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진범 청춘칼럼]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다. 어제의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린 오늘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 순간을 그냥 보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종종 우리 인생의 순간을 박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색감을 렌즈를 통해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에 찰나의 감상을 올리기도 하며 순간을 '기록'한다. 기록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분명하다. 작게는 개인이 선명한 추억을 쌓게 해주는 것이 그것이며, 거창하게 말해서는 인류가 오늘의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은 그 덕분이다.

하지만 이 순간을 향유하고 있다는 증거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면, 찬란하던 삶의 순간은 빛을 읽고 결국 그 반짝이던 행복은 백지 상태보다 공허해지고 만다.

알고 지내던 한 친구가 있었다.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것인지를 아프게 배운 아이였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 몇 시간씩 핸드폰만 붙잡고 무언가를 적고는 했다. 매일 서너 시간을 기록하는 데에만 투자한 그의 1일은 그렇게 21시간이 되었다.

소중한 오늘의 하루를 순수한 과거의 시간이 좀먹은 것이다. 이 행동이 반복되자 과거에 머문 친구와 현재를 보내고 싶은 이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하지만 친구는 끝내 그 집착이 만들어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결국 고개를 저으며 친구를 떠나가는 이들도 생겼다. 친구는 떠나간 이들을 기록 속에서 마주한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지만,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은 후 친구의 얼굴엔 미묘한 표정만 남아있었다.

이 친구의 이야기가 극단적인 사례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처럼 기록을 남기는 일에 목매는 이들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에 여행을 준비한다고 말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정작 그토록 꿈꾸던 공간에 도달했을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 여행의 순간을 돌이켜보기 위해서는 분명 필요한 부분인 것은 맞지만 그들에게 여행의 시간 자체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흔적을 남기려다가 소중한 인생을 상실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공허한 흔적이 가지는 무게가 과연 어느 정도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의 기억은 모든 것을 잡고 있기에는 손이 부족해서 하나씩 쥐고 있던 끈을 놓는다. 그렇게 놓아진 존재는 기억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간다. 그 멀어짐에 대항하는 수단인 기록. 하지만 그 가치 있는 기록이 삶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항상 무언가를 얻은 만큼 잃어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다. 흩어질 기억을 두려워하지 말자. 괜찮다. 조금 잊어도, 잃어도 괜찮다. 우리의 오늘을 여유를 가지고 보내주는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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