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다은 청춘칼럼] 몇 주 전 주말부터 샤브샤브집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넉넉하게 알바 시작 시간 십 분 전에 도착해야 한다. 이미 서빙을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넉살좋은 미소를 건네고 곧바로 탈의실로 향한다. 각 잡힌 정장 바지와 흰 유니폼을 차려입고 검은 구두까지 갖춰 신은 다음, 허리에 두르는 앞치마를 꽉 조여 맨다. 기름 바닥 범벅인 주방을 거쳐 나오면 바로 홀이다. 주말 오후 타임에는 손님들이 언제나 가득하다. 사각 지대에 몸을 숨겨 발목을 꾹꾹 눌러주곤 다시 구두를 신는다. 오늘도 힘내자, 곧 지칠 발에게 건네는 격려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붙게 되면서 나는 집을 떠나, 어머니를 떠나, 고향을 떠나 홀로 상경했다. 향수(鄕愁)는 곧 허기짐이 되어 나타났다. 텅 비어 있는 마음속 어딘가를 장이나 위로 착각한 듯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었다. 통제하는 이도 없고 돈도 넉넉할 때라, 수업이 끝나면 주로 외식을 하고 틈만 나면 간식을 사먹었다. 식비 외에 다른 지출도 컸다. 학기 초반이니 과 행사 참여비나 과잠비를 걷었고, 날이 풀리면서 입을 옷이 없어 가벼운 옷도 몇 벌 샀다. 한 달이 끝나가기 열흘 전 통장 내역을 확인했는데 아뿔싸, 단돈 이 만원도 남지 않았다. 무엇에 그렇게 돈을 썼는지 나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통장 내역을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봤다. 매일 꾸준히 나간 것은 다름 아닌 식비였다. 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어딘가 죄스럽게 느껴졌다. 설날 때 친척들에게 받은 용돈으로는 도저히 3월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기 초반인 대학생 새내기에게 남아도는 것은 시간이요, 부족한 것은 돈이었다. 급하게 알바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장기 근무자라 패스, 성별이 안 돼서 패스, 주중이라 패스…. 안 되는 조건을 다 넘기다 보니까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홀서빙 아르바이트였다. 속전속결로 면접에 붙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가득했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자 ‘언제 끝나지’ 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손님들이 먹고 간 음식물 가득한 그릇들을 치우고 한 번에 대여섯 개가 넘는 접시를 들어 주방에 날라야 했다. 밝은 미소는 필수였다. 셔츠에, 피부에 기름이 묻어도 아무렇지 않아질 즈음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최저 시급 6,030원. 작년의 5,580원에서 450원 오른 값이다. 사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그렇게 낮은 수준의 시급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나라이다. 시급이 2,000원을 웃도는 나라들은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물가가 낮다. 물가를 감안하지 않은 상태의 최저시급은 노동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값이다. 그들은 한 시간을 일해서 얻은 돈으로 가장 비싼 햄버거 세트 하나를 시켜먹는 사치를 부릴 수 있다. 최소한 햄버거 세트 두 개는 살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최소한 영화 한 편은 볼 수 있을 정도라도.

일을 끝내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깜빡하고 켜뒀던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 5통이 찍혀 있었다. 우리 집, 엄마, 아부지, 엄마, 엄마…. 가게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도 전화가 안 돼서 무슨 일이 난 줄 알았단다. 과제를 한답시고 확인을 못했다고 둘러댔다. “요즘 별 일 없지? 밥은 먹었고?” 엄마의 그 말이 나오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터졌다. 그러고 보니 저녁도 먹지 않고 쉴 틈 없이 일했구나. 엄마는 ‘밥 잘 챙겨 먹어라’며 전화를 끊었다. 밤공기가 유독 차게 느껴졌다. 피곤에 절은 몸을 버스에 싣고 죽은 듯 잠에 빠져들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칠 뻔했다.

알바를 이틀 만에 관두게 되었다. 엄지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서 찾아간 병원에서 ‘무지외반증(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기울어져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고 ‘더 이상 오래 서있는 일을 하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서였다. 돈 벌어서 밥 먹고 건강해지려고 일을 하는 건데,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으니 빨리 손을 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첫 아르바이트는 이틀 만에 막을 내렸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비록 각박하고 속된 말로 더러운 세상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대들, 오기로라도 살아남자. 암만 더러운 세상이라지만 내 유니폼에 묻었던 기름때만 할까. 우리들은 때 묻은 유니폼을 입어서 더욱 빛나 보이는 사람들이다. 무엇을 입어도 우린 청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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