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송민정 청춘칼럼] 어른들은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을 청춘이라고 부른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 시기” 사람들은 청춘을 부러워하고 동경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청춘은 패배를 해도 웃을 수 있는 찬란한 시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청춘은 포기로 시작하는 시기가 되어버렸다.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수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신용을 포기하고 등록금을 대출받게 된다. 또 다른 학생들은 ‘휴식’을 포기하고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한다.

그 외에도 많은 청춘들이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포기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대학 생활”을 포기 했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방송대에 들어갔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방송대학교는 일반학교보다 학비가 훨씬 쌌으니까. 남들처럼 대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학교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대한민국 2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그들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목숨을 포기해버린 사람들이다. 어른들은 목숨을 포기해버린 학생들에게 “어째서 더 노력하지 않았냐.”고 비난했다.

지금의 청춘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 중에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90%가 넘는다. 3명중 1명의 학생이 학자금대출의 빚을 지면서 20대를 시작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는 동시에 포기와 무력을 얻게 된다. 청춘이 주는 빛은 포기라는 그늘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했던 작가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유학을 갔다. 하지만 지금 대학생들은 여행 갈 돈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건 오로지 딱 하나 “청춘”뿐이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오로지 청춘이라는 시기를 가진 20대들을 기성세대들은 부러워하고 또 부러워한다. 그리고 20대들의 말을 불평불만으로 치부해 버린다.

사무직 알바를 끝내고 퇴근하던 어느 날, 사고를 당해서 반파된 오토바이를 보았다. 오토바이 라이더 알바생의 시급은 7500원이다. 그 시각 그곳에서 한 청춘은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포기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눈길을 돌렸다. 무너져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는 n포세대 라는 말이 있다. 처음엔 3포세대 였지만 5포,7포로 점점 늘어나다가 언제부턴가 n포세대가 되어버렸다. 결혼, 출산, 연애, 취업, 내 집 마련, 인간관계, 희망........ 청춘은 어느새 포기로 시작해서 포기로 끝나는 세대가 되었다.

어른들은 20대들에게 말한다. 고생을 해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젊을 때는 그 정도 시련도 있어야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 대한 기만이다. 길이 여러 개 있다면 편한 길을 걸어가는 게 옮은 건 당연하다. 힘든 경험을 많이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건 그저 슬픈 일일 뿐이다.

젊음은 착취당해야 될 대상이 아니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야하는 고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젊은 인력을 당당히 착취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 제도적 처벌이 더 강화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잣대로 마음대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사라져야한다. 사람에겐 각각의 삶과 가치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기로 시작하며 타협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청춘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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