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이 씨 조선 제8대 왕 예종은 세조(수양대군)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형 의경세자가 죽자 왕세자에 책봉돼 만 18살에 즉위했으나 13개월 만에 사망했다. 재위 중 직전수조법을 제정해 군량용 토지의 민간경작을 허락하는가 하면 선왕의 총애를 받았던 병조판서 남이의 옷을 벗기고, 선왕의 후광을 등에 업은 훈구파 세력과 대립해 개혁정책을 펼쳤다. 따라서 훈구파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9대 왕에는 원손 제안대군이 배제된 채 의경세자의 아들 자을산군이 성종으로 보위에 올랐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문현성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은 허윤미 작가의 동명의 인기 웹툰을 기초로 해 예종(이선균)과 신입사관 이서(안재홍)가 콤비를 이루는 코믹액션추리극의 형태를 띤다.

국가고시에 장원급제한 이서는 예문관의 임금 언행기록 담당으로 입궐해 예종과 마주한다. 숫기가 없고, 다소 어설픈 행동을 보이지만 남다른 능력이 있으니 그건 바로 한 번 보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외우는 집중력과 암기력이다.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이런 능력을 인정해 예종은 항상 자신의 곁 5보 안에 머물라는 특명을 내리는데 이는 사실 24시간 노예와 다름없다. 예종은 3정승과 병조참판 남건희(김희원) 등이 주축이 된 사대부의 견제를 받고 있다. 그들의 음모가 의심되는 기이한 일들이 조선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기 위한 최측근으로 이서를 발탁한 것이다.

조선의 경제와 국방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효자는 함길도의 철광석 생산 광산이다. 예종은 이를 특별관리하고 있는데 3정승 세력이 이를 차지하기 위해 농간을 벌이는 정황이 감지되고 있다. 한양 내에서 예종에게 비밀임무를 부여받았던 충신들이 죽어나가는가 하면 함길도 역시 여진족의 노략질이 의심되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광나루엔 어마어마한 규모의 귀어가 나타나 민심을 흉흉하게 교란하고 있다.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이에 예종은 밤이 되면 평복을 한 채 이서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며 수사를 펼친다. 어느 화창한 날 예종은 일부러 광나루로 물놀이를 간다고 동네방네 떠든 뒤 드디어 광나루에서 귀어를 발견하자 직접 고래잡이 전문가들을 이끌고 배에 승선하지만 귀어의 공격에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다.

사고 당시 폭발물이 있었던 점과 귀어의 배 부분에 거대한 거북이가 있었던 데서 예종은 세종대의 뛰어난 과학자 장영실의 솜씨를 엿본다. 그는 정보를 얻을 요량으로 요즘 장안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녀(경수진)를 찾아간다. 그녀에게서 자신에 대한 심한 반감을 느낀 예종은 뭔가 실마리를 찾은 듯하지만 암행 호위무사인 흑운도 대동하지 않은 채 장영실의 후손 남주 소유의 수상한 폐가를 찾았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건희는 천민 출신이지만 영의정의 총애를 받아 무관으로 기용돼 오늘날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어렸을 때 예종과 같은 스승 밑에서 수련한 동문 사형이지만 왠지 예종과 야릇한 동지애 혹은 대립각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과연 그는 예종의 적인가, 친구인가?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기승전결에서 예측을 깨는 엄청난 반전을 기대하긴 힘들다. 클라이맥스에서의 반전과 사건 마무리 이후의 다시 한 번의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 속의 사건 역시 큰 충격보단 주인공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흥행의 장치에 머문다. 쿠키 영상 역시 시리즈를 강력하게 원하는 감독의 바람이 ‘어벤져스’의 아이디어까지 따라가진 못하고 클리셰에 머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철저하게 팝콘무비를 지향한다는 점에선 정체성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이래도 안 웃을래?’라고 자신하는 듯한 감독의 퓨전 스타일 설정과 그 의도를 100% 이상 알았다는 듯 아르카이즘(고문체)과 현대어를 넘나들며 애드리브까지 구사하는 두 주연배우의 조화는 ‘조선명탐정’에 못지않은 충분한 재미를 제공한다.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이선균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흥행작은 460만 명의 턱밑까지 갔던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이다. ‘쩨쩨한 로맨스’ ‘화차’ ‘끝까지 간다’ 등 출연하는 영화마다 성적은 꽤 좋은 편이었다. 멜로든 추리든 홍상수의 영화든 어느 곳에 놔도 어울리던 그였지만 작품마다 캐릭터는 왠지 2% 빈틈이 있는 남자였다.

이에 비해 이번의 예종은 완벽하다 못해 슈퍼히어로다. 왕이지만 검시할 때 시체의 표피와 검출성분을 입으로 맛볼 정도로 수사관으로서의 책임감과 능력이 출중하고, 이서와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낼 정도로 인간미와 철학도 갖췄다. 왕으로서 충복들을 아끼는 마음과 더불어 한 남자로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주관도 투철하다.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뭣보다 용서와 화해에 능하고 능청스러운 면모도 있는가 하면 전투력과 두뇌회전에서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자와 술을 좋아하는 것만 뺀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라고 보면 거의 비슷하다. 때론 까칠하고, 때론 의뭉스러우며, 때론 한없이 친화적이고 민주적인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소화해낸 이선균은 어느덧 송강호를 노리는 듯하다.

예종의 죽은 형의 아들 자성군을 옹립하려는 3정승의 반역행위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구성했지만 그 외의 내용은 모두 허구다. 게다가 왕이 밤에 암약하는 수사관이라니!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그저 재미로만 보면 된다. 할리우드에선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들과 맞서고(‘에어포스 원'), 뱀파이어를 때려잡으며('링컨: 뱀파이어 헌터'), 심지어 지구를 구한다(‘인디펜던스 데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블랙리스트 관리 등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이 절정을 이루던 지난해 5월초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때문에 정권의 미움을 받았다고 알려진 CJ가 돈을 대서 크랭크인됐다는 점은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예종이 성군이거나 그에 대한 민심이 우호적이란 당위성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지만 왕권을 지키기 위한 예종의 집착은 강하고 치밀하다. 게다가 3정승에게까지 ‘상놈출신’이란 인격모독을 당하면서까지 정권을 바꾸려한 건희의 왠지 모를 신념은 김희원의 굳은 표정 속에 갇혀 튀어나올 줄 모른다. 다만 그가 “역사는 피가 모여 이뤄진다”고 이서에게 외친 처절한 절규가 그나마 관객의 뇌리에 남을 듯하다.

이서는 물론 자성군의 충성심이 거의 맹목적인 점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자성군은 아버지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통치교육에 한창인 왕세자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삼촌이 아닌 국왕의 권위를 향한 존경심과 복종심은 차고 넘친다. 한참 웃으며 재미있게 즐긴 뒤 찜찜함이 추가될 여지다. 114분. 12살 이상 관람 가. 5월 4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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