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요즘 인터넷 연예매체에서 자주 쓰는 말 중의 하나가 ‘대세’다. ‘일이 진행돼가는 결정적인 형세’와 ‘큰 권세’의 의미로 주로 사용하는 단어인데 어느덧 연예계에선 두 가지가 합친 ‘특정 계통에서 제일 두각을 나타내며 큰 권세를 누리는 연예인’을 지칭하게 됐다. 섭외 1순위란 얘기.

연예계와 연예인은 각종 문화의 유행을 주도하는 세력이다. 연예 콘텐츠엔 트렌드가 강력하게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런 특성 때문에 최정상급 스타나 아주 독특한 강점(혹은 개성)을 가진 몇몇을 제외하곤 대중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연예스타의 흐름은 수시로 바뀌기 마련.

이민호-김우빈-송중기-박보검 식으로 20대 남자배우의 트렌드가 바뀌어온 흐름이 그렇다. 예능인으로서 현재 가장 뜨거운 인물은 이상민이다. 유재석-강호동-신동엽 등은 워낙 꾸준히 장기집권해왔기 때문에 특별히 더 튀는 인상이 없지만 이상민은 나락에 떨어졌다 가수나 사업가가 아닌, 예능인으로서 두드러지기에 존재감이 커 보인다.

지난 14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가 18.3%의 시청률을 올렸다. 예능 중 1위다. 다양한 플랫폼이 자리 잡은 방송여건 속에서 비교적 시청이 용이한 초저녁 전통의 강호 KBS2 ‘1박2일’과 MBC ‘무한도전’도 못 따라올 만큼의 수치를 기록한 건 의미가 각별하다.

현재 이상민은 김건모 박수홍과 함께 ‘미운 우리 새끼’의 재미를 이끈다. 물론 그를 시청률의 일등공신이라 보기는 무리지만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가 김국진이 비운 MBC ‘섹션TV 연예통신’의 남자 MC 자리에 발탁된 건 의미가 있다. 제작진의 시의적절한 대안이란 판단일 것이다.

이상민은 1994년 김지현 신정환 고영욱 등과 함께 룰라의 리더로 데뷔했다. 룰라는 작곡가들로부터 받은 곡에 대한 표절논란에 휩싸이더니 결국 3집의 ‘천상유애’가 일본그룹 오마쓰리 닌자의 곡을 번안한 수준인 게 드러나 위기를 맞았다.

룰라 해체 후 이상민은 프로듀서로서 브로스 등의 앨범을 제작했으나 큰 재미를 못 봤고, 국내 최초의 격투기 전문 경기장 등의 사업에 손을 댔지만, 요즘 방송에서 자아비판의 단골메뉴로 내놓는 ‘69억 원 채무’만 남기면서 결혼생활마저 실패로 끝났다.

룰라에서의 중요성과 존재감으로 볼 때 신정환은 이상민과 비교가 안 된다. 이상민은 죽 리더였지만 신정환이 1집 활동 후 군에 입대하자마자 소속사는 지체 없이 그 자리를 채리나로 채운 뒤 전성기를 맞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룰라가 1997년 해체되자 이듬해 신정환은 탁재훈과 함께 컨츄리꼬꼬를 결성하고 제2의 가수인생을 열며 역전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2004년 고영욱과 결성한 신나고마저 일회성으로 끝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정환은 탁재훈과 더불어 그때부터 예능인으로서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 룰라도 이상민도 없었다.

잘나가던 신정환은 곧바로 도박에 발목을 잡혔지만 잠깐의 휴식기 이후 재기에 성공해 예능인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연다. 그러나 길지 못했다. 2010년 초가을 갑작스레 지상파 방송3사의 녹화를 펑크낸 뒤 필리핀 원정도박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그리고 최근 코엔스타즈와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컴백을 준비중이다.

공교롭게도 이상민은 신정환이 도박파문으로 공백을 가졌을 때 서서히 예능인으로서의 자질을 예열해 신정환이 컴백을 선언하고 부정적인 여론에 휩싸인 지금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같은 시기에 계속 온탕과 냉탕의 대비된 행보를 보이는 두 사람이다.

신정환은 군대에 관해서라면 정말 당당하다. 연기도 없이 만 20세 때 특공여단에 입대했고 고참병사인 상병 땐 앙골라에 유엔평화유지군 파병을 자원했을 정도다. 가수로선 그다지 빛나지 않았지만 예능인으로선 강호동도 부럽지 않을 정도의 영광도 누렸다. 회당 출연료가 2000만 원이었다.

이상민은 군복무 면제자다. 전 아내와의 이혼 때 구설수에 올랐고, 사업실패로 인해 떠안은 엄청난 부채로도 손가락질을 받아야했지만 톱스타에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시청자들이 신정환을 좋아한 이유는 유재석처럼 유약하고 선한 캐릭터도, 강호동처럼 강하거나 독재자 스타일도 아닌,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거칠어서 솔직해 보이고, 그래서 친근한 캐릭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도박 입건을 거짓말로 얼버무리려했고, 방송을 통해 막말이 설정이라기보다는 실제인 듯한 인상이 짙어지면서 부정적 시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두 번째 도박과 그걸 덮으려는 잇단 거짓말, 그리고 납득하기 힘든 외유가 대중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상민은 룰라 때부터 구설수에 올라 이미 예방주사를 맞았다. ‘천상유애’ 표절이 언론에 드러나자 이상민은 화장실에서 자해를 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작극’이라고 비난을 보냈다. 하지만 이상민의 심성을 아는 사람은 당시 표절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상민에게 동정표를 보냈다. 4집이 성공한 이유가 그렇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에 결벽증이 강하며 제 식구를 유난히 챙기는 심성을 지녔다. ‘천상유애’의 작업에 룰라의 멤버들은 보컬 외엔 참여하지 않았다. 표절에 그들이 가담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상민은 그래서 룰라 멤버들이 모든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음반판매 중지와 활동중단을 선언하며 고개를 조아렸음에도 욕을 먹는 게 답답하고 억울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여론의 힘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이상민은 신정환에 비해 비교적 사생활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룰라의 구심점이었고, 한때 유명 여가수의 남편이었으며, 규모가 큰 기획사의 음반제작자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어머니가 세세한 부분까지 ‘까발리고’ 있다.

시청자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동병상련이자 동정심의 감정에 있다. 대중이 우러러보는 톱스타에서 수십억 원의 채무자로 전락한 그를, 그 정도 빚을 질 규모가 안 되는 서민들은 ‘그래도 내가 좀 낫구나’라는 자위의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불쌍하다는 측은지심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라도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고 더 늙기 전에 재혼도 하라는 격려다. 물론 뒤늦게 발현한 예능감도 한몫을 했는데 그건 김건모처럼 타고난 게 아니라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배운 ‘생활의 발견’이다. 또 그의 궁핍한 삶을 훔쳐보는 것 자체가 대중에겐 예능이기도 하다.

1990년대의 댄스그룹이든, 현재의 아이돌그룹이든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단명하기 마련이다. 그건 팀을 규정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음악성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댄스그룹은 나이가 들고, 소속사가 더 이상 팀에 메리트를 더 느끼지 못할 즈음엔 동력이 바닥나는 게 수순. 한때 작곡과 프로듀싱에 집착했던 이상민이 뒤늦게나마 예능에 정착한 것은 현재의 아이돌그룹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현상이다. 이상민의 파란만장한 삶 자체 역시 반면교사의 교보재다.

신정환이 뎅기열 조작 등 씨도 안 먹힐 거짓말을 여러 번 구사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 게 대중의 무서움을 몰랐던 교만 탓이라면, 이상민이 대기만성할 수 있었던 배경은 고생하면서 연예인이 제일 무서워해야할 사람이 누구인지 절실하게 깨달은 겸손 덕일 것으로 해석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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