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다수의 예상을 깨고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내리 3연패하는 등 결국 1승4패로 간신히 체면치레만 한 바둑대결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제 인류는 영화 ‘터미네이터’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중인 ‘에이리언: 커버넌트’(리들리 스콧 감독, 이하 ‘커버넌트’)는 더욱 충격적이다. 그동안 정체성의 철학으로 널리 알려지고 그래서 작품성을 높게 평가받은 ‘에이리언’ 시리즈의 프리퀄 2편인 ‘커버넌트’의 철학은 더욱 심오해졌고, 경고는 더욱 살벌해졌다.

이전 타 감독의 시리즈는 첫 작품의 연출자인 스콧이 가진 페미니즘을 그대로 지킨 채 정체성을 묻는 메시지를 지켜왔다면, ‘커버넌트’는 아예 신과 인간의 경계를 묻는다. 전작들의 주인공이 리플리라는 여전사였다면 ,이번엔 마이클 패스밴더가 1인2역을 소화해낸, 외모는 똑같으나 프로그래밍은 양극화된 A.I. 데이빗과 월터다.

▲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전 모델인 애쉬 비숍 콜과 달리 데이빗은 최초로 감정을 갖고 자아를 탐구할 줄 알며 목적의식까지 갖췄다. 인류는 그 위험성을 알고 최근 예전 모델처럼 감정을 뺀 월터를 만들었다. 데이빗은 인간의 신을 넘보는 오만과 다른 종을 바라보는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영화의 이런 경고는 이미 1968년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부터 존재했다.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문명의 지혜를 가르쳐 준 검은 돌기둥(모놀리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목성으로 디스커버리호를 보낸다. 그런데 크루들을 보호해야할 컴퓨터 HAL9000이 자체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자아를 깨닫고 선원들을 위험으로 몰고 간다는 내용.

보는 시각에 따라 ‘커버넌트’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프리퀄을 뛰어넘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속편 성격을 띤다. 호모 사피엔스는 모놀리쓰의 가르침에 의해 도구를 사용하는 법과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깨우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을 물리치고 지구의 주인이 된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선장 이름이 데이빗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구약성서의 다윗이고 ‘커버넌트’의 주인공이다.

▲ 영화 <에이리언 : 커버넌트> 스틸 이미지

선장 데이빗은 결국 모놀리쓰를 발견하고 지구로 귀환해 임종을 맞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숨을 거두는 데이빗이 가리킨 곳엔 모놀리쓰와 막 태어나려는 태아가 있다. 그 새 인류는 바로 데이빗 자신이다. 그건 ‘프로메테우스’의 주제인 인류의 기원과 맞닿아있고, ‘커버넌트’의 새 ‘인류’와 에이리언이란 변종(혹은 대체물)의 탄생과도 연결돼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가 본격적으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실제 인류의 생활 깊숙하게 파고드는 시대를 선포한 서막이었다.

역사가 짧고 신화가 없는 미국이 열광하는 우주역사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R2-D2, C-3PO, BB-8, K-2SO 등은 ‘아메리칸 드림’이 만든 귀엽고 친근한 인간의 친구이자 심부름꾼 선에서 머문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2001)는 섬뜩하다.

데이빗은 최초의 감정을 가진 소년 로봇으로 자신을 입양한 부모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절절하게 애를 쓰지만 위중한 병에 걸렸던 진짜 아들이 코마상태에서 깨어나자 엄마는 매정하게 그를 외딴곳에 버린다. 이후 그는 자신을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줄 파랑새를 찾아 수십만 년을 헤매지만 결국 잠든 그를 발견해낸 이는 모든 생명체가 멸망한 지구의 새 주인이 된 고도로 진화한 A.I.다.

▲ 영화 <블레이드 러너> 스틸 이미지

스콧 감독은 이미 1982년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A.I.의 인류공격을 소재로 삼은 바 있다. 주제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리플리컨트(복제인간) 로이 등 6명은 4년으로 설계된 자신들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인류는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베테랑 블레이드 러너(리플리컨트 사냥꾼) 릭을 투입한다.

로이는 릭을 죽일 수 있었으나 외려 그를 살리고 자신이 희생된다. 로이는 우연히 알게 된 첨단 리플리컨트 레이철과 사랑에 빠져 도주한다. 이 모든 이유는 그 역시 인간 형사의 기억이 심어진 리플리컨트였기 때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를 빼면 철학을 외면하는 격이다. 사람 몸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의체와 전뇌로 대체할 수 있는 초고속 네트워크 사회.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는 각국의 네트워크에 출몰해 주가조작 정보조작 정치공작 테러 등을 일삼아온 인형사(쿠제)를 잡는다. 그의 정체는 정부의 한 부처에서 비밀리에 만든 A.I. 그는 독립된 인격체임을 주장한다.

▲ 영화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 스틸 이미지

그는 자신을 생명체로서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너희들의 유전자도 종족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생명이란 정보의 흐름 속에서 생긴 결정체 같은 것일 뿐. 인간은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을 통해 개인이 되는 것. 기억이 환상이라 해도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인간을 위해 일해 온 A.I.인 쿠사나기는 쿠제에 의해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그의 제안에 따라 융합에 의한 변이를 시도함으로써 신인류가 돼 무한한 네트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는 니체가 주인과 노예의 메타포로 표현한 ‘주권적 저항’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에 대해 “극도의 허무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적 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자기초월에만 관심을 둬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두 ‘생명체’는 초인(超人-사람을 뛰어넘은 존재)이 되거나 아예 초극(超克-모든 어려움을 극복)의 존재가 됨으로써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향해 약진한다. 프롤레타리아가 가진 르상티망(원한, 복수감)의 분출로 인한 신세계의 재편이다.

▲ 영화 <터미네이터> 스틸 이미지

그보다 훨씬 앞선 ‘터미네이터’(1984)는 철학은 약하지만 내용이 준 충격은 시대적으로 앞섰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1997년 인공지능 컴퓨터 전략 방어 네트워크 스카이넷이 스스로 지능을 갖추고 인류를 핵전쟁에 몰아넣어 30억 명을 몰살한 뒤에도 인간사냥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남아 저항하는 인간들의 리더 존 코너가 큰 위협을 줄 것이란 미래를 보고 타임머신을 통해 인간사냥꾼 터미네이터 T-800을 존이 탄생하기 직전인 1984년의 LA로 보내 그의 어머니 사라를 죽이려한다. 이 인공지능은 엄청난 전투능력을 지녔으며 절대 포기를 모른다. 게다가 교활하기까지.

T-800이 고작 목소리를 변조해 코너 일행을 속였다면 ‘엑스마키나’의 에이바는 자신을 창조한 네이든의 인격테스트를 되레 자신이 주도해 조작함으로써 창조주를 속인 뒤 죽인다. 그 후 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조종사를 속여 헬기를 타고 날아가는 것은 세상으로 진출한 신인류의 시작을 의미한다. 자만으로 가득 찬 구인류의 파멸에 대한 알레고리다.

▲ 영화 <엑스마ㅣ나> 스틸 이미지

‘엑스마키나’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용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다. 헬기를 타고 인간세상에 내릴 에이바다. 그 무서운 인공지능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토니 스타크가 잘못 만든 울트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봇의 역사를 얘기할 때 최초의 특수효과장치 마키나(기중기)와 페리악토이(회전 삼각기둥), 그리고 디오니소스(바쿠스)를 빼놓을 수 없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만큼 스토리가 많은 신이다. 포도(주) 다산 풍요 쾌락 기쁨 황홀경 광란의 신이고, 잔인함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도취와 쾌락의 신이다. 또 식물의 성장을 관장하는 전원의 신이자 부활의 신이다.

제우스는 자신의 딸까지 취할 정도로 오로지 사랑(육욕)에만 몰두했다면 디오니소스는 다양한 키워드를 낳았고, 무수한 사연을 남겼다. 그중에서 고대인들이 주목한 건 바로 다산 풍요 쾌락 그리고 부활일 것이다. 그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자 A.I.의 상징성이다.

데카르트는 관념을 밖에 있는 사물의 감각을 통해 얻어지는 외래관념, 스스로 꾸며서 만들어 내는 인위관념, 본래부터 갖고 있는 본유관념의 3가지로 보고 신의 존재를 본유관념에서 찾았다. 전술한 영화 대부분의 A.I.는 참고했건 그렇지 않건 이런 디오니소스의 신화와 데카르트의 철학을 근간으로 한다.

‘사람은 어디서, 왜 왔으며, 삶이란 뭔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대체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의문이다. 뉴질랜드에만 서식하던, 천적이 거의 없던 가장 큰 새 모아를 수백 년 전 멸종시킨 주인공은 당시 그곳에 정착한 마오리족이다. 인류는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자연스럽게 자연이 탄생시킨 종일 텐데 이렇듯 신의 영역을 넘보거나 신을 안 믿는 자만에 빠져있다는 책망이자 그게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를 예고하는 섬뜩한 경종은 아닐는지. 시뮬라시옹(실재가 파생실재로 대체되는 작업)에 의해 시뮬라크르(그 대체물)가 지구를 지배하는(장 보드리야르).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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