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1TV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25일 KBS1은 새 교양 프로그램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 첫 방송을 내보냈다. 2013년부터 3년여 150부작으로 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시사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의 스핀오프이자 여행예능의 확장이란 정체성을 지녔다.

‘역사기행 그곳’은 제작진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참으로 기막힌 타이밍에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돼 청와대를 나오고, 세월호가 침몰된 지 3년이 다 돼서야 인양된 시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정교과서 시행에의 제동과도 맞물린다. 인기 역사 강사 설민석은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있다. 이래저래 절묘하다.

1회에서 두 주인공은 중국 상하이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비롯해 애국지사(의열단, 한인애국단)들의 발자취를 차곡차곡 밟아갔다. 임시정부는 왕정군주제를 벗어난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국선언과 자주독립의 의미였다.

KBS2는 ‘배틀 트립’으로 여행예능프로그램의 새 패러다임을 열었다면 KBS1은 방송사의 정체성과 채널의 공영성에 기준해 시사교양의 뿌리와 줄기에 여행예능의 겉옷을 입혀 시청자에게 쉽게 접근하는 고단수의 전략을 채택했다. 매우 적절하고 현명한 기획이다.

▲ 사진=KBS 1TV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 화면 캡처

최태성은 방송 활약상에서 드러난 교육과 재미의 접목이란 주특기를 아주 잘 살려 중국 액션영화를 대표하는 ‘정무문’과 ‘황비홍’을 예로 들었다. 황페이훙(황비홍)은 1842년 영국이 홍콩을 소유하고 중국이 영국 및 서구열강에 굴욕적인 조건으로 문호를 개방하게 된 난징조약으로 끝난 아편전쟁의 한복판에 서있던 인물로서 중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애쓴 애국자였다는 최태성의 설명은 그저 무술의 고수로만 인식된 황에 대한 재조명은 물론 우리의 역사관을 새삼스레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

리샤오룽(이소룡)의 ‘정무문’은 정문일침이자 화룡점정이었다. 20세기 초 일제강점시대 일본인 소유의 한 건물 정문에 붙은 ‘중국인과 개 출입금지’란 팻말에 분노해 자신의 국적을 우롱하는 일본인들을 때려눕힌 뒤 그 팻말을 깨부수는 첸(리샤오룽)의 장면을 보여준 의도는 100번 옳았다.

황과 첸을 등장시킨 이유는 김구 이봉창 윤봉길 등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독립운동의 주인공들의 발자취를 찾기 위한 예열이었다. 최태성은 의열단장 김원봉을 거론하며 와 닿기 쉽게 영화 ‘암살’의 조승우와 ‘밀정’의 이병헌을 대입했다. 이런 재미있는 역사공부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이렇게 쉽게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역사공부에 감동하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

▲ 사진=KBS 1TV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 화면 캡처

또한 그 시대 발간돼 중국 현대문학의 새 장을 연 루쉰의 ‘아큐정전’도 거론했다. 바로 루쉰공원이었다. 이곳은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으로 시라카와 요시노리 상하이 사령관을 폭사시킨 역사적인 장소다. 최태성은 당시 죽은 시라카와가 입고 있던 갈가리 찢기고 피가 묻은 제복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돼있다고 의미심장한 설명을 덧붙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의 유패를 ‘모셔’두고 절을 하는 곳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망령을 부르면서 또다시 욱일승천기가 휘날리기를 꿈꾸는 사람들의 의식장소다.

이토록 재미있고, 의미 깊으며, 국정교과서가 왜 다수의 반대에 부닥쳤는지 적확하게 짚어주는 공영방송사다운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진행자 이윤석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시선이 전부 곱지는 않은 게 옥에 티다. 상하이 거리의 사람들이 최태성에게 먼저 사인지를 내밀자 “(MBC)‘복면가왕’ 안 보냐”고 묻는 이윤석은 현재 개그맨으로서 제2의 전성기일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 사진=KBS 1TV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 화면 캡처

그는 2년 전 TV조선 ‘강적들’에서 ‘야당은 전라도당, 친노당’이라는 발언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오늘날 이만큼 살게 해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닌 적도 있다.

그의 발언이 전혀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역시 개인적 취향이자 이념이며 소신이니 다른 사람이 가타부타 말할 게 못 된다. 그러나 과연 야당(현 더불어민주당)을 매우 싫어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면서 그가 이룬 경제발전의 업적을 찬양한다는 극단으로 쏠린 색깔을 띤 사람이 ‘우리의 시각과 새로운 테마로 재미있고 쉬운 역사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기획의도를 지닌 ‘역사기행 그곳’을 진행하는 게 안전할지에 대해선 의문점이 남는다.

‘우리의 시각’ 즉 이윤석의 정치적 성향과 역사에 대한 주관이 시청자들에게 주입될 가능성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강제로 밀어붙이려던 국정교과서는 박정희 정권이 채택했던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이 책은 김구의 항일애국운동을 ‘테러’로 왜곡하고,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표현해 반발을 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썼다. 1919년 4월 13일 수립된 임시정부와 만천하에 선언한 대한민국 건국의 정신을 잇는다는 의미다.

국정교과서는 또 5·16 군사정변을 ‘국민적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결여된 구 정치 세력과 그에 도전한 급진이념의 정치세력 모두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이 국가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한 일대 변혁’으로, 박정희를 ‘집권기에 한국경제는 고도성장의 이륙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는 측근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하였다’고 썼다. 박정희는 ‘안가’에서 술판을 벌이다 김재규의 총에 사살됐고, 그 술자리엔 여가수와 여대생 그리고 고급양주가 있었다.

▲ 사진=KBS 1TV <최태성 이윤석의 역사기행 그곳> 화면 캡처

최태성과 이윤석이 찾은 상하이사범대엔 한국과 중국의 ‘소녀상’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곳엔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잊을 순 없다’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두 사람은 위안부역사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국인들은 우리 위안부 할머니의 사진까지 걸어놓고 함께 위로하고 있었다. 그 처참한 역사의 현장 속 사진을 바라보던 이윤석은 “이거는 오래 못 보겠네요”라며 끝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선 한 편엔 상하이에서 ‘밝혀진’ 곳만 170개인 ‘위안소’에서 일본군들이 사용했던 콘돔이 전시돼있었다. 포장지엔 ‘돌격’이라고 적혀있었다.

고 박정희가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뒤 만주 괴뢰국에서 장교로 복무한 것은 각종 기록이 입증한다. 북한군 활동도 했다. 최태성과 이윤석은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않겠다”면서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 역사가 되니까”라고 시청자에게 당부했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고, 각자의 소신과 이념 역시 ‘다르다’는 차이의 인정을 받는 게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해 현재까지 이어진 민주공화국의 헌법의 정신에 들어맞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고집을 다수에게 심는 일방통행식 사상교육 역시 배제돼야 마땅하다.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자는 지상파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을 아주 편향된 정치적, 역사적 시각을 가진 연예인이 진행하는 게 자칫 ‘방송의 국정교과서’가 될 위험성은 없을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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