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정동근의 명리학 산책] 지난 5월 말 바둑 종주국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에서 세기의 기전이 펼쳐졌다. 다름 아니라 당대 바둑 세계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와 지난해 이세돌 9단을 무릎 꿇리고 인간을 제친 ‘알파고’와의 대결이 있었다.

결과는 이미 알려진바 대로 알파고의 3대0 완승이다. 커제는 이세돌과 알파고가 5번기를 벌일 때 “알파고가 이세돌은 이겨도 나는 이길 수 없다”고 호언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결국 커제는 반상에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커제를 완파한 ‘알파고 마스터’는 2세대 TPU(Tensor Processing Unit, 다차원처리장치)를 탑재했다. 이는 이세돌을 격파한 알파고에 비해 더욱 강력해진 정책망과 가치망을 갖춘 인공지능이다.

커제가 눈물을 떨구자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실수 없는 인공지능이 바둑대결의 즐거움을 빼앗고 말았다”며 반집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반상의 묘미를 해쳤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알파고, 이세돌 이어 세계랭킹 1위 커제도 울려

필자 생각엔 알파고는 인간이 입력한 매뉴얼에 충실한 깡통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TV 같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로봇의 하나다. 알파고의 핵심 중 하나는 프로그램 매뉴얼의 연구 결과이다.

알파고의 출현 가능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 같은 곳에 수없이 나왔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주제로 한 영화가 얼마나 많았던가. 메커트로닉스 기술이 발달하면서 노동 현장에는 로봇에게 매뉴얼을 입력해 활용하는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로봇은 전원이 있는 한, 고장이 없는 한 끊임없이 돌아간다. 땀도 흘리지 않는다. 반면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 노동으로 인해 땀을 쏟는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동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장을 보라.

인체의 세포 하나하나를 움직여 힘과 지혜를 짜내는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땀인 것이다. 땀은 고통을 참으며 얻은 결과물이고 그 고통을 이기도록 지지가 된 것은 바로 가족이란 이름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현실이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발달로 자동시스템이 광범위하게 도입되면서 인간의 자리를 조금씩 대체했다. 좋은 말로 대체요 일자리를 앗아 간 것이나 다름없다. 8비트 컴퓨터가 나오기 전 우리는 타자를 쳤었다. 지금은 아예 선도 필요 없는 무선시대가 도래했다. 8비트 시대에서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시대가 인간의 일자리 앗아가 

사람이라도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 인기는 귀신과 같은 존재다. 알파고 역시 귀신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의 손에 의한 프로그램 주입식 데이터에 의한 결과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깡통 같은 ‘보이지 않는 TV’에 고성능 RPM 1억만 속도를 자랑하는 ‘잔머리 데이터’를 주입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놀랄 필요가 없다.

또한 알파고는 맛을 모른다. 오장육부도 없다. 알파고는 물을 만지고 마실 수도 없고, 산을 오를 수도 없다. 땀을 흘릴 수도 없고 감정까지 데이터에 의존하는 존재일 뿐이다. 결국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을 바탕으로 주입한 결과물이다.

인공지능 로봇은 절대 사람이 따라 가지 못한다. 사람이 암에 걸리듯 알파고 역시 인간 세포처럼 활성화 될 때 바이러스 한방이면 뇌사판정 받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기초 무시하면 사주 육십갑자(六十甲子)가 깔본다

알파고는 사람처럼 기도하지 못한다. 따라서 기도로 사람을 살릴 수도 없다. 또 귀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귀신의 조화로움을 알 수가 없다. 알파고는 완벽에 도달하려는 도전체일 뿐이지 결코 완벽할 순 없다. 알파고를 만든 것도 오행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인간의 기초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인간이 기초를 잃어버리면 알파고도 있을 수 없다. 알파고에 악용될 데이터 입력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알파고에 인간을 우습게 여기는 데이터를 넣는다면 이 사회가 어찌될지 상상하기도 싫다.    

사주 역시 마찬가지다, 기초를 무시하면 귀신이 깔보고 사주인 육십갑자가 우습게 볼 것이다, 주역을 만들어낸 창조의 씨앗은 바로 ‘기초’다. 결국 사람이 만든 원칙과 틀 안에서 기초를 무시한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점점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역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중국 주역 역사를 넘어설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알파고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하는 이들이 있지만 결국 인간의 세계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자동화 기계에게 밀려나는 노동자의 비애, 결국 같은 인간의 비애라는 것, 그가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알파고를 앞세운 메커트로닉스의 세계가 아무리 득세해도 우리 인간은 ‘인간의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사주가 있지만 알파고에겐 그런 운명이 없다.

▲ 정동근 승원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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