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드라마 '도깨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21일 수많은 시청자들의 아쉬움 속에 16회로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는 그야말로 그동안의 모든 드라마의 신드롬을 뒤엎는 전 국민적 몸살을 유발했다.

‘도깨비’가 그토록 시청자들로 하여금 ‘앓이’를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배경은 뭣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또 어떤 게 있을까?

‘욕하면서 본다는’ 드라마답지 않게 철학이 돋보였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화두로 던진 가운데 전생과 현생의 인연 혹은 악연, 우연 혹은 운명, 인간과 신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신의 중간에 있는 또 다른 클래스의 존재의 정체성과 존재의 유무 등 다양한 설화와 상상과 판타지를 총동원했다.

▲ tvN 드라마 '도깨비' 스틸 이미지

김신(공유) 지은탁(김고은) 왕여(이동욱) 김선(유인나) 유덕화(육성재) 김 대표(조우진) 박중헌(김병철) 삼신할매(이엘) 신(神, 나비) 등은 모든 인연과 운명으로 얽히고 설켜있다. 그 주체는 神과 삼신할매고 나머진 객체다.

神은 가혹하거나 얄궂거나 장난스럽다. 그는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일 뿐”이라며 세상만사에 관여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일일이 개입하는 이중성을 지녔다. 오히려 모든 아이들의 탄생을 점지하는 삼신할매가 일일이 애정을 보인다.

고려 상장군 김신이 가슴에 검이 꽂힌 채 죽지도 못하고 도깨비로 1000년 가까이 사는 이유는 바로 그 검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神의 형벌이다.

▲ tvN 드라마 '도깨비' 스틸 이미지

외형적으로 그 형벌은 고려 왕 왕여가 내렸다. 허나 그 역시 1000년의 저주를 받아 저승사자로 살아간다. 상왕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최고권력을 꿈꿨던 박중헌은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 그 이복동생인 어린 여를 왕위에 앉힌 뒤 수렴청정을 한다.

신은 매 전장에서 승승장구한다. 중헌의 불안감이 커져갈수록 신의 국민적 지지도는 급상승한다. 중헌의 이간질이 여를 움직일 수 있는 근거다. 정통성이 결여된 여는 중헌의 힘을 등에 업고서라도 자리를 유지하는 게 옳다는 판단이 굳어가고 사랑했던 왕후이자 신의 동생인 선을 포함한 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죽인다.

神이 신과 여에게 내린 운명의 형벌은 기구했다. 신은 도깨비 신부를 만나야 가슴에 꽂힌 검을 뺄 수 있고, 그래야만 무로 돌아가 안식을 취할 수 있다. 저승사자는 큰 죄를 지은 자들이 현생에서 얻은 샐러리맨식 직업. 과거를 기억 못하는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망자들을 사후세계로 이끄는 험한 일을 하면서도 박봉을 온전하게 받기 위해 ‘사규’에 철저하게 복종한다.

▲ tvN 드라마 '도깨비' 스틸 이미지

얼굴이 바뀐 데다 과거를 기억 못하는 여를 신이 알아볼 리 만무하다. 神은 얄궂게도 두 사람을 한 집에서 머물게 함으로써 진한 우정이 발생하게끔 만든다.

모든 설화와 철학과 예술과 학문은 결국 생과 사로 귀결된다. 반드시, 그것도 가까운 시일 안에 죽을 걸 알기에 현재의 삶을 보다 더 보람되고 풍요로우며 행복하게 살고자 하기 마련. 사후세계를 모르기에 거긴 어떨까, 그곳에선 어떤 철학과 정치와 전쟁이 발생할까, 탐구하거나 상상하는 게 설화의 단초이자 매조짐이고 철학의 종착역이다.

‘도깨비’는 철저하게 생과 사를 사색하고 묻는다. 은탁은 태아 시절 어머니가 죽을 뻔했지만 신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9살과 19살에 죽을 운명이었지만 역시 신의 개입으로 목숨을 연장한다. 그러나 신의 눈엔 유독 은탁의 20살도 29살도 안 보인다. 결국 그녀는 되돌아온 신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29살에 유치원생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지만 30년 뒤 환생해 40년 전처럼 신과 만난다.

▲ tvN 드라마 '도깨비' 스틸 이미지

여기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형벌이고 기억이 고통이다. 여와 선은 물론 여자 인턴 저승사자조차 자신의 과거를 알고 나선 삶이 괴로워진다. 자신이 모신 여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신은 그러나 神의 저주로 영생이란 벌을 받는다.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늙고 죽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보면서도 자신은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 행운인지 처절한 비극인지 고민의 여지를 열어놓는다.

미국엔 ‘스타워즈’라도 있지만 우리 민족 설화는 그리스-로마신화처럼 세계의 정서와 맞닿지는 않는다. 단군신화나 그 외의 고대국가 및 삼국의 건국신화마저도 중국이 아전인수로 비틀려드는 형국이다. 심지어 도깨비라는 민간설화마저도 일제 강점기에 왜곡되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멋진 도깨비, ‘조각미남’ 저승사자, 섹시한 삼신할매, 장난꾸러기 창조주가 결합된 이 ‘짬뽕설화’는 왠지 그리스-로마 신화를 닮았다.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는 딸 다나에가 낳은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다나에를 청동탑에 가둔다. 그러나 바람둥이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해 지붕 틈새로 탑 안에 스며들어 다나에에게 접근한 뒤 페르세우스가 태어난다.

페르세우스는 고르고네스 3자매 중 메두사의 목을 밴 뒤 이를 이용해 아틀라스를 돌로 만들고, 어머니 카시오페이아의 죗값을 치를 재물로 바다의 괴물에게 바쳐진 안드로메다를 구출해 아내로 삼은 티탄족 신이다. 영화 ‘타이탄’이다.

그는 페르시아 왕국의 시조가 되는 페르세스를 아들로, 영웅 헤라클레스를 증손자로 둔 인물로서 결코 신화 안에 머문 게 아니라 역사를 숨 쉬게 만든 인물이다.

神은 다소 경망스러운 제우스라면 신은 페르세우스다. 당연히 은탁은 어머니 때문에 죽을 운명이었던 안드로메다다. 중헌은 카시오페이아의 오만함과 허영심에 분노한 암피트리테를 위해 그녀의 남편 포세이돈이 동원한 바다의 괴물이다. 신탁(神託-신의 고지)은 그리스신화뿐만 아니라 각 종교는 물론 전 세계의 설화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아크리시오스는 결국 페르세우스가 무심코 던진 창에 맞아 죽는다.

▲ tvN 드라마 '도깨비' 스틸 이미지

김은숙 작가는 그리스신화와 달리 운명은 신이 정하는 게 아니라 단지 신이 던지는 질문일 뿐이라며 인간 혹은 인간과 신의 중간인 도깨비나 저승사자가 개척해나가는 유기적 철학 속의 유동적 삶임을 강변한다. 은탁이란 이름은 신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냄새가 짙다. 은은 恩 혹은 隱이다. 은혜나 사랑의 계시 혹은 은밀한 고지 등의 의미일 듯. 神이 주장한 운명개척론과 연계된다.

그 첫 번째는 가슴 속의 검을 뽑은 뒤 무로 돌아갔던 신이 9년 만에 촛불을 끈 은탁의 소환에 저절로 이승으로 되돌아온 기적이다. 神이 쓴 시나리오엔 그런 건 없었다. 두 사람의 간절한 염원과 애틋한 애정이 운명을 바꾼 것이다.

여가 형사로, 선이 여배우로 동시에 각각 환생한 게 두 번째다. 고려시대에는 서로 갈등하고 반목했다. 선의 사랑을 모른 채 질투하고 미워했던 못난 여였다. 두 번째 생에서 여는 내내 죄스러워서 괴로워만 했다. 선 역시 운명을 원망하며 다음 생을 기약했고, 두 사람의 바람은 의외로 빨리 이뤄졌다.

▲ 영화 <베티블루 37.2> 스틸 이미지

아이러니컬한 건 대중이 이 ‘대하역사통속연애소설’에 열광한 바탕에 자본주의에 대한 천박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의 걸작 ‘베티 블루 37.2’(1986)에 답이 있다. 37.2도는 여자가 임신하기 가장 적합한 체온이다. 자유분방한 20대 여성 베티는 30살의 무명작가 조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경제적 어려움만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비교적 부유한 친구 부부와 함께 살던 때.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친구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매일 파티를 여는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조그의 작품은 번번이 출판이 거부되고, 조그의 아이를 임신하고픈 베티의 조급한 마음은 극에 달해 상상임신에 이르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신 여 덕화 그리고 은탁까지 함께 한 공간에서 알콩달콩 사는 게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은탁은 신을 만나자마자 자신이 도깨비 신부라며 영혼 없이 “사랑해요, 아저씨”라고 말한다. 만약 신이 캐나다 퀘벡의 유명 호텔의 소유주가 아니라 서울역의 노숙자였어도 그랬을까? 게다가 무려 920살의 나이차이라니!

▲ tvN 드라마 '도깨비' 스틸 이미지

물론 유 회장(김성겸)이 죽으며 회사를 손자인 덕화에게 주지 않고 전문경연인인 김 비서에게 넘겼고, 김 대표에서 김 회장이 된 상속인이 유 회장의 유언대로 신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한편 사회환원에도 기여한 점은 자본주의의 바람직한 유도다.

여자들이 신과 여에 열광한 이유는 공유고 이동욱이어서 그랬겠지만 신과 여 자체의 성격도 영향이 컸다.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자이지만 성격에서만큼은 부족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다. 질투가 심하고, 의처증까지 있으며, 툭하면 눈물을 흘린다. 겁까지 많다. 남녀평등을 넘어서 남자 없는 독립이 대세인 요즘 여자들의 입맛에 딱 맞춤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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