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사춘기를 제2의 탄생이라고 하지만, 사실 결혼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탄생입니다. 한 개인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한 가정의 출발과 발전 과정에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개인이 태어나고 자라고 생활하다가 늙어 숨지듯, 결혼으로 태어난 한 가정도 나름대로의 일생을 거칩니다. 즉 부부 한 쌍으로 출발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장성하는 동안 그 가정은 일종의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된 자녀가 독립하여 떠나면 다시 처음처럼 둘이서만 남았다가 한 사람씩 차례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 가정의 일생이 끝나는 것이지요.

이런 가정의 일생이라는 관점으로 보았을 때, 신혼기는 사람의 영아기와 유아기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영유아가 그 연약함과 미숙함, 그러나 귀여움으로 오랫동안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것과는 달리 결혼으로 태어난 한 쌍은 당장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새 부부는 자신들의 개인적인 행동과 감정은 물론이고 새 가정의 생활 전반에 대한 책임을 나누며 생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그 부모의 도움을 오래 받으면 받을수록 부작용이 커집니다. 예정이 지나도록 출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새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사실 신나는 일이라기보다 겁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신혼기의 과제들
신혼기 부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협력하여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두 사람은 가정과 사회적인 활동에서 많이 서투르기도 하고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잘 통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식성이나 생활 습관에서 다른 점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면이 튀어나올 수도 있습니다. 대화라도 통하면 살 수 있겠는데, 이마저도 막힐 때면 앞날이 캄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신혼기는 이제 부부로 살아가기 위한 걸음마를 배우는 시기입니다. ​어린 아이는 힘이 약하고 두 다리의 균형을 잡지 못해서 자꾸 넘어지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힘도 붙고 균형도 잡아갑니다.

그러니까 신혼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거나 지레 실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자랐나 하고 놀라듯, 신혼부부들도 이제 곧 ‘깨금발’로 뛰고 달릴 만큼 자랄 것이니까요.

신혼기에 중요한 다른 과제는 자신들 주위의 여러 사람들과 좋은 ‘기능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여기서 단순히 ‘좋은 관계’라고 하지 않고 ‘기능적’이라고 한 것은 말 그대로 ‘좋은 관계’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 새로운 친구들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친밀하면서도 상호 독립적인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부부 간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외부의 개입을 부르게 되고, 이는 또 다시 부부의 결합을 방해하는 원인이 됩니다. 이런 관계는 기능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역기능적'이라고 해야겠지요.

부부가 여러 사람들과 기능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부부 두 사람의 확고한 결합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두 사람만의 관계를 차츰 주위로 확장시켜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토대로 자라면서 그 활동영역을 넓혀가듯이 말이지요.

예를 들어 부부가 공동의 취미를 갖고 함께 종교나 봉사 단체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가능하면 형제나 친구처럼 비슷한 연배의 부부 모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부부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도 있고, 또 두 사람이 갈등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해결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런 모임이 부부의 공동 활동의 전부가 되거나 갈등 해결의 유일한 수단이 된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끝으로 중요한 것은 꿈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공동의 꿈을 갖는 것은 신혼기가 아니라 결혼 전이라도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것은 가치관이라 말할 수도 있고 비전이라 해도 좋습니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꿈이라 해서 ‘행복하게 살기’처럼 막연한 표현 대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이는 몇 명이나 또 언제 낳을 것인지,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것입니다. 또 수입 중에서 얼마씩 적금을 들거나 돈이 모였을 때 어떻게 쓸 것인지, 가능하면 국내여행이나 해외여행으로 가고 싶은 곳을 약속하는 것도 좋습니다.

때로는 각자의 앨범이나 일기를 보면서 예전에 가졌던 꿈을 이야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금은 월세 집에 살지만 몇 년 후 또는 은퇴 후에 어디에서 어떤 집을 지어 살고 싶은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좀 막연하기는 하지만) 괜찮습니다.

요컨대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이해하고 격려하여 함께 더 나은 상태로 이끌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두 사람이 공유하는 목표가 없거나 어느 한 사람의 주장대로 살아야 한다면 작은 문제로 생긴 불편조차도 쉽게 극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불편에 따라 감정적인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꿈도 부부가 함께 가지게 되면 이루기 쉬워집니다. 더 좋은 점은, 부부 관계에 위기가 닥쳤을 때 그 꿈이 부부를 지켜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합해서 말하면, 신혼기는 사실 (남들이 뭐라고 듣기 좋게 말하든) 내용상으로는 초라하기도 있고, 위태로운 순간을 가장 많이 겪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가정을 건축으로 보자면, 신혼기는 그 기초를 닦고 거푸집을 세우는 단계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건축물도 이 시기에는 혼란스럽고 지저분하지 않던가요? ​그러나 그런 단계를 잘 마무리해야 튼튼한 기초가 세워지고 훌륭한 건물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혹시 신혼이 당신이 기대하던 모습과 다르다 하여, 당신의 결혼이 잘못된 것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어쩌면 당신이 짐작하던 신혼의 모습은 상업 광고에서 만들어낸 환상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한 사람의 남편 또는 아내가 되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이 달콤할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당신에게 힘들다면, 그것은 당신의 배우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배우자와 함께 서로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이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이후의 결혼 생활 내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답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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