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송대관(71)이 유명 여가수 매니저 홍모 씨에게 심각한 언어폭력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고 주장해 화제다. 송대관은 지난 24일 KBS1 ‘가요무대’ 녹화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와 홍 씨의 인사를 받았는데 그로부터 “왜 그런 식으로 (무성의하게) 인사를 받느냐”며 “이걸 패버리고 며칠 살다 나와?”라는 폭언을 들었다는 것.

송대관은 이 내용을 처음 알린 한 매체의 28일자 기사에서 첫 확인취재 때 부인했다가 소속사가 인정하자 인터뷰를 통해 번복했고, 소속사는 그가 병원에 누워있는 사진까지 제공했다. 이후 송대관은 각 매체와 줄줄이 인터뷰를 하거나 확인해주며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지는 중이다.

홍 씨는 일부 매체를 통해 ‘내용이 사실과 달리 많이 부풀려졌다’고 부인하는 가운데에도 송대관 소속사 대표에게 사과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의사는 스트레스성 급성 우울증이라 진단했고, 진단서를 끊어주겠다고 했으나 송대관은 일단 유보했다. 진단서는 고소용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송대관은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입원하라는 병원 측의 권유를 무시한 채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송대관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가 전제다. 첫 취재 때 송대관이 사실을 은폐하려 한 이유는 홍 씨의 보복이 두려웠거나, 수치심이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통원치료를 받을 만큼 충격을 받은 그가 적극적으로 고소에 나서지 않은 배경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그가 금세 태도를 바꿔 병상의 사진을 제공해주고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는 진행과정은 뭔가 매끄럽지 못하다.

또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수들은 연약한 사람들이다. 힘도 없다. (홍 씨 같은)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가요계에서 활동한다는 게 참 힘들고 버겁다”라고 한 말도 왠지 피부에 깊게 와 닿지 않는다는 대중의 반응이다.

▲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가수는 연약한 사람들’이란 표현은 귀납법이나 연역법 어디에도 적용하기 힘든 논리다. 물론 노래는 힘으로 부르는 게 아닌 것은 맞지만 가수라서 모두 연약하고 힘(권력)도 없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유명가수는 주먹은 약할지라도 권력만큼은 웬만한 재벌이나 정치인 못지않다는 것을 대중은 다 안다. 홍 씨에 대해 공개된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송대관은 그를 ‘무지막지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그건 ‘지성과는 담쌓은, 상스럽고 포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폭력조직 혹은 그곳 출신 개인이 연예계에 존재했고, 지금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깡패 출신 연예인도 있다. 다만 폭력조직은 개념이 확실하지만 개별적 깡패의 기준이 애매할 따름이다. 여의도를 보면 국회의원 중에도 깡패가 없지 않을 듯하다는 게 국민적 정서다.

홍 씨는 60대 나이에 송대관과 고향이 가깝다. 전라도에서 입지가 탄탄한 송대관이 고향 후배한테 폭언을 들었다는 사실이 분기탱천할 노릇일 것이다. 입원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송대관이 병원의 진단서 발부를 보류하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점은 뭔가 어색하다. 그 지난한 사기혐의 재판도 이겨낸 그다.

만약 ‘주먹’ 출신의 연예관계자가 ‘제 버릇 남 못주고’ 예전의 언행을 일삼는다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며 방송사 및 연예관련 각종 유관단체들이 단체행동으로 제재를 가하는 게 시대적 흐름에 맞다. 그러나 이번 충돌의 본질은 연예계의 고질적인 서열관계 및 연예스타에 대한 과잉추앙 혹은 연예스타 스스로의 우월적 자세 등에 대한 고민과 점검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방송 속에선 ‘선생님’ ‘선배님’ 등의 존칭이 난무한다. 뉴스가 아니라 예능 등의 오락프로그램일지라도 언론은 언론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 억지로 연출된 예능의 일부가 아닌 이상 모든 프로그램의 대화와 언어는 표준적이고 공평해야한다. 유재석과 신동엽이 좋은 예다.

사적으로는 ‘형님’이든 ‘선배님’이든 예우할 수 있지만 남녀노소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상대로 하는 방송에선 윗사람일지라도 ‘아무개 씨’가 공용이고 아무리 아랫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역시 ‘아무개 씨’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하는 게 정석이다. 미성년자에게도 존댓말은 기본이며 ‘아무개 군’과 ‘아무개 양’이 공식호칭이다.

그러나 우리 방송은 사적인 호칭은 당연한 듯 난무하고 선배만 나왔다 하면 지나친 공경심을 표현하며 우상으로 떠받드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게 일반화됐다. 그건 분명히 오류다. 예능에서 대화를 하다가 돌발적으로 ‘이봐’라며 반말로 훈계를 하거나 갑자기 ‘선생님, 이건 정말 죄송한데요’라며 일시적인 해프닝을 꾸미는 것은 재미로서 가능하지만 그게 아예 규칙이 되면 곤란하다.

독방이 아닌 단체 연예인 대기실은 항상 팽팽한 긴장이 흐르기 마련이다. 선배가 들어오면 인사하기 바쁘고, 대선배 앞에선 담배도 피울 수 없으며, PD에게 선배를 배려하지 않은 자기만의 요구사항을 함부로 펼칠 수도 없다. 한마디로 연예계의 군기는 ‘빡세기’로 소문났다.

반대의 유형도 있다. 인기 절정의 새파란 연예인 중 일부는 안하무인격이라 구설수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촬영시각 지각을 일삼는 톱스타에 늙은 배우는 심기가 불편하지만 제작진에 어필할 상황이 아니라 속앓이를 하기 마련이다. 스트레스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선배님’은 송대관 외에도 수두룩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나이로 서열을 가리기를 좋아했다. 또 연장자에 대한 과도한 예우를 요구하는 풍토가 아직까지 잔존해있다. 풍부한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후세를 위해 고생한 선대를 예우하는 것은 미풍양속이지만 나이를 벼슬인 줄 착각하는 몰지각한 선배의 ‘갑질’은 결코 바람직한 풍습은 아니다. 그래서 ‘나잇값을 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있어온 것이다.

송대관과 홍 씨 중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이번 충돌은 연예계에도 잔존한 잘못된 군사문화 탓에 당사자들도 모르게 감정이 쌓인 탓일 가능성이 크다. 홍 씨 회사의 대표이사와 송대관은 친분관계가 좋다고 각 매체는 전했다. 송대관 입장에선 나이로 보나 유명세로 보나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가 홍 씨의 인사를 가벼운 목례로 받은 건 평상시 버릇일 수도 있지만 홍 씨 입장에선 ‘갑질’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나이로 계급을 나누는 군사문화의 잔재 탓이고 일부 비뚤어진 특권의식을 가진 유명연예인 몇몇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미국처럼 자본주의다. 영화 '보디가드'를 찍을 때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자존심싸움을 벌여 스태프가 골탕 먹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인권은 평등하지만 자본주의는 돈으로 신분을 가른다. 실력을 통한 '몸값'으로 은연 중에 서열이 정리되는 게 자본주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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