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17년 5월 9일 ‘장미대선’ 결과 문재인이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돼 다음날 아침 곧바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분열된 국론을 화합시켜달라는 전 국민적 열망의 반영이다. 엉망진창이 된 가치관과 도덕과 질서와 법을 정상화해달라는 전 국민적 갈망의 투영이다. 결국 국민의 승리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은 격동과 격랑의 시기였음을 다수가 인정한다. 김대중 정권이 간신히 추스른 경제를 최악으로 떨어뜨렸고, 그 어느 때보다 국론은 보수와 진보로 강하게 갈라졌다. 개인적으론 암흑기였다고 강하게 생각한다. 특히 박근혜 정권 때 과거의 잘못된 권위주의와 계급주의가 되살아난 게 최악이었다. 적지 않은 국민에게서 삶의 희망을 앗아갔다.

긴말할 것도 없이 최순실과 박근혜의 커넥션 하나만으로도 절망적인 국가위기상황이었다는 건 증명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첫 공식일정으로 현충원을 방문한 뒤 여의도 국회로 옮겨 야당을 찾았다. 박근혜가 당선될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한 패널은 방송에서 서민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인 문 대통령의 태도와 이를 반기는 국회의원 및 국회 직원, 그리고 기자 등의 자유분방한 국회 분위기를 가리켜 “박근혜 대통령 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광경”이라고 반겼다. 동석한 기자 역시 “오랜만에 기자들이 기자답게 취재활동을 하는 걸 봤다”고 반색했다.

BC 4세기 패권자였던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더 대왕과 그 선왕 필립 왕 때부터 살았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가 찾아와 소원을 묻자 “햇빛 쐬게 좀 비켜주십쇼”라고 말했다. 알렉산더가 괘씸히 여겨 “내가 무섭지 않냐?”고 재차 물었다. 무섭다고 하면 디오게네스가 기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고 안 무섭다고 하면 사형감이었다.

디오게네스는 “대왕께선 선한 분입니까, 악한 분입니까?”라고 역으로 물었다. 당연히 알렉산더의 입에서 “선한 사람”이란 대답이 나왔다. 디오게네스는 “선한 분을 무서워할 리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보다 전에 필립왕은 전쟁포로로 잡힌 디오게네스에게 “넌 뭐하는 놈이냐?”고 물었다. 디오게네스는 “당신처럼 야욕에 불타는 사람을 감시하는 사람”이라고 답한 뒤 풀려났다.

디오게네스는 당시 정치철학 및 여론의 절대적 존재였던 플라톤을 대놓고 비판할 정도로 기존 관습과 권력에 대한 조소와 경멸을 일삼은 일종의 전위적 행위예술적 아나키스트였다. 플라톤이 “인간은 두 발로 직립보행하는 털 없는 짐승”이라고 표현하자 털을 벗긴 닭 한 마리를 들고 나와 “호모 플라토니쿠스”라고 비웃었을 정도다. 플라톤은 알렉산더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다. 한 마디로 ‘넘사벽’인데.

그는 무소유의 행복을 몸소 실천한 달관과 해탈의 철학자였다. 일체의 재산도 없이 이불을 겸한 옷 한 벌 걸친 채 식기를 담은 망태 하나만 달랑 들고 노숙을 일삼으며 비렁뱅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심지어 한 소년이 양손을 이용해 물을 받아먹는 것을 보고 망태 속에 담긴 물 잔마저 내던져버리며 “꼬맹이한테 졌다”고 말했을 정도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년 전에도 ‘언로’는 이렇게 활발하게 틔어있었다. 한낱 노숙자에 불과한 ‘꼰대’ 한 명이 감히 유럽에서부터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정복한 당대의 전지전능한 통치자와 맞장을 떴다. “소원을 들어줄 테니 내 밑으로 들어오라”는 알렉산더의 제안을 “꺼져”라는 뜻으로 단호하게 거절했으며 면전에서 그를 놀린 거지라니! 박정희나 박근혜 정권 때 같으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알렉산더는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라고 패배를 인정했다. 문 대통령에게 굳이 디오게네스의 심오한 철학을 바라진 않는다. 그 역시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의 청렴함과 결백함 그리고 대쪽 같은 심성을 증명하는 숱한 일화대로만 국정을 운영해주길 바랄 따름이다. 그가 갖춘, 비천한 거지에게도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알렉산더의 인간미를 계속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지난 10년간 우리 국민은 정상이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이 보란 듯이 정상 행세를 하는 세상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허울 좋은 정치적 편 가르기에 마취돼 분열된 파열음이 들끓었다. 삼성전자 주가와 코스피 지수는 폭등하는 데 반해 서민의 삶은 더욱 더 피폐해졌다.

취업준비생들이 공무원 모집시험에 떼로 몰려드는 이유는 정규직이 먼 나라의 얘기가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나마 비정규직도 바늘구멍이거나 그거라도 간신히 취업해봐야 ‘파리 목숨’이다.

한꺼번에 다 바꿀 순 없다. 서민의 다수가 원하는 순서대로 하나씩 고치기만 해도 된다. 중요한 건 원칙이 서고, 정상이 통용되는 사회다. 예외가 없되 법만큼 인간미가 적용될 수 있는 탄력성이 있는 국가, 기준이 바로 서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융통성이 적용된 개혁이 가능한 국가다.

대통령은 ‘대통령님’이나 ‘國父’가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의 리더’라는 봉사정신 하나만 지키면 모든 건 술술 풀린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수시로 되뇌며 가능한 한 가장 많은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하는 '헌신'에 전념하면 된다.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의 정통성을 노무현 정부가 이었지만 17~18대 대선에서 패배했고, 그럼으로써 국가가 엄청난 혼란에 빠진 것을 문 대통령은 두 눈 똑바로 뜨고 봤다. 국민들이 문 대통령에게 2위 홍준표 후보와의 압도적인 차이로 표를 몰아준 이유를 그 누구보다 문 대통령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렇다 정상이 정상이 되는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 전 국민이 나라라고 인정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다. ‘이게 나라냐?’라던 촛불집회의 한탄이 그저 한때의 코미디 같았던 역사 속 사건 중의 하나로 회자될 수 있는 나라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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