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고대인들은 뱀이 허물을 벗으면서 자라나는 것을 보고 뱀을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비결은 처음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변함없이 머물러 있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여겼다면, 커다란 바위나 별 같은 것으로 그 상징을 삼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는 것을 영원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하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이 처음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랑이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이 깊어져 가는 부부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부부들도 살아오는 동안에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들을 넘기는 과정들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지게 된 것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그 사람이 이렇게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이들은 상대가 결혼 전에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자기 집 식구 또는 밖으로만 돌아다닌다고 불평을 하는가 하면, 결혼 전에는 선물도 사주고 여행도 가자고 하더니 이제는 돈 모을 줄만 알았지 쓸 줄은 모른다고 하면서 마치 속아서 결혼한 것처럼 억울해합니다.

심지어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의 연애에 빠져서 가정에 커다란 위기를 불러오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히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빌어야 할까요? 사실 이들 중에는 헤어지는 것이 나아 보이는 경우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픈 순간들을 잘 겪어 내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들도 뜻밖에 많습니다.

50대 중반의 부부가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남편에게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부인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남편은 성실한 직장인이었는데 회사의 중역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 남편을 내조해왔던 부인은 아주 행복해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동안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부인에게 다 말하지 못하고, 그 대신 (예전에는 부하 직원이었던) 다른 여인에게 이야기하면서 위로와 조언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남편에게서 직접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 부인은 이혼을 해야 하나 참고 살아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그렇듯 이 부부는 그 동안 각자 자신의 할 일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믿고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부인이 알게 되면 덩달아 불안해하거나 어쩌면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부인대로 남편이 때때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남편이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공연히 나설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이야기할 것이 점점 없어졌고 남편은 부인 아닌 다른 여성에게 점점 끌리게 되고 의지하는 마음이 커져간 것이었습니다.

이 부부는 몇 차례의 상담을 통해서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서로의 속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서로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예전보다 오히려 사랑이 더 깊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다시 사랑할 수 있느냐, 그리고 왜 꼭 그래야만 하느냐고 되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영원한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이런 위기를 겪었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였기 때문에 지금 그럴 수 있게 된 것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러기로 결심한다면 당신도 사례의 중년부부들처럼 사랑이 끝날 위기를 잘 극복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인생은 커다란 학습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습이란 이미 배운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애써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랑이란 당신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행운의 열쇠’가 아니라 그 학습 과정에서 주어지는 과제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변했다고 느껴질 때 힘들다고 좌절하지 말고, 사랑을 새롭게 배울 기회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사랑이 식었다거나 상대가 변했다고 느껴질 때 그것을 슬퍼하고 분노하는 대신에, 당신 자신에 대해서 상대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에 대해서 미처 몰랐던 점을 배우고 성장할 기회로 받아들이기를 권합니다.

왜 구태여 힘들게 그래야 하느냐고요?
칸초네 명곡 ‘눈물 속에 피는 꽃’처럼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인격의 성장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 상대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새롭게 깨달아 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사랑을 한때의 감정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 영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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