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레옹>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 뤽 베송은 데뷔작 ‘마지막 전투’(1983)부터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그랑 블루’(1988)까지만 해도 예술적 작가를 지향했다. 그런 그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시동을 걸기 시작한 작품이 ‘니키타’(1990)라면 본격적인 행보를 보인 계기는 할리우드의 자본을 받아 만든 ‘레옹’(1994)일 것이다.

검정 비니와 코트 그리고 원형 선글라스 차림으로 나약한 소녀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고독한 킬러 레옹을 관객들이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바로 엔딩 곡 ‘Shape of my heart’일 것이다. 그 주인공 스팅(66)이 또 내한공연을 갖는다.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는 물론이고 팝계의 전설들이 한국을 찾는 건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그 이유는, 스팅의 존재적 의의는 뭘까?

한류열풍이 본격적으로 불기 전까지의 20세기만 하더라도 상업영화와 팝시장의 관계자나 연예인들에게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을 가기 위한 경유지에 불과했다. 기왕 어려운 발걸음으로 일본에 가는 김에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거리인 서울에 들러 생색도 내고, 부가수입도 창출하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 인구의 2배가 넘는 1억 2670만여 명의 일본은 더 이상 동양의 최대 시장이 아니다. 왜냐면 한국 시장의 반응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의 새 맹주로 부상한 중국 및 중화권과 인도, 동남아시아 시장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도화선이고, 뇌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영화에 있어서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서를 지녔지만 미국에서 탄생한 록음악에 대해선 아직도 부정적인 경향이 잔존해있다. 한국전쟁 때 중국은 사회주의 파트너였던 구 소련의 편에서 북한을 지원했다. 당연히 한국 편에 선 미국과 유럽이나 그들의 문화에 긍정적일 리 없다.

그렇다면 스팅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내한공연 소식에 국내 다양한 계층의 팝 애호가들이 열광할까?

스팅의 정체성에서 폴리스를 빼곤 설명이 안 된다. 폴리스는 영국인 스팅(베이스)과 앤디 서머즈(기타), 그리고 미국인 스튜어트 코플랜드(드럼)가 모여 1979년 데뷔앨범을 낸 영국을 기반으로 한 록밴드다. 이 팀은 비틀즈 이래 유행된 멤버 전원이 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소화해내는 ‘보컬 앤드 인스트루멘틀 밴드’ 형태를 따랐다.

이들이 타 록밴드와 다른 점은 블루스와 재즈의 색채가 강했으며 후에 유행될 뉴록과 테크노록의 방향까지 제시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스팅은 이전에 재즈그룹 노엑시트에서 활동했으며 서머즈는 저 유명한 애니멀즈에 몸담은 적이 있다. 애니멀즈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이었지만 팝팬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블루지한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의 주인공이다.

국내에서 최대로 히트된 폴리스의 싱글은 ‘Every breath you take’다. 스팅은 1984년 팀을 떠나 솔로로 데뷔해 지난해까지 정규앨범을 발표할 정도로 꾸준하고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 멀티 아티스트다.

▲ 사진=스팅 공식홈페이지 캡처

데이빗 린치 감독의 저주받은 SF걸작 ‘사구’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이자,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등 영화의 OST 작업을 한 음악감독이며, 몇 안 되는 연예인 출신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의 진가는 음악에서 가장 돋보인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 삽입된 ‘Englishman in Newyork’와 ‘My one and only love’가 ‘Shape of my heart’와 더불어 국내 팬들에게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데 그의 음악적 값어치가 집약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팅이 존 콜트레인의 오리지널 ‘My one and only love’를 꺼내든 이유는 분명하다. 그의 정체성의 근간은 재즈라는 아주 강한 메시지다. 콜트레인은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프리재즈의 영향을 끼쳤으며 재즈계에 최초로 인도음악을 도입했다. 훗날 롤링 스톤즈와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이 인도의 현악기 시타를 끌어들이는 데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콜트레인과 스팅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자유다.

국내에서 룰라가 리메이크해 더욱 널리 알려진 ‘Englishman in Newyork’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이제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 미국하고도 뉴욕 한복판에 선 이방인 영국신사를 통해 가치관이 무너진 현대 속의 고독과 고뇌를 읊조린다.

▲ 사진=스팅 공식홈페이지 캡처

‘Shape of my heart’에서 철학은 더욱 심오해진다. 카지노의 한 고수를 주인공으로 해서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옛 연인 혹은 세상에 대해 한탄하고 안타까워한다. 카드에 그려진 스페이드는 검, 클로버는 곤봉, 다이아몬드는 돈, 그리고 하트는 성배 혹은 사제의 의미다. 그러나 여기서 하트는 바로 자신의 순수한 마음이다.

도박의 최고수인 주인공은 어설픈 ‘타짜’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그의 눈엔 그저 '초짜'들일 따름. 그래서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달관자의 입장에서 “이곳엔 ‘내 마음의 형체’(혹은 내 마음을 닮은 하트)가 없다”고 뇌까리는 것이다.

스팅은 영국인이지만 목소리 톤과 음악적 정서는 공기가 수분에 축축이 젖은 을씨년스러운 북아일랜드 색채가 다분히 묻어나온다. 마이너 성향의 작곡 스타일인 듯하지만 메이저 음계로도 단조의 흐느낌을 표현할 줄 아는 마술사다. 그건 그가 재즈와 블루스로 탄탄하게 기초를 다졌기 때문이다.

그의 ‘절친’ 에릭 클랩튼이 ‘미스터 슬로우 핸드’라면 스팅은 ‘미스터 슬로우 엔드’다. 정말 오랫동안 꾸준하게 활동하고 또 사랑받아왔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게리 무어가 블루스록 기타로 민족적 아픔을 잘 표현했다면, 스팅은 그런 그들의 통증에 가장 근접한 음악으로 화답했다. 밥 딜런이 미국 포크록계의 시인이라면 스팅은 영국 재즈록계의 철학자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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