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류충렬의 파르마콘] 규제는 정책목표의 실현 수단으로 국민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강제적인 방식이다. 따라서 규제는 만들어진 이후에는 과연 당초 정책목표에 적합하게 작동하는지, 강제하는 정도가 과하지 않은지, 비규제적인 다른 수단으로 대체할 수 없는지, 기술변화·융복합화·국제경쟁 등 규제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관리해 주어야 한다. 이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방식을 강요한 정부의 지극히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변화, 사회변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를 살펴보고 적기에 정비하는 것은 더 없이 중요하다. 규제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맞추어 규제도 끊임없이 다듬어져야 한다. 진정한 규제개혁은 환경변화보다 오히려 앞서 다듬어 져야한다. 걸림돌이 된 이후에 개선하는 것은 그만큼 실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규제는 관성(慣性),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 등 내재된 속성으로 여건변화보다 선제적으로 개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환경변화를 알고 있음에도 개선하지 못하는 나름의 변명도 있겠지만 어쨌든 여건변화에 이기는 규제는 없다. 주변에서 환경변화에 눈과 귀를 막아 불만이 쌓이고 있는 규제들을 흔하지 않게 볼 수 있다. 환경변화로 개혁이 필요한 규제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특수의료장비 설치와 관련된 규제를 예들어 본다.

특수의료장비 설치관련 규제현황
보건복지부가 규정(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하고 있는 특수의료장비는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장치), CT(전산화단층 촬영장치), 유방 촬영용 장치를 말하고 있으며, 그중 MRI와 CT의 설치는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MRI, CT의 설치는 200병상(bed)이상의 의료기관에서만 설치가능하다. 만약 200병상 미만의 의료기관에 장비를 설치하려면 동일 또는 인근 시․군․구에 있는 소규모 병상을 가진 병원들의 동의를 받아 200병상 이상의 동의서를 모아야만 겨우 한 곳에 설치가 가능하다(단, CT의 경우 인구 10만이하의 시군에서는 100병상). 그나마 병상이 있어도 동의가 가능한 병원에서 요양병원, 한방병원, 정신병원, 결핵병원, 치과의원 등은 제외된다. 결과적으로 종합병원이 아니면 MRI, CT를 설치가 거의 어렵다는 것이다. 2003년에 시작되어 14년이 경과한 이 규제의 당초 목적은 혹 의료기관이 고가 의료장비를 설치하여 과다한 촬영을 환자에게 유도할 개연성을 우려한 것이다. 이로 인해 자칫 우려되는 환자부담, 의료보험의 지출을 줄이게 될 것이라는 취지일 것이다.

규제환경의 변화와 규제개혁
특수의료장비의 설치를 제한하는 200병상 규제가 만들어진지 14년, 의료기관의 형태와 의료기관을 찾는 수요의 추세도 많이 달라진 요즘이다. 많은 사람들은 발병 이후 치료목적 못지않게 발병 가능성을 미리 알고 예방해 보고자 의료기관을 찾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를 싶게도 얘기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발병 후 치료가 아니어도 건강검진, 헬스케어 등 예방을 위한 의료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치료보다 진단만을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영상전문의 의료기관도 증가하고 있으며, 그간 치료에 집중하던 종합병원들도 건강검진센터 확장에 더욱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검진전문 의료기관의 증가는 MRI, CT의 에 대한 수요증가를 가져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재 MRI, CT 설치를 위한 1개 병상 동의서에 150만원 내외의 뒷돈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200병상의 동의서를 모으려면 2억 이상의 뒷돈이 필요하게 된다. 특히 요즘 병상이 불필요한 검진 중심의 의료기관의 증가하면서 200병상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동의서 확보에 의료기관간 갈등도 제법이라고 한다. 수요자인 국민의 경우에도 인근 의료기관에서 장비의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다. 지방의 경우 200병상을 갖춘 멀리 있는 종합병원에서야 겨우 가능하게 된다. 설치시 뒷돈은 결국 소비자에 전가된다.

특수의료장비 설치를 제한하고자 하는 규제의 필요성이 아주 없어 진 것은 아닐 것이다. 허나 의료기관의 형태, 의료수요의 변화에 걸맞지 않는 규제는 양측으로부터 불만이 쌓이고 있다. 혹 우려되는 과잉 촬영의 우려는 병원 간 영상결과의 전달사용이나 설치제한 방식이 아니라 과다한 운용 제한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설혹 규제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요즘 입원 병상이 없는 의료기관의 추세에 비추어 입원치료의 병상을 유일한 기준으로 하는 잣대만이라도 먼저 환경변화에 맞추어 개선되어야 한다.

▲ 류충렬 박사

[류충렬 박사]
학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
경력 2013.04~2014.01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 단장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
국무총리실 사회규제관리관
한국행정연구원 초청연구위원
현) 국립공주대학교 행정학과 초빙교수

저서 : 규제의 파르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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