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강동형의 시사 논평] 국회에서 열린 ‘곧 BYE(바이) 전(展)’에 출품된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이 큰 논란에 휩싸였다. 작품 속 인물은 벌거벗은 채 잠들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배경을 뒤로하고 박 대통령 곁에는 국정농단사건의 주범 최순실씨가 주사기를 한 아름 안고 앉아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월호 7시간을 주제로 한 패러디 물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작가는 마네의 ‘올렝피아’를 패러디했다고 전하고 있다. 30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연대’에서 주관했으며 더불어 민주당 표창원의원이 대관에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단체의 이름만 보더라도 예술성과는 거리가 있는 이색 전시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표현의 동물이다. 동물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상상의 동물인 인간만큼 글과 그림, 노래 등 다양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동물이 있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게 바로 ‘표현의 자유’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특성이면서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은 궁극적으로 표현에 의해, 국민의 의사에 의해 결정된다. 그 전제가 바로 표현의 자유다.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특히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언론의 자유를 막거나,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법 제정도 금지하고 있다.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는 제한적이다. 헌법 제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제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 조항도 갖고 있다.

인터넷상에 패더디 물이 넘쳐 나고, 이러한 패러디 물도 어엿한 창작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곧 바이전’ 출품작 ‘더러운 잠’을 패러디 작품,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외설이냐 예술이냐’의 관점에서 보면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유교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혐오감을 주는 외설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부정적인 시각은 클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 대한 인격권 침해이고 초상권 침해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여성비하이고 인격모독이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을 두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림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몫인 까닭이다.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쟁의 화살이 과녁을 벗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작가 보다 전시회가 열리도록 장소를 주선한 표창원 의원이 뭇매를 맞고 있는 현상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의 내용을 보지도 않고 출판한 출판업자가 글을 쓴 사람 보다 더 큰 비난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표 의원이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전시회에 표 의원이 개입하면서 작품 전시회가 아닌 정치행위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표 의원에게 억울한 점도 있지만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우상호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가 그림을 훼손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는 별개로 표 의원의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표창원 의원을 향하는 비난 여론은 표의원 보다는 그를 영입한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할 수 밖에 없다. 문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군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지 않다면, 표 의원은 문제가 된 작품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면 끝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엄중한 시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아무튼 표 의원은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을 되새겨 들어야 할 것 같다. 한 마디로 오해 받을 일을 삼가라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은 누가 봐도 예술작품은 아니지만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닌 것 같다. ‘올렝피아’ 가 아닌 동화속 ‘잠자는 공주’를 패러디 했다면 같은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저질 논란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풍자물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웃자고 한 얘기를 죽자고 덤빈다고 한탄한 방송인 김제동씨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풍자를 풍자로 보지 못하고 죽자고 덤비는 시국과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풍자물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는 것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 또한 우리사회가 극복해야할 대상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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