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우리 민법은 제105조에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당사자의 법률행위가 강행법규에 위반되지 않는 한 당사자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협의이혼의 경우 법원에서는 당사자들의 합의에 의해서 진행이 됩니다.
한편, 같은 법 제147조 제1항에서는 정지조건 있는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정지조건부 법률행위의 경우 조건이 성취되면 그 법률행위의 효력이 발생하고, 불성취로 확정되면 법률행위는 무효가 됩니다.
최근 불륜을 저지르면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각서를 부부가 작성한 경우 각서는 협의이혼을 정지조건으로 효력이 발생하고 재판상 이혼에서는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 나와,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부인 갑녀는 내연남 병남과의 불륜관계가 남편 을남에게 발각되자 내연관계를 정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병남과 전화통화한 사실을 남편에게 들키자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 남편에게 줬습니다.
갑녀는 각서에서 "병남과의 관계 청산 및 원활한 부부관계 개선, 추가로 만남과 통화 등이 있을 경우 불륜 인정, 이혼 시 배우자와 이룩한 모든 재산 양도, 위자료로 매월 400만원씩 2년간 지급,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며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뒤 갑녀와 병남이 계속 만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을남은 이들을 간통죄로 고소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었고, 이후 갑녀와 을남은 모두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법원은 이혼소송을 받아들였으며, 남편 을남이 청구한 위자료를 일부 인정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갑녀가 (내연남을 다시 만날 경우 총 9,600만원의 위자료를 주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이 각서는 이혼 전의 당사자들이 이후 협의 이혼할 경우를 전제로 위자료를 포함한 재산분할에 관해 조건부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문제의 각서는 협의이혼을 조건으로 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이들이 각자 이혼 소송을 제기해 재판상 이혼에 이르게 된 이상 각서에 따른 합의는 조건불성취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은 각서의 내용이 협의이혼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재판이혼을 하게 된 경우에는 각서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법원은 혼인중임을 전제로 한 각서인지, 협의이혼을 전제로 한 각서인지를 모두 구분하여 판결을 내리고 있고, 나아가 이혼을 전제로 한 각서의 경우 협의이혼을 전제로 한 각서로 보므로, 배우자간 각서 작성 시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하여야 나중에 낭패를 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