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특별시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달 26일 나란히 개봉된 추리코미디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과 정치서스펜스 ‘특별시민’이 근소한 차이로 1, 2위를 나눠 갖고 흥행을 이끌고 있다. 곧 개봉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보안관’ ‘석조저택살인사건’ 등이 흥행경쟁구도에 뛰어들 태세지만 관객들의 체감온도는 그리 뜨겁지 못하다.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반응이 대세다. 그 이유는 뭘까?

영화진흥위원회의 ‘2016년 한국영화산업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 입장권 매출액은 1조7432억 원으로 전년대비 1.6% 증가했지만 총 관객 수는 2억1702만 명으로 0.1% 감소했다. 2008년 이후 계속되던 관객 증가세가 8년 만에 꺾였다. 그래도 연간 평균 관람횟수는 4.20회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주관람층이던 20~30대 중 30~34세 관객만 감소한 한편 45세 이상 중장년층과 ‘나 홀로 관객’, 그리고 한 영화를 3회 이상 보는 ‘N차 관객’이 늘어났다.

▲ 영화 <특별시민> 스틸 이미지

30대 초반 관객의 이탈은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인간관계 등을 포기한 이른바 ‘N포 세대’가 극장을 찾을 경제적, 정신적 여력조차 잃어버렸다는 증거다. 그나마 극장나들이를 하는 젊은이는 친구나 애인을 대동하지 않은 채(할대동할 수 없는 처지여서) 혼자 관람한다. 전체 관객숫자가 그리 현저하게 줄지 않은 이유는 반복관람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극장으로 되돌아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변화다. 40대면 경제활동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나이고, 50대 이상은 자식이 성장해 독립했을 나이니만큼 지갑과 마음에서 여유가 생김으로써 취미활동을 찾게 된다는 분석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다.

지난해 강우석 감독은 준비 중이던 매우 강력한 정치풍자영화 제작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는 ‘최순실 사태’로 실제 정치상황이 어이가 없을 만큼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인 게 밝혀졌는데 어떻게 그보다 더 관객을 놀라게 만들 수 있는 정치영화를 만들겠느냐는 자포자기의 심정 때문.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난해 늦가을-초겨울을 계기로 극장에 관객의 발걸음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게 극장가와 영화계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 스틸 이미지

이번 두 흥행영화만 봐도 그렇다. 지난 1일은 노동자의 날로 공무원 등 일부 직업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노동자가 휴무하는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의 합산 스코어가 30만 명을 넘지 못했다. 보통 흥행 1위 영화의 개봉주말 스코어가 30만 명 안팎인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은 정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임금님~’은 조선 8대 왕 예종이 자신을 폐위하고 꼭두각시 왕을 새로 앉히려는 집권세력 훈구파의 계략에 맞서 활약하는 액션 추리 코미디의 범벅이다. ‘특별시민’은 아예 가식적이고 비열하며 탐욕적인 독선의 현 서울시장이 4선 및 이후 대선을 향해 추악한 권모술수를 부린다는 게 기둥줄거리다.

유해진 첫 단독주연의 ‘럭키’는 최순실 태블릿PC가 최초로 보도되던 지난해 10월 24일보다 11일 앞선 13일 개봉돼 결국 7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여 많은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투자배급사인 쇼박스조차 이 정도 스코어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후문.

▲ 영화 <내부자들> 스틸 이미지

쇼박스는 2015년 11월 19일 ‘내부자들’을 개봉할 때도 무척 조심스러웠다. 이병헌이 부도덕한 일로 뭇매를 맞던 중이었고, 그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입증이라도 하듯 3달 전 개봉된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이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오히려 이병헌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싸늘하던 그에 대한 여론을 긍정적으로 돌려세웠다. 당시 분위기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현 정부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정서가 등을 돌린 상태. 그러나 권력층의 엄청난 위세에 눌려 누구하나 쓴 소리를 해대지 못하던 답답한 상황이었다.

‘내부자들’은 그런 꽉 막힌 국민들의 체증을 일순간에 내려주는 ‘활명수’ 같은 영화였다. 물론 이병헌의 뛰어난 연기력도 그의 주홍글씨를 지우는 지우개 역할에 한몫했다.

▲ 영화 <광해, 왕이된남자> 스틸 이미지

‘임금님~’은 왕이 주인공이지만 마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연상케 하는 플롯이다. 혹세무민함으로써 국민들을 아비규환 속으로 끌고 가는 한편 사리사욕을 챙겨 제 배만 불리는 사람들은 3정승을 필두로 한 사대부들이다. 반면 왕은 고립무원의 영웅으로 국가를 제대로 이끌기 위해 소수의 충신들과 함께 악전고투한다. 마치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영화의 조선 버전 같다.

‘특별시민’은 때마침 벌어진 대선주자 유력후보 5인방의 잇단 TV토론을 미리 예언이라도 하듯 아주 유사한 상황을 연출한다. 또 여당의 내적 분란을 통해 정치인의 이중적인 민낯을 까발린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의 경쟁자인 야당 소속 후보 역시 집권을 위해서라면 신념 따윈 헌신짝처럼 내다버리는 속물로 그림으로써 정치인의 속성을 비판한다.

특정 이념이나 여, 야, 무소속 등 그 어느 정당이나 계파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시각을 견지하는 가운데 전 국민을 상대로 정치에 대한 계몽을 한다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 영화 <럭키> 스틸 이미지

코미디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현실이 어이없지만 코미디 같아서 그렇다. ‘럭키’와 ‘임금님~’의 흥행력의 비결이자 블록버스터급은 되기 힘든 한계의 이유다. TV토론 시청률은 높은데 ‘개그콘서트’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 시청률은 그렇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시감과 현실감을 주고 예지력을 갖춘 듯한 정치영화는 독하지 않으면 외면당하지만 현실이 워낙 '막장'이어서 아무리 강해도 ‘대박’은 기대하기 힘들다. ‘내부자들’의 성적을 넘을 듯했던 ‘마스터’가 714만여 명에 그친 이유는 분명하다.

꽤 진지한 ‘특별시민’이 선두로 출발했다 금세 ‘임금님~’에게 선두를 빼앗긴 속사정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 흐름에서 ‘가디언~’이 가진 경쟁력은 확실하다. ‘보안관’은 코미디라는 정체성으로 ‘임금님~’과 대결하거나 대안이 될 것이고, ‘석조저택살인사건’은 장르 면에서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변별성으로 맞설 것이다. 마침 대선 결과도 며칠 안 남았다. 어떻게든 변할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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