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sbs '미운오리새끼' 방송 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연예계의 패러다임은 변화무쌍하다. 영화나 가요의 트렌드가 그렇고, 드라마나 예능 역시 철저하게 유행에 민감하다.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중의 눈에 가장 꾸준하고 활발하게 노출되는 가수로서 단연 손꼽히는 김건모의 값어치는 크다.

그는 1992년 데뷔앨범을 발표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른 뒤 정상의 위치를 고수해온 전형적인 장기집권형 실력파 가수다. 1990년대 음반판매에의 악영향을 우려해 많은 가수들이 예능 출연을 꺼려하던 것과 달리 그는 가요프로와 예능을 무차별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지금도 변함없이 가요 예능프로와 더불어 전형적인 관찰예능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예능인 ‘쉰건모’로서 더욱 명성을 날린다는 점에선 동시대의 가수들과 차별화된다.

신승훈과 이승환은 김건모와 전성기를 함께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발라드의 황제’고, ‘라이브의 어린 왕자’다. 그러나 TV와는 여전히 멀다. 그럼에도 그들은 변함없이 가요계의 초우량주다. 그 의의와 이유는?

세 명은 공통점이 참 많다. 남자로 봤을 때 셋은 모두 총각-이승환은 한 번 갔다 왔지만-이다. 50살이 넘은 나이지만 오래 혼자 살아왔고, 언제 결혼할지 오리무중이며, 적어도 보편타당한 기준에서 봤을 땐 아직 ‘철부지’다. 제도권 시각은 그 나이면 이미 결혼해 손자 손녀를 부모 품에 안겼어야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은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꼭 결혼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그리 절박하지 않은 듯하다. 겉으로 드러난 활동으로만 봤을 땐 작업실에 파묻혀 동료들과 음악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거나 외롭지 않을 만큼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들만큼 연애보다 음악을 더 사랑하는 또래는 흔치 않을 듯하다. 게다가 결혼을 서두르기엔 적령기가 많이 지났다.

경제적 풍요로움도 음악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그들을 자꾸 에고이즘에 빠져들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싱어 송라이터인 그들은 아무 경제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또래의 임원급 샐러리맨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의 저작권료를 받아 챙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많이 벌어 놨다.

세 명 모두 소속 기획사의 오너다. 이승환은 데뷔앨범을 내기 위해 음반사를 두루 뒤졌지만 제작을 해주겠다는 데가 없어 자비를 털어 직접 제작한 뒤 드림팩토리란 회사를 설립하고 지금껏 운영해왔다. 신승훈과 김건모는 각각 대전과 서울 신촌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 라인음향이란 당시 SM 수준의 거대기획사를 통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데뷔한 뒤 함께 전성기를 보냈다. 도로시컴퍼니와 건음기획은 그들이 만든 기획사다.

이렇듯 공통점이 많은 세 사람이지만 노선만큼은 확연히 다르다. 김건모는 대중친화형이다. 대중과 소통하는 콘텐츠라면 별로 까다롭지 않게 긍정적으로 합류하는 편이다. 연예인이라는 포장에 유념하기보다는 김건모라는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한 소탈한 스타일이다. 그의 의상이 조금 특이한 편인 건 연예인임을 부각하기 위함이 아니라 찰리 채플린 같은 그만의 개성의 자연스러운 표현일 따름이다.

이에 비교하면 신승훈과 이승환은 다분히 은둔형, 혹은 신비주의형이다. 물론 레게 R&B 발라드 가요 등은 물론 트렌디한 댄스뮤직까지 장르 불문하는 잡식의 엄청난 식욕을 보인 김건모와 달리 신승훈은 특유의 서정적인 발라드를, 이승환은 동화적 파스텔톤의 록을 각각 전문으로 한다는 외골수적 색깔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래도 김장훈 윤종신 유희열 윤도현 등에 비교해보면 달라도 매우 다르다.

서태지 식의 신비주의적 마케팅이 전혀 없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철저하게 계산됐다기보다는 몸에 밴 체질 혹은 선천적 결벽증과 연관되는 것 역시 부인하기 힘든 그들만의 개인적 특성이다.

▲ 사진=신승훈 공식사이트 화면 캡처

신승훈은 전성기 때 가요전문프로그램이 아니면 웬만해선 TV에 출연하지 않았다. 굳이 나대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대인기피증이 있거나 소극적인 성격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의외로 정반대다. 그가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방청객을 얼마나 즐겁게 만드는지, 대규모 콘서트를 게스트 없이 혼자서 어떻게 완벽하게 이끄는지 팬들은 이미 알고 있다.

단, 그가 완벽주의자인 것은 맞다. 그는 헤어스타일 하나 흐트러짐이 있어도 절대 카메라 앞에 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프로파간다나 포퓰리즘의 의도가 아닌, 그저 자기만족의 결벽증에 가깝다.

이승환도 결벽증면에선 신승훈과 비슷한 듯하지만 소셜테이너란 결정적인 변별성을 갖췄다. 김건모는 친한 지인들 사이에서 오지랖이 넓은 편이다. 그러나 신승훈에게 참견과 충고는 터부다. 외부로부터 자신에게 그런 게 들어오는 것 역시 반기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그는 특정 이념이나 개념을 강조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주관을 묵묵히 침묵 속에서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공개 노출이 그리 잦지 않으니 그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광경은 극히 보기 드물다.

▲ 사진=이승환 공식사이트 화면 캡처

이에 반해 이승환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셜테이너로서의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커밍아웃’했다. ‘덩크 슛’ 등의 음악에서 입증된 초기의 그는 ‘어린 왕자’란 별명답게 순수한 동화의 나라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지만 이혼의 아픔을 겪으면서, 또 혼자서 자신의 체질과는 동떨어진 연예계 생리와 맞서 싸우면서, 보다 더 숭고한 이상과 이념에 대한 시야가 확장됐고, 그걸 보다 더 널리 알리고자 하는 투사정신이 견고해졌다.

데뷔 초만 해도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리고픈 뮤지션으로서의 성취욕구와 더불어 스타가 되고 싶은 성공심리가 동시에 작용했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미 큰 성공을 거머쥔 그들에게 젊었을 때도 그리 탐탁지 않았던 TV출연이 기꺼울 리 만무하다. 전성기 때 TV 작가보다 라디오 작가들이 그들을 섭외하기 더 쉬웠다는 에피소드는 꾸며진 신화가 아니다. 그만큼 그들은 연출이 전적으로 개입하는 TV보다는 대중과 자신, 그리고 음악이 직접 소통하는 아날로그적 오디오를 선호했다.

연예계에서 연인이 헤어지는 이유는 ‘바쁘다보니 소원해져서’고, 이혼의 이유는 ‘성격차이’다. 그게 맞다면 TV출연에 적극적인 김건모와 그렇지 않은 신승훈과 이승환이 다른 배경은 성격차이일 것이다. 박진영 뿐만 아니라 조PD 등 수많은 연예인이 ‘딴따라’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신승훈과 이승환은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 사진=신승훈 공식사이트 화면 캡처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본업이 뮤지션이고, 오로지 그것으로 대중을 위무하겠다는 진지한 책임감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면 오히려 귀감이 될 수도 있다. 무협지에서 중원의 정의구현과 패권쟁취를 위해 각 정파가 백가쟁명을 벌이고 있지만 결국 그들을 완성시키는 스승은 무대 밖에서 관조 중인 은둔고수다.

신승훈이나 이승환이라고 돈을 쉽게 벌고, 대중을 크게 선동할 수 있는 TV 출연이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뮤지션의 개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고압적 지위를 남용하거나 획일성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도권에 대한 거부감과 더불어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자유적 의지는 아직 TV 제작진과 타협할 만큼 나약해지지 않은 듯하다. 요즘 그나마 TV에서 볼 수 있는 배경은 플랫폼의 다변화와 더불어 그들의 나이 '덕'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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