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8일(현지 시각) 척 베리가 90살에 세상을 떠나자 현지 언론들은 ‘로큰롤의 전설의 별세’ 등으로 표현했다. 1619년 북아메리카 대륙에 첫 아프리카 흑인노예가 끌려온 뒤 당장 미국인들이 얻은 이익은 신대륙 개척에 필요한 노동력이었지만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받은 선물은 리듬&블루스와 로큰롤이라는 문화적, 예술적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리는 그 주인공이다.

그만큼 록은 지구촌 대중음악의 뿌리이자 골격이 됐고, 그 결정적인 DNA가 리듬&블루스에서 전수됐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 혈통의 베리는 ‘흑인계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린다. 특유의 오리걸음(덕 워크) 퍼포먼스로 쇼맨쉽을 발휘한 스타이기 때문이다. 구부정한 자세로 한쪽 다리를 든 채 궁둥이를 뒤로 빼고 전진하며 기타를 연주하는 행위인데 국내에선 김수철의 퍼포먼스에서 볼 수 있었다. 프레슬리는 데뷔 직후 스타덤에 오른 뒤 기타를 맨 체 하도 하체를 흔들어대는 통에 ‘어른’들이 민망하다고 호소하는 바람에 한동안 방송에 상체만 나왔다. 둘이 유사한 점이다.

베리는 로큰롤 가수이자 깁슨 ES 355와 350 모델로 대표되는 록 기타리스트로서 오늘날 록과 헤비메틀 기타 주법의 전형인 더블노트 벤딩(두 개의 음을 동시에 퉁기며 왜곡하는 연주)에 의한 런 주법(초킹-피킹한 뒤 현을 짚은 손가락을 움직여 음을 변화, 풀링 오프-누르고 있는 줄을 잡아 뜯 듯 뗌으로써 하행 슬러를 연주, 해머링 온-개방현을 피킹한 뒤 그곳을 망치로 내리치듯 짚는 것-등)과 얼터네이트 피킹(업다운 반복)을 완성하고 발전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가 대중음악의 발전에 하나의 이정표가 된 배경은 시대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945년 미국 재즈계는 전쟁 중 경영난으로 빅밴드가 사라지고 소편성의 캄보밴드가 유행하던 시기다. 이는 스윙재즈를 밀어내고 잼세션(즉흥연주) 형태로 진행되는 비밥의 유행을 낳았고, 그것은 모던재즈의 모체가 된다.

1948년 컬럼비아레코드사가 1분간 33과 3분의1 회전으로 장시간 연주를 담을 수 있는 LP(Long Playing) 레코드를 본격적으로 대중화시킴으로써 음반과 음악시장은 요동을 치게 된다. 더불어 전리품으로 독일에서 가져온 테이프 레코딩 기술로 더빙이 가능해져 저 유명한 패티 페이지의 ‘테네시 월츠’ 같은 명곡의 탄생에 기여한다. 이 노래는 페이지가 4번의 더빙으로 녹음했지만 발표 당시 대중은 4명의 비슷한 톤의 가수가 부른 것으로 착각했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음악계는 다시 요동을 친다. 그 사회적 영향으로 미시시피강 유역 남부 흑인들의 싸구려 술집을 중심으로 리듬&블루스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다. 미시시피 강은 블루스의 본고장인 테네시주 멤피스와 그보다 아래 지역인 재즈의 본고장 루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걸쳐있는 팝 역사상 요충지다. 이렇게 두 전쟁은 미국의 대중음악을 ‘비빔밥’으로 만들고 간소화, 대중화의 길로 급격하게 치닫게 만든다. 물론 이 흐름은 세계의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꾼다.

블루스의 가장 큰 줄기는 지역특성상 델타(삼각주)블루스다. 이의 효시는 이름도 적당한 머디 워터스(진흙탕물-삼각주의 특징)라는 뮤지션이다. 흑인 노예가 만든 블루스에서 재즈가 파생되고, 오리올(유럽 백인과 북아메리카 흑인과의 혼혈로 비교적 부유했다)들이 값비싼 악기들로 블루스를 재포장해 리듬&블루스를 만들고 백인이 상업화했다. 북미에 진출한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의 민속음악인 블루그래스를 클래식과 섞어 미국 민요인 포크를 만들어냈고, 서부개척 과정에서 이를 발전시켜 컨트리&웨스턴을 만들어냈다.

한국전 등의 영향으로 컨트리&웨스턴과 리듬&블루스가 널리 유행되는 가운데 이 두 가지를 결합하는 작용이 일어났는데 그 초기 멤버가 바로 영화 ‘폭력교실’의 주제가 ‘Rock around the clock’으로 스타가 된 빌 헤일리 앤 더 코메츠의 리더 헤일리(흑인)다. 동시간대 고교 졸업 후 트럭운전사로 취업한 한 청년이 첫 월급 4달러로 선레코드사에 가서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줄 노래 2곡을 녹음한 뒤 세계적인 스타이자 로큰롤의 아버지가 되니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다. 1954~5년의 일이다.

역시 1955년 ‘Maybellene’이란 곡이 빅히트되며 로큰롤의 본격적인 황금시대를 여니 그 주인공이 바로 척 베리였다. 그는 머디 워터스를 롤모델로 데뷔했지만 블루스가 아닌 로큰롤로 성공했다. 비틀즈가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프레슬리고, 무명시절 가장 많이 연주한 레퍼터리가 베리였다는 사실은 지겨우리만치 유명하다. 팝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성과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밴드가 비틀즈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프레슬리의 인기를 노린 철부지 10대에서 출발해 결국 록으로 세계의 음악을 통일한 베리를 닮고자 했던 진정한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베리의 뮤지션으로서의 위대함은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미국인들이 한여름에 가장 즐기는 노래는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인데 이는 베리의 ‘Sweet little sixteen’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하드록의 전설적 밴드 에어로스미스의 기타리스트 조 페리의 주법은 베리의 헤비메틀 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리가 1958년 발표해 최대의 히트곡이자 세기의 명곡으로 기록된 ‘Johnny B. Goode’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977년 발사한 무인 우주선 보이저호에 실려 보낸 앨범 ‘골든 레코드’에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등과 함께 담겼다.

1984년 대중음악의 오스카인 그래미어워즈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고, 1986년 창립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엔 첫 헌액자로 선정됐으며, 2004년(2011년 수정) 록 전문지 롤링스톤이 뽑은 ‘역대 가장 위대한 예술인 100명’ 중 비틀즈,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 롤링 스톤즈에 이어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먼저 간 비틀즈의 존 레넌이 ‘뮤직’이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백인 로큰롤’이라면, 척 베리는 ‘흑인 로큰롤’이자 ‘록 기타’다. 그는 로큰롤이란 음악과 록기타 연주법의 골격과 인테리어를 완성한 동시에 로큰롤의 자유로운 정신과 인생의 즐김에 대한 자세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흑인이 만든 블루스를 백인이 빼앗아 리듬&블루스로 상업화하자 백인의 컨트리&웨스턴과 결합해 형성된 로큰롤을 대중화하는 것으로 반격한 개척자이자 혁명가였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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