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디지털시대 영화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형만 한 아우 있다’다. 속편 혹은 시리즈의 후속편이 전편보다 재미나 완성도가 뛰어난 케이스가 비일비재하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매번 믿고 보게 만드는 오락영화인데 8번째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F 게리 그레이 연출, UPI코리아 배급)은 팝콘무비로서 더 이상 흠을 찾기 힘들 만큼 고른 미덕을 갖췄다. 지난 7편까지 마스터한 마니아라면 매우 버라이어티한 선물일 것이고, 단 한 편도 못 봤더라도 감상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도미닉(빈 디젤)은 연인 레티(미셸 로드리게즈)와 쿠바에서 장기 휴가 중이다. 조용히 살고 싶은 그의 앞에 해킹 테러의 전설 사이퍼(샤를리즈 테론)가 나타나 자신과 손을 잡고 커다란 일을 한번 벌이자고 제안한다. 단칼에 거부한 그는 그러나 사이퍼가 건넨 휴대전화 속을 본 뒤 뭔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스틸 이미지

정부 요원 루크(드웨인 존슨)에게 독일 베를린에 침투해 대량살상무기를 탈취해오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루크는 도미닉과 그의 동료들로 팀을 꾸려 무기를 회수하는 데 성공하지만 갑자기 도미닉이 태도를 바꿔 배신하고 무기를 빼앗아 잠적한다.

이를 계기로 팀은 사분오열되고 루크는 투옥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감옥에서 만난 죄수가 팀에 한을 품고 동료 한을 죽인 뒤 도미닉과 루크에게 잡혔던 데카드(제이슨 스타뎀)다. 어느 날 감옥의 전산오류로 루크의 수감방의 철문이 열리고 이를 계기로 감옥 안에 일대 혼란이 빚어진 가운데 루크와 데카드가 맞붙는다. 그러나 이는 모두 정부 고위간부 ‘미스터 노바디’의 의도였다. 그렇게 데카드가 가세한 팀이 재정비돼 도미닉과 사이퍼를 잡기 위한 어마어마한 작전이 시작된다.

첨단무기를 손에 쥔 사이퍼는 이에 그치지 않고 구 소련 대형잠수함에 장착된 핵미사일을 가동할 수 있는 리모컨 장치를 탈취해올 것을 도미닉에게 지시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위기가 다가온다.

▲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스틸 이미지

136분이 지루할 틈이 없다. 초반 쿠바의 정열적이고 아날로그의 정서가 넘실대는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올드 카들의 체이싱은 왜 이 영화가 자동차 액션의 대명사인지 웅변하는 선제공격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자동차라면 액션은 시퀀스이자 플롯이다. 사실 오락영화에서 큰 철학이나 메시지를 기대하는 관객은 없다. 뻔한 기승전결의 구도를 식상하다고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그 원칙에 따라 감정을 조절하는 즐김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마련.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에서 흠집을 찾긴 쉽지 않다. 잡생각을 할 틈도 없이 펼쳐지는 액션의 향연은 오락의 종합선물상자인데 어느 걸 먼저 즐길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감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스틸 이미지

감옥에서의 루크와 데카드의 맨몸액션은 왜 극장에 UFC 경기장보다 관객이 많은지, 왜 요즘 영화가 야마카시의 도움을 자주 받는지 입증한다. 사이퍼가 해킹을 통해 무선으로 수많은 자동차들을 조종해 도심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장면은 쾌속질주하는 열차와 지상을 스포츠카로 넘나들던 지난 시리즈와는 차원이 또 다르다. 특히 고층건물에 주차된 다수의 차량을 도로에 비처럼 쏟아지게 만드는 신은 관객의 상상력의 허를 찌른다.

당연히 압권은 후반부의 북극 얼음판 위에서의 다양한 종류의 슈퍼카들과 잠수함의 추격장면이다. ‘뭣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란 CF 카피는 바로 이 영화를 위해 일찍이 존재했던 듯하다.

▲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스틸 이미지

이 시리즈 마니아들의 공통적인 노스탤지어는 바로 전작을 유작으로 남기고 떠난 폴 워커일 것이다. 감독은 그 엄청난 공백을 메우는 장치로 우선 역할분담을 택했다. 도미닉에 집중됐던 스토리와 액션의 축을 사이퍼 데카드 루크 등에 골고루 분배함은 물론 레티와의 러브스토리와 신뢰라는 휴머니즘까지 끌어들였다.

더불어 ‘미스터 노바디’와 그 부하인 ‘리틀 노바디’ 사이의 직장유머, 팀원인 램지(나탈리 엠마뉴엘)에게 어필하기 위한 로먼(타이레스)과 테즈(루다크리스)의 신경전, 그리고 한국 관객에게도 먹힐 ‘따발총 개그’를 로먼에게 전담시킨 점 등의 소소한 재미도 넘쳐난다.

두 번째 장치는 데카드의 반전의 맹활약과 그의 가족들의 개입이고, 마지막은 마니아들만 알 수 있는 ‘브라이언’이란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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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리즈 도미닉이 강조하고 일관되게 지키려는 ‘가족의 소중함’은 이번엔 더욱 강화되다 못해 아예 영화의 몸집이자 구조가 됐다. 그리고 그걸 탄탄하게 유지하는 원동력이자 뼈대는 바로 믿음이고 사랑이란 상투적인 메시지인데 결코 식상하지 않게 잘 버무렸다.

감독의 영민함은 남녀 관객을 모두 끌어들일 두 가지의 장치를 동시에 교묘하게 활용한다는 데 더 있다. 카 액션은 당연히 남자용이다. 이 시리즈는 유독 연인사이를 이간질한다. 대거 동원된 쿠바의 ‘쭉쭉빵빵’ 미녀들부터 의외의 후진 레이싱까지 남자들의 눈이 호강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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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을 비롯한 슈퍼카부터 최소한 ‘그랜저급’ 이상 될 듯한 수백 대의 고급자동차들을 마구 부수고 날리는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물량공세는 시리즈 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됐을 것이란 짐작이 결코 어렵지 않다.

샤를리즈 테론은 다분히 여성용이다. 남자보다 완력이 열등한 여성이 남성을 이길 수 있는 기능은 두뇌다. 특유의 섬세하고 영특한 지혜를 활용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게 바로 한 명의 여자라는 설정은 통쾌하다. 게다가 그녀가 노리는 건 돈이 아니라 질서의 재편이란 점에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이퍼에게서 부족한 액션은 레티 담당이다.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단골로 액션연기를 펼쳐온 로드리게즈는 이번엔 제대로 역할분담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도 여성으로서의 매력까지 물씬 풍긴다. 그리고 감독은 부성애 혹은 모성애의 감동으로 방점을 찍는다. 여기엔 ‘깜짝 등장’의 데카드의 엄마도 한몫 거든다. 맥거핀 장치는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예상이 가능하지만 나름대로 짜릿하다. 15살 이상 관람 가. 1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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