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SF괴수공포영화의 대명사인 ‘에이리언' 시리즈는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시작해 이후 각기 다른 유능한 세 감독이 번갈이 연출을 맡아 ’전설‘이 됐다. 그러나 원작자인 스콧은 불만이 많았던 듯 프리퀄 세 편을 기획해 먼저 ‘프로메테우스’(2012)를 내놓은 뒤 ‘에이리언: 커버넌트’로 5년 만에 돌아왔다.

인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우주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오리가에 행성을 목적지로 2000명의 이주민과 15명의 승무원을 태운 거대 우주선 커버넌트를 발사한다. 수십 년을 항해해야하는지라 A.I. 월터(마이클 패스밴더)만 제외한 전원은 수면상태에 들어가 있는 상황.

슈퍼컴퓨터 마더가 항성플레어 충격파로 인한 위험신호를 내보내고 월터는 승무원들을 깨우지만 그 과정에서 다니엘스(캐서린 워터스턴)의 남편인 선장이 사망한다. 간신히 사태를 수습한 승무원들은 부선장 오람(빌리 크루덥)을 선장으로 추대한다.

▲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그들은 무허가 신호를 접한다. 분석하니 존 덴버의 히트곡 ‘Take me home country road’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의 존재를 알리는 시그널일 가능성이 높고 발신지는 매우 가까운 미지의 행성이다. 오람은 수십 년 걸리는 오리에가보다 지척에 있는 이 행성에 강하게 끌리고, 다니엘스를 제외한 선원들도 자는 게 지겹다며 그에 동조한다.

오람 다니엘스 월터를 비롯해 대여섯 명이 탐사선을 통해 행성을 밟는다. 하지만 2명이 무심코 밟은 괴식물에서 분사된 포자를 흡입하곤 몸속에서 에이리언이 자라 배를 뚫고 튀어나오는 바람에 희생된다. 나머지 선원들은 다수의 에이리언들에게 포위돼 위기에 처하는데 갑자기 한 인물이 나타나 에이리언들을 쫓고 자신의 거대한 안식처로 인도한다.

▲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그 정체는 11년 전 프로메테우스 호에 승선했던 월터의 이전 모델인 A.I. 데이빗. 프로메테우스 승무원들은 전멸했지만 인조인간이기에 죽지 않은 것. 인간들은 이전 모델에 감정을 심었다가 문제를 발견하곤 월터 시대의 모델부턴 감정을 제거한 채 오로지 복종과 인류보호를 목적으로 프로그래밍했다.

이온폭풍의 영향으로 커버넌트가 생존한 탐사대원들을 구하러 행성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원들은 일단 데이빗의 거처에서 한숨을 돌리려하지만 안전하다던 데이빗의 말과는 달리 더 거대한 진화형 에이리언의 습격을 받는데.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기원을 다루는 가운데 ‘에이리언’의 탄생에 대한 떡밥을 던졌다면 이 영화는 에이리언의 탄생의 비밀을 밝히고 A.I.가 향후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더불어 현실의 신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전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진중한 은유를 담았다.

▲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영국 시인 바이런,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 오지만디아스(람세스 2세)다. 그리고 발할라다.

18세기, 19세기에 각각 태어난 바이런과 바그너의 공통점은 낭만주의자 작가라는 것 외에도 꽤 많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게 성장했고, 데뷔 직후 평단의 혹평으로 좌절을 맛봐야했다. 바그너는 혁명에 참가했다 수사망을 피해 외국을 떠돌아다녀야했고, 바이런은 심지어 그리스 독립군을 도우러 나갔다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이토록 그들은 진보적이었으며 특히 바이런은 기존의 틀에 박힌 세속적인 모든 관습에 반골기질을 심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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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만디아스는 고대 이집트 신왕국인 제19왕조의 3대 왕이다. 스스로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로다. 너희 이른바 강자들이여,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는 시를 지었을 정도로 자신의 치적을 선전하고 미화하는 데 전념했다.

한마디로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의 왕이었다. 그의 사후에도 후대 왕들은 그를 신격화함으로써 그에 대한 대중의 찬양을 자신에게 이으려 노력했다. 한마디로 ‘명품 왕’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토록 이미지 메이킹에 집착한 이유는 정작 자신의 출신성분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멸시하던 아시아의 피가 섞인 그는 더구나 귀족이나 왕족 출신도 아니었다. 18왕조 말미에 투탕카멘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급사하자 왕위쟁탈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새 왕조를 여는 어부지리를 챙긴 할아버지 덕에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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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할라(valhall)는 고대 북(서)유럽 신화 속 유토피아다. ‘토르’ 속 배경인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800명의 전사가 횡대로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540개의 문이 있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다. 이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워 전사한 전사다. 그래서 매일 토르의 아버지 오딘이 베푸는 산해진미의 잔치에 파묻혀 살 수 있는 이상향이다. ‘매드 맥스: 본노의 도로’에서 사이비 교주 같은 지도자인 임모탄에게 푹 빠진 눅스가 꿈꾸는 신천지이기도 하다.

인류가 우주식민지를 찾아 나선 이유는 지구의 생존환경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발할라를 찾기 위해 개척팀 선발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딘을 꿈꾸는 이는 인간이 아닌 A.I.였다. 사람들은 낭만을 잃었지만 A.I.는 바이런을 암송하고 바그너를 연주하며 낭만과 예술을 즐긴다.

게다가 A.I.는 오지만디아스를 자처하며 발할라 창조를 꿈꾼다.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사람과 안드로이드와의 사이에서 정체성을 물으며 ‘누가 더 인간답나?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다운 건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스콧의 철학은 계속 이어진다.

▲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블레이드 러너’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 ‘의심’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가 수십만 년 뒤 모든 생물이 멸종된 채 신적인 존재로 진화한(된) A.I.가 지구의 새 주인이 됐다고 으름장을 놓은 건 매우 살 떨린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만만치 않다. 아니 그 과정을 그리는 중이라 더욱 공포스럽다.

그건 매우 틀에 박힌 인류의 자만에 대한 경고의 메타포지만 소재가 달라 전율을 극대화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뻐기면서 마구 자연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수많은 종들을 말살하는 중이다. 인류의 안락을 위함이라며 첨단 디지털 기계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전자동화 시스템과 A.I.의 인간화에 매진하지만 어쩌면 그건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옥의 묵시록’이다. 얄팍한 편의와 천박한 이익을 위한 유전자조작을 비꼰다.

▲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실감나는 CG와 공포영화의 필수덕목인 사운드효과는 흠잡을 데가 없다. 모습은 같지만 내면은 정반대인 두 A.I가 조성하는 팽팽한 긴장감은 관객들에게 그 이상으로 전달될 듯하다. 하지만 기시감을 주는 반전과 리플리(시고니 위버)에 대한 그리움만 더욱 키우는 다니엘스의 다소 약한 활약은 옥에 티다.

뉴질랜드 남섬의 랜드마크 밀퍼드사운드 첫 로케이션과 마치 폐허가 된 발할라를 연상케 하는 데이빗의 거처 등의 비주얼은 혀를 내두를 정도. 커버넌트(Covenant)는 약속 중에서도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금전을 꾸준히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이번에도 스콧은 관객에게 약속한 묵직한 철학과 탄탄한 재미의 커버넌트를 지켰다. 122분. 15살 이상. 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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