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송강호가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영화기자협회 주최 제8회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에서 ‘밀정’(김지운 감독)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시상식 1회 때 ‘박쥐’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변호인’으로 또 받았고,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해 이병헌이 ‘내부자들’로 청룡영화제 등을 휩쓴 것을 의식한 듯 그는 “드디어 이병헌이 사라지니 내게 기회가 오는 것 같다. 지난해 이병헌 때문에 참 힘들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 영화 <박쥐> 스틸 이미지

그의 수상소감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흔히 영화 한 편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영화란 매체의 한계 때문에 몇 명의 관객 효과가 불과 며칠밖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세상이 바뀌어가는 거다. 그것이 바로 영화의 매력이고”라는 말은 왠지 혼미한 현 세태가 오버랩되는 듯했다.

송강호는 ‘꽃미남’은 아니다. 상을 받던 날 만 50살을 넘겼다. 한국적 '빠른 나이'로 치면 사실 52살이다. 아무리 연기력이 보증수표라 해도 그런 그가 어떻게 흥행까지 보장하는 굉장한 호감형 스타로 오래 군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훈육과 교훈의 의미가 심장하다.

▲ 영화 <넘버3> 스틸 이미지

연극배우 출신의 그는 1~2년 단역생활을 거쳐 1997년 ‘넘버 3’(송능한 감독)에서 삼류 폭력조직 두목 조필 역을 맡아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지금도 회자되는 ‘배, 배, 배, 배신이야’라는 말더듬이 대사를 포함한 코미디연기는 확실히 튀는 개성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모델출신다운 몸매가 돋보이는 차승원이 배우 초창기 기대에 어긋나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으나 코미디의 전매특허로 비로소 영화배우로 자리 잡은 뒤 아이러니하게도 그 코미디의 틀 안에서 고뇌했던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송강호는 차승원에 비하면 핸디캡이 더 크다. 그만큼 멋지거나 미남이 아니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코미디에(만) 능한 배우라는 장점이자 단점을 강점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선 영악하거나 우월하다.

▲ 영화 <반칙왕> 스틸 이미지

‘넘버 3’ 이후의 작품은 ‘조용한 가족’(김지운 감독) ‘쉬리’(강제규 감독) ‘반칙왕’(김지운 감독)이다. ‘쉬리’에선 한석규 최민식 김윤진 박하 등이 워낙 강했고, 강제규 감독의 첫 한국형 블록버스터란 마케팅방식이 전면에 나섰기에 상대적으로 송강호의 존재감은 구석으로 밀려났다면, ‘조용한 가족’은 6명의 주인공에게 고루 분배된 역할의 마침표를 송강호가 코미디로 찍었고, ‘반칙왕’은 송강호가 김지운 감독의 확실한 페르소나가 됐으며 이제 코미디를 포함한 모든 드라마의 주연배우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로 그는 슈퍼스타가 된다. 이 영화에서도 그에게서 코미디를 빼놓을 순 없지만 앞선 세 작품에서 그의 코미디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뒤 여기서 오늘날의 송강호라는 배우의 화룡점정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조용한 가족’이 ‘넘버 3’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반칙왕’은 새로운 코미디 종(種)의 탄생이다. 고단한 샐러리맨의 애환과 일상탈출이란 아주 간단한 소재를 대단한 드라마로 승화시킨 건 김 감독의 연출력이 근간이지만 송강호란 페이소스와 더불어 메피스토펠레스나 바알(이스라엘의 난교숭배 신)의 존재감이 공존하는 배우가 없었다면 크랭크인은 물론 크랭크업도 없었을 것이다.

▲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 이미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의 ‘코미디인 듯, 코미디 아닌, 코미디 같은 드라마’는 절정에 이른다. 이병헌 김태우 신하균과 어울려 놀며 김광석의 노래에 탐닉하던 그는 뜬금없이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갔냐”는 질문을 하품하듯 내던진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병헌은 이런 연기를 못 했다.

그의 이력서를 보면 그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하게 주창하거나 최소한 집착한다는 근거를 찾기 힘들다. 그냥 배우다. 영화배우로 성공한 초창기엔 배고프던 연극배우의 과거와 배부른 무비스타의 현실을 혼동해 술자리에서 ‘이유 없는 반항’도 없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선배’의 기품을 갖춰간 것은 맞다.

▲ 영화 <변호인> 스틸 이미지

그는 ‘변호인’ 시나리오를 받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일개 배우인 내가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 때문에 거절했다가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극찬하고, 아내(황장숙 씨)마저 “당신이 신인도 아닌데 뭐가 두렵냐”고 지적해 결국 출연을 결심했다.

“치밀하게 연기한 것도, 인물의 진심을 그토록 간절히 떠올리고 쏟아내 본 것도 처음”이라던 ‘변호인’ 이후 웬일인지 단 한 편의 작품도 출연섭외를 받지 못 했다. 이전까지 연간 평균 2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해온 그는 ‘변호인’을 비롯해 ‘설국열차’ ‘관상’이 개봉된 2013년 이후 ‘사도’(이준익 감독, 2015)와 ‘밀정’(김지운 감독, 2016)이 전부였다.

▲ 영화 <설국열차> 스틸 이미지

그 이상기온현상에 인위적 압력이 있었건 오비이락이건 그는 개의치 않았다. 다수의 관객은 자신의 취향이나 교류를 위해 영화를 선택하지, 진지한 고찰과 숭고한 철학을 위해 시간과 돈과 이동의 수고와 지인의 동원이란 노력을 투자하진 않는다. 물론 감독이나 배우가 먼저다.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출범해야 할 특별조사위를 정부가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려는 데 반대하는 시행령 폐지 지지를 선언한 594명의 문화예술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다만 노력하는 사람은 그 값어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영화 외엔 한눈을 판 적 없고, 사생활로 구설수에 오른 바 없으며, 항상 영화를 믿게 하는 신뢰도 상위권의 배우였다. 광고를 많이 찍는 것도 아니고, 스타랍시고 나대는 스타일도 아니다. 허세와 몰상식과 부도덕을 감추기 위해 억지와 기만과 허위라는 그럴 듯한 포장으로 대중의 눈에 손바닥을 들이대는 일부 연예스타와는 다르다.

▲ 영화 <사도> 스틸 이미지

그의 곰 같은 뚝심과 여우 같은 재치로 버무린 신성불가침의 연기력은 최근 두 작품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낸다. ‘사도’에서 그는 40대에서 80대까지의 영조를 연기했다. 얼굴 표정과 안면근육은 두터운 특수분장에 가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는 눈빛과 목소리 톤의 변화로 웬만한 배우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다양한 심리를 변주해냈다.

생존을 위해 왕의 자리에 올랐고, ‘무수리의 아들’ ‘이복형인 선왕 독살 혐의’라는 콤플렉스에 평생 시달렸으며, 그 핸디캡을 적자인 사도를 통해 단숨에 해소하고자 했으나, 낭패감만 안은 채 정치와 천륜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영조를 송강호가 맡지 않았다면 그 40년이 역사처럼 스크린에서 재현될 수 있었을까?

▲ 영화 <작은연못> 스틸 이미지

모든 배우가 그렇듯 그 역시 완성도를 따지고 흥행에서의 실패확률이 적은 선택을 해왔지만 판단능력이 탁월하다. 또한 다소 부족하더라도 작품의 퀄리티와 재미를 살리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연기력과 친화력 그리고 캐릭터의 소화력과 창조능력은 명불허전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올드 보이’ 제작소식을 듣고 박찬욱 감독에게 직접 출연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지만 최민식에게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촬영현장에 응원 차 방문했고, ‘작은 연못’이 흥행과 요원한 것을 알면서도 그 의의 하나만으로 조연을 자청한 영화철학이 어디 흔한가?

▲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그에게 또 연기장인이란 상을 준 ‘밀정’은 사실 시나리오에 허점이 많았다. 그가 맡은 조선인 일본경찰 이정출의 방황과 갈등과 변절 그리고 마지막 소신 등을 가능케 하는 동기가 불확실했다. 당연히 극의 전체 플롯의 개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그런데 그는 이런 허점이 느껴질 틈을 안 주는 연기력으로 완성도에 크게 기여했다. 생존의 본능을 기본으로 분노와 굴욕, 갈등과 번뇌, 선택과 신념 그리고 믿음의 다양한 감정을 그만의 디테일과 말투로 사진 같은 정밀묘사화를 그리듯 섬세하게 완성해낸 것이다.

그의 디테일은 하나도 놓칠 게 없는데 특히 두 눈의 연기도 탁월하다. 그는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크다. 수시로 그는 오른쪽 입꼬리를 내림으로써 각기 다른 양쪽 눈과 함께 표정연기로 활용한다.

▲ 영화 <밀정> 스틸 이미지

만약 이정출이 의열단의 밀정이 된 후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는 시나리오의 결말이 그냥 일본경찰의 밀정에 그쳤어도 송강호는 이 영화에 출연했을 것이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고, 박찬욱 감독을 존경한다. 또한 김지운 감독은 그의 첫 아니마(남성의 여성성) 겸 아니무스(여성의 남성성)니까.

송강호는 말이 많은 스타가 아니다. 돌출을 좋아하는 연예인도 아니다. 조인성은 최근 인터뷰에서 “남이 나를 알아봐주는 게 좋아서”, 즉 스타가 되고 싶어 배우가 됐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송강호는 스타덤에 오른 초기에 치기어린 면은 없지 않았지만 돋보이고자 하는 도발은 별로 없었다.

▲ 영화 <우아한 세계> 스틸 이미지

그가 믿는 영화의 힘은 그의 작품선택의 혜안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더 킹’의 감독은 한재림이다. 송강호는 한 감독의 전작 ‘우아한 세계’와 ‘관상’에서 모두 주인공을 맡았다.

‘우아한 세계’는 폭력조직의 3인자 강인구를 통해 이 나라 평범한 중년가장의 애환을 그린 멋진 휴먼 누아르로 평가받는다. 송강호의 열성팬이라면 그의 필모그래피 선두에 내세우길 주저하지 않는 수작이다.

▲ 영화 <관상> 스틸 이미지

‘관상’은 천재 관상가 내경이란 평민의 눈을 통해 바라본 권력의 허망함과 그것을 향한 무서운 집념이 가져오는 인간성의 말살이다.

최근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화제의 중심에 선 ‘내부자들’ ‘터널’ ‘아수라’ ‘마스터’ ‘더 킹’ 등이 권력층이나 공무원의 풍자와 비판에서 시작해 절묘하게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행운까지 누린 건 바로 영화적 상상력과 언어와 시스템이 갖는 힘이 원동력이다. 국내 메이저영화투자배급사에 권력자가 압력을 넣었다는 보도가 갖는 신빙성의 근거라면 근거다.

▲ 영화 <변호인> 스틸 이미지

송강호는 결코 자신의 작품에 대해 화려한 수식어를 늘어놓을 줄 모른다. 다만 신중하게 고르고 일단 결정하면 감독이 원하는 그림과 영화적 화법에 충실하고자 한곳만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는 ‘그냥 배우’일 따름이니까. 그게 배우의 관객과의 소통법이니까. 그게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니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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