡한 이론도 없다. 인간의 사소하거나 이기적인 감정, 그리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야합해 형성한 교묘한 계급구조에 대한 당위성만 존재할 따름이다. 부자와 극빈자가 합심해 재벌을 대통령으로 만든 걸 변론하는 듯.

▲ 영화 <패신저스> 스틸 이미지

홈스테드는 식민행성을 개발해 떼돈을 버는 재벌기업이다. 새 식민지 ‘터전2’에 이주할 승객 5000명을 모집해 258명의 승무원과 함께 초호와 우주선 아발론을 띄운다.

아발론의 비행시간은 120년이므로 승객과 승무원은 늙지 않도록 동면하고, 도착 2달 전에 승무원이 먼저 깨도록 설계돼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승객 중 짐 프레스턴(크리스 프랫)이 30년 만에 깨어난다.

당황한 짐은 동면기를 고쳐보려고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할 수 없이 그는 우주선 안에서 늙어죽을 결심을 하고, 유일한 친구인 로봇 바텐더 아더와 매일 대화를 하며 ‘혼술’과 ‘혼밥’으로 1년여를 보낸다.

어느 날 그는 첨단 우주복을 발견하고 우주공간에서 유영을 하며 색다른 희열을 맛본다. 그것은 혼자 살아온 외로움과 살아갈 절망의 끝을 보자는 자살충동으로 이어지지만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다.​

▲ 영화 <패신저스> 스틸 이미지

선실로 돌아온 그의 눈에 동면기 속의 작가 오로라 레인(제니퍼 로렌스)이 띈다. 그는 컴퓨터로 그녀의 작품과 소소한 일상의 얘기들을 접하곤 어느새 그녀에게 푹 빠져 버린다. 그리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단의 행동을 결심한다. 그녀를 깨운 것.

오로라 역시 처음엔 당황하고 이내 무기력해지지만 짐과 농구 댄스배틀 영화관람 등의 레저를 즐기고, 첨단의 시설을 단 둘이 독점하는 생활에 어느덧 적응해가며 사랑에 빠진다. 오로라는 깨어난 지 1년이 되는 날 아더로부터 자신이 깨어난 진실을 알게 되고, 짐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 후 대치한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두 사람 앞에 데크책임자 거스가 나타난다. 그 역시 짐처럼 우주선의 오작동으로 인해 일찍 동면에서 깨어난 것. 거스와 짐은 힘을 합쳐 완벽하다던 우주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는 진실을 알아내지만 여생마저도 우주선에서 살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 영화 <패신저스> 스틸 이미지

영화는 외형만 SF일 뿐 사실은 인간 본연의 고독과 상실감 그리고 이기심 등의 심리탐구에 집중한다. 5258명 중 유일하게 90년 먼저 깬 짐이 처한 상황은 ‘캐스트 어웨이’의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된 척(톰 행크스)과 다름없다. 재난모험영화의 형식을 빈 것이다.

그가 오로라의 동면기를 연 명분은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이기심일 따름이다. 단지 자신의 외로움과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한 여자의 일생을 철저하게 짓밟은 것. 더구나 그 진실의 ‘금서’를 아더에게 전한 뒤 절대 오로라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단속하는 것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신성모독이다.

아더를 창조한 것은 사람이고, 사람인 짐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인데, 그는 루시퍼처럼 창조주를 배신한 것이다.

▲ 영화 <패신저스> 스틸 이미지

인구 5258명의 이 작은 ‘나라’에서조차 신분격차가 있다. 뉴욕에 살았던 베스트셀러 작가 오로라는 귀족이고, 엔지니어 출신 짐은 평민이다. 복장도 이를 암시한다. 승객과 승무원은 ID카드로 각자의 위치에 따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받고 제한된 공간을 다닐 수 있다. 거스의 권한은 무제한이지만 승객들은 그렇지 않다. 오로라는 최상급 식사를 제공받지만 짐은 허접한 간편식이 고작이다.

탑승의 이유도 극과 극이다. 지구의 부자들은 고장 난 첨단기기를 수리하는 게 아니라 새 것으로 교체하는 사치에 익숙해져있다. 수입이 준 엔지니어 짐이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물자가 부족하므로 재활용과 수리가 당연한 식민행성으로 가려는 것은 17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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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는 안정되고 충격이 없는 현실이 살짝 지루하고, 작품의 아이디어도 고갈돼 답답해서 아발론에 탑승했다. 짐과 달리 왕복티켓. 왕복 240년에 터전2에서 머무는 10년을 더한 250년 뒤의 지구에서 250년의 두 세계를 녹여낸 글을 쓰겠다는 원대하고도 배부른 포부를 지닌 것. 짐은 온갖 빚을 내서 티켓을 샀는데.

오로라가 부자고, 짐이 서민이라면 승무원은 공무원, 아발론은 국가 시스템, 홈스테드는 최고권력층이다. 홈스테드는 아발론이 완벽한 우주선이라고 떠들었지만 그 흔한 운석을 못 막아 결정적인 오작동이 일어나 불행이 시작된다.

게다가 짐 같은 돌발사태가 발생할 ‘만약’에 대비한 승무원(공무원)들의 대응시스템도 갖췄어야 했지만 전혀 무방비상태였다. ‘터널’과 ‘판도라’다. 거스(공무원)와 짐(서민)의 희생정신도 결국 오로라(부자, 재벌)를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판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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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론은 영국의 전설 아더 왕이 말년에 평온과 치유를 찾아간 전설의 섬이다. 아발론은 켈트어로 사과다. 사과는 여신의 성스러운 심장이자 생명의 근원(자궁)을 상징한다. 바텐더 이름이 아더다. 오로라는 라틴어로 새벽이다. 새벽은 희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의 창조는 시작이 될 수 있다. 과연 부자도 새 세상의 희망일까?

‘이벤트 호라이즌’과 ‘인터스텔라’가 다룬 시간의 공존 혹은 반복의 철학 같은 심오한 메시지는 많이 부족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을 날것 그대로 그린 생생함은 현실적이라 오히려 쉽게 피부에 와 닿고, 비주얼 역시 블록버스터답다. 다만 ‘부자가 최고’라는 결말은 씁쓸하다. 짐의 이기심이 결국 운명이었다는 설정은 많이 억지스럽다. 짐과 오로라의 관계가 전형적인 멜로의 기승전결을 따르는 것도 진부하다. 116분. 12세 이상 관람 가. 내년 1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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