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어떤 ‘짓’들을 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틈만 나면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고, 또 상대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활력을 얻습니다. 물론 이런 연인들도 결혼을 하고 일상 생활에 매여 살다 보면 서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약해진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는데, 결혼 후의 애정 표현은 연애 초기와는 좀 다릅니다.

연애 기간의 애정 표현은 남녀 간의 성적 끌림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결혼 후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에 대한 신뢰와 감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해집니다. 사실, 사랑하는 남녀 그리고 사이가 좋은 부부들 간의 행동들 중에서 어떤 것이 애정 표현이고 어떤 것은 아닌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모든 생각과 행동이 상대방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하여 어떤 보상을 얻을 수 있을까는 생각하지도 않는데, 그 과정에서 이미 스스로 행복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의 작은 수고와 말 한 마디에 대해서 상대가 감사하는 것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느낍니다. 부부의 애정 표현은 이처럼 상대에게는 물론 자신의 많은 허물을 덮어주고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심지어 싸우는 중이라도) 애정 표현에 절대로 인색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애정 표현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상담 중에 제가 남편에게 “부인에게 애정 표현을 늘리시는 것이 좋겠네요”라고 권하면 많은 남편들이 “직장 일로 피곤해서..” 또는 “우선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 보니까..” 등등 이유를 대곤 합니다. 마치 피곤하거나 돈이 없으면 애정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 남편들은 부인에 대한 애정 표현을 성 행위나 특별한 이벤트로 한정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한 후에 뒷수습을 하고자 할 때, 또는 부인과 성 관계를 가지고 싶거나 소위 ‘의무 방어전’처럼 꼭 해야만 하겠다고 생각될 때에만 애정 표현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주부들이 남편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또 남편에 대한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도 남편들의 이런 잘못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애정 표현에 대한 부부의 인식이 이렇다면, 자연스럽게 애정을 표현할 기회가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생기는 감정의 앙금을 풀 기회가 적어지고, 결과적으로 사소한 문제로도 심한 감정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불상사를 방비하기 위해서는 애정 표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밀린 빨래나 집 청소를 하느라 씩씩대고 있거나 아이들을 혼내고 나서 혼자서 분을 삭이고 있는 부인에게는 “애써줘서 고마워” 또는 “여보, 힘들지?” 라는 말과 함께 부드럽게 안아주며 입 맞추는 것이 (남편들이 생각하는 ‘화끈한 잠자리’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들다’라고 생각하던 부인도 이런 애정 표현을 받으면, ‘내가 사랑 받으며 살고 있구나’ 라고 느끼며 더 열심히 살아갈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많은 남편들은 이런 식의 애정 표현에는 인색한 대신, 피곤에 지쳐 잠자리에 든 부인에게 성 행위 요구로 표현하기 때문에, 사랑과 거리가 먼 오해와 거부감을 주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남편들이라고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하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본인은 사랑을 표현했지만 부인이 자신을 거부한다고, 즉 부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잘못 해석하게 되는 데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랑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대신 ‘옹졸한 분노’를 품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 부인이 뭔가 실수를 해서 ‘뾰족한 복수’를 할만한 기회가 생기면 감정적인 폭발로 ‘응징’을 합니다.

그러니 그 부인으로서는 그런 남편에 대해 사랑, 감사, 존경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결과적으로 부부는 ‘남 아닌 남’이 되고 맙니다. 물론 반드시 남성들만 애정 표현에 서툰 것은 아닙니다. 좀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인격 형성기에 장애를 겪은 사람들은 애정 표현에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존 보울비는 인간은 영유아기에 어머니와 어떠한 애착관계를 맺는가가 이후의 인간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만족과 즐거움을 경험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와 달리) 장차 어른이 되었을 때 더 건강하고 더 낙천적이고 더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반대로 어떤 이유에서건 불행히도 안정된 애착경험을 하지 못한 영유아들은 이후 어른이 되었을 때 건강한 애정 관계를 가지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애정 관계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로 상대에게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더러는 자신이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를 부인합니다. 마치 상대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자신은 약자가 되어 상대에게 끌려 다니게 될까 염려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상대를 사랑하는 듯 하지 않는 듯, 즉 사랑으로 줄다리기라도 하듯이 대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를 상대에게도 강요하는 셈입니다.

또 다른 유형은 끊임없이 상대의 사랑을 요구하고 확인하려 하지만 그 사랑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표현하는 사랑을 평가절하하면서 자신을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는지를 계속 시험합니다. 이런 관계에 지친 상대가 자신을 떠나면 “거봐, 역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잖아” 라고 확인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는 것은 초라한 자신일 뿐이겠지요.

끝으로 상대에게 버림을 받지 않으려는 듯 자기 자신을 버려서라도 지나치게 매달리는 유형이 있습니다. 상대로서는 처음에는 자신을 이처럼 떠받들고 사랑하는 것에 감격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서 그 집착에 질식할 것 같은 공포마저 느끼게 되고 결국 떠나가고 맙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곧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곤 하지만, 결국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을 확인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깨달으면 그런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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