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혼인신고가 수리되면 일응 혼인이 성립합니다. 그러나 일정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 혼인이 무효이거나 혼인을 취소할 수 있고 혼인의 무효사유와 취소사유는 법정되어 있습니다.

혼인취소의 원인에는 ① 혼인연령의 미달(민법 제 817조, 제807조), ② 동의를 요하는 혼인에서 동의가 없는 경우(민법 제 817조, 제808조), ③ 근친혼(민법 제817조, 제809조의 사유 중에서 무효사유를 제외한 것), ④ 근친혼(민법 제817조, 제810조), ⑤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경우(민법 제816조 제2호), ⑥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혼인(민법 제816조 제3호)이 있습니다.

서울가정법원은 사기로 인한 혼인이란 혼인의 당사자 또는 제3자가 위법한 수단으로 혼인의 상대방 또는 양당사자를 기망하여 착오에 빠진 혼인의 상대방 또는 양당사자가 혼인의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성립한 혼인을 말하고, 혼인의 성립에 있어서는 혼인의 성립을 희망한 나머지 사실을 과장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거짓약속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사기를 이유로 혼인을 취소하려면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기망이 있어야 한다고 할 것인바,

통상 재산관계나 경제적 능력, 집안내력, 직업 등에 대한 기망은 혼인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혼인 후 허위가 발견되었더라도 그러한 혼인은 이혼에 의하여 해소됨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으나, 그러한 기망이 적극적인 허위사실의 고지 등 위법한 수단에 의한 것이고 일반인도 그와 같은 기망에 의한 착오가 없었더라면 혼인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혼인의 취소가 허용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서울가정법원 2004. 1. 16. 선고 2002드단69092 판결)

최근에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와 관련하여 결혼 전 성폭행을 당해 출산했던 사실을 숨겼더라도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안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갑은 국제결혼중개를 통해 만난 을과 2012년 4월 결혼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갑은 이후 2013년 의붓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였습니다. 의붓시아버지는 범행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재판 과정에서 갑의 과거 출산 경험이 밝혀졌습니다. 갑은 "13살 때 베트남에서 소수민족 남성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뒤 임신을 했는데, 친정집으로 돌아와 낳은 아이는 남성이 데려가 버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 을은 갑이 맞선 당시는 물론 결혼 이후에도 출산 사실을 숨겼다며 혼인취소와 위자료 3,000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갑은 의붓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는데도 남편이 방치했다며 이혼과 위자료 1,000만원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습니다.

1,2심은 "출산 경력은 상대가 혼인을 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고려요소"라며, "갑이 남편인 을에게 이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은 이혼사유"라며 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원심 재판부는 “결혼중개업자는 혼인 전 원고에게 피고의 출산경력에 관한 사실을 고지해 원고가 혼인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자신의 과거 출산경력에 대해 알리지 않았고 베트남 현지 결혼중개업자도 원고에게 이를 알리지 않음으로써 원고를 기망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원심 재판부는 “초혼인 원고가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베트남 국적의 피고를 만나 피고도 초혼인 것으로 알고 혼인을 하게 된 사정 및 통상 혼인 당사자 일방의 출산경력은 타방 당사자의 혼인에 관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대한 고려요소에 해당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피고의 출산경력을 알았더라면 혼인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결국 원고는 민법 제816조 제3호가 정한 혼인취소 사유인 ‘사기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대법원 특별3부는 40대 남성 을이 국제결혼으로 만난 베트남 국적의 부인 갑(26)을 상대로 "갑의 출산 전력을 알았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낸 혼인취소소송(2015므654)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출산 경력이나 경위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한다"며, "혼인의 당사자나 제3자가 이같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그것이 상대방의 혼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정만을 들어 일률적으로 고지의무를 인정해 혼인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출산의 경위와 출산한 자녀의 생존 여부 및 그에 대한 양육책임이나 부양책임의 존부, 실제 양육이나 교류가 이뤄졌는지 여부와 그 시기 및 정도, 출산 경력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는지 아니면 소극적인 것에 불과했는지 등을 살펴야 하고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이 신의성실의무에 비춰 비난 받을 정도라고 할 수 있는지까지 심리해야 한다"며,

"당사자가 성장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성폭력범죄 등의 피해를 입어 임신을 하고 출산까지 했지만 이후 그 자녀와 관계가 단절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양육이나 교류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경우라면 단순히 출산 경력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민법 제816조 3호가 규정하고 있는 혼인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위 대법원은 출산 경력이나 경위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이 신의성실의무에 비춰 비난 받을 정도인 경우에야 비로소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위 판결은 성폭력범죄의 결과로 이루어진 출산의 사실은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의 비밀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혼인시에도 이를 고지할 신의칙상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여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진일보한 판단이라고 할 것이나, 구체적인 사안에서 혼인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서 상대방에게 알려야할 신의칙상 의무이고 일반인도 그와 같은 기망에 의한 착오가 없었더라면 혼인에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경우 상대방의 보호도 고려해야 하는 것으로서, 아동성폭력 피해 여성의 출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라고 할 것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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