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스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주엔 강동원의 외증조부 고 이종만 씨의 친일행적과 더불어 강동원의 그를 향한 존경의 인터뷰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주엔 임창정이 만삭의 아내에게 운전을 시킨 사진 한 장이 찬반양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한 매체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과 강동원이 과거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증조부가 이종만 씨”라고 한 발언에 근거해 이 씨가 친일파였다고 적었다. 그러자 강동원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강동원의 이름으로 해당 게시물을 ‘블라인드’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또 다른 매체가 이런 내용들을 적시함으로써 강동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결국 모든 내용에 대해 사과했다.

▲ 영화 <검사외전> 스틸 이미지

그러나 이 씨의 정체성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다. 일단 그의 위안부 지원 논란은 일본군에 전쟁 위문품을 보낸 수준이라고 정리됐다. 그럼에도 친일행적에 대한 진실이 확실히 가려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 신문은 예전의 칼럼을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남호 이종만은 일제강점기 기업가로 일제에 돈을 헌납한 것은 맞지만 그 돈의 열 배 이상을 사회사업에 쏟은 인물’로 ‘그가 일제에 낸 돈은 1000원이었고, 노동자 농민 교육사업 등에 환원한 금액은 80여만 원(현재 가치로 800여억 원)에 이른다’는 것. 또 칼럼은 ‘권력을 독점하는 자 없이 평등하고, 재화는 공유되고 생활이 보장되며, 각 개인이 충분히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대동정신’이 그의 사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일제강점기란 상황 탓에 어쩔 수 없이 일부 일본에 협조한 것은 맞지만 궁극적으로 애국과 애족의 행동에 더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내용이다.

▲ 영화 <불량남녀> 스틸 이미지

임창정은 “지인과 집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귀가하던 길에 아내가 운전을 자청했고 저 또한(아내의) 안전(운전)을 예의 주시했다”며 “결혼 후 아내의 근황과 일상적인 행복을 알린다는 표현을 SNS 특성상 다소 장난스럽게 표현한 컨셉트가 오해의 소지를 낳았던 것 같아 죄송하다”고 사과와 해명을 했다. 더불어 “아내의 안전을 걱정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되레 감사하다”고 고마운 뜻을 전했다.

이 씨의 친일행적에 대한 진실여부는 가려지는 게 무조건 지당하고 합당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월북했고, 사망 후에도 북한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빨갱이’고 세습독재정권이고를 떠나 북한은 친일파엔 엄청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친일파가 북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위대한 인물로 우러름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와 국민은 이 씨 뿐만 아니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의 매국노와 애국자를 명확하게 구별해내고 정확하게 논공행상과 일벌백계를 해야 함에 있어서 게으르거나 무책임해선 안 될 것이다. 왜냐면 다수의 국민들이 민생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다툼에 놀아나 ‘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서 대치한 서글픈 현실의 저변엔 최순실 등 국정농단의 주역들만큼이나 예전에 국격과 민권을 유린한 매국적 지도층의 농간이 잔존해있기 때문이다.

▲ 영화 <검사외전> 스틸 이미지

이 씨의 일방적 친일행적이 사실이고, 그런 외증조부에 대한 존경의 뜻을 만천하에 당당하게 알린 강동원이 뭇매를 맞아야 한다면 아직도 논란 중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다카키 마사오란 이전 모습의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맹세와 만주 괴뢰군 장교로서의 활동 등 매우 적극적인 친일행적에 대한 진실규명부터 명확히 할 일이다. 국정교과서에 아버지를 아름답게 그리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강동원 이상의 냉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라면 당사자와 수많은 국민들의 반발을 외면한 채 달랑 10억 엔에 합의한 행위 역시 철저하게 잘잘못을 가릴 일이다.

그런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있는 엄청난 역사의 과오 혹은 의혹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정부와 그 정부에 대해 진실규명을 요구하지 않는 국민들이 친일이 확실하지 않은 한 부자의 생전의 행적과 그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외증손자의 완벽하지 못한 역사지식을 꼬투리 잡아 뼈까지 발릴 자세로 달려드는 것은 의도가 아니라 순서가 잘못됐다.

우리 역사는 자신 혹은 자식의 생존을 위해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른 채 빨간 깃발을 흔들었다 부역죄로 학살된 양민을 기록한다. 그런데 정부와 국민은 한국전쟁 때 수도함락 직전 안심하라며 시민을 속이고 한강다리를 끊은 채 도망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외면한다.

역사는 일정부분을 승자가 만들고 진실은 보다 더 바람직한 미래가 수정한다. 이씨조선 시조 이성계는 남측에선 영웅이지만 북측에선 반역자다. 19세기 유럽을 포함한 구 소련이 수정주의를 채택해 내부 분열이 일어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주의가 움츠러들고, 20세기 결국 소련이 붕괴됐으며, 수정주의를 비난했던 중국마저도 러시아와 함께 자본주의 안에 들어가도록 만든 힘은 정권이 아니라 경제와 국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 영화 <치외법권> 스틸 이미지

임창정은 아내가 2달 뒤 출산한다고 했다. 사람마다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운전하는 임산부는 적지 않다. 자신도 만삭에 운전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댓글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만약 임창정이 상습적으로 운전을 시켰다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앞뒤 정황상 그랬을 ‘혐의’는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그의 주장대로 ‘재미삼아’의 의도가 더 확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다수가 임창정을 못된 남편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사회적 불만에 대한 불특정한 해소는 아닐까?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격 그리고 경제력은 날로 높아져만 가는데 정작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한류열풍으로 배용준부터 박보검까지 한국 남성은 전 세계 여성들의 이상형이 된 지 오래지만 정작 ‘진짜’ 한국남성들은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변변히 못하는 게 현실이다.

얻다 대고 하소연도 못한다. 외국사람들에게 그랬다간 ‘한류열풍에 배부른 자의 헛소리’로 비칠 테고, 내국인에게 그랬다간 ‘나보다 더 어려워?’라고 핀잔을 들을 확률이 높다.

▲ 영화 <불량남녀> 스틸 이미지

설리-최자의 결별소식이 알려지자 ‘힘내라’고 격려한다. 바로 여기에 임창정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 혹은 시기심과 비슷한 맥락의 과도한 관심이 존재한다. 또래의 젊은이들은 많이 만나는 만큼 헤어진다. 성장의 과정이거나 결혼까지의 궤도다.

루머가 개입된 이혼의 아픔을 겪은 뒤 재혼으로 행복을 되찾은 임창정에게 축복을 보내는 것이나 최자와 설리 뿐만 아니라 헤어진 수많은 연예인에게 격려를 보내는 것은 정작 본인들에겐 모두 불편할 따름이다.

그냥 그들의 음반(원)을 사주고, 그들이 출연하는 작품을 봐주며 박수를 치는 게 최상의 배려이자 응원이다. 정작 우리가 비난하거나 숭상할 사람은 경제지표를 만들고, 역사를 왜곡하거나 바로잡는 사회지도층이다. 연예인의 사소한 일상이나 확인되지 않은 논란에 민심을 낭비하는 사이 정치인들은 포퓰리즘을 음모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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