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도 역사는 바름을 향해 나아간다-1 [강동형 칼럼]

강동형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l승인2017.06.01l수정2017.06.0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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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위대한 여정의 서막

▲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미디어파인=강동형의 시사 논평] 역사가들은 2016년 10월부터 2017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지난 7개월여의 여정을 어떻게 기록할까. 다양한 시각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진리와 정의를 향해 뚜벅뚜벅 앞으로 전진했다는 사실은 왜곡하거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하루하루가 역사의 기록이었다. 모든 국민은 그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그 과정은 치열하면서도 평화적었다. 촛불이 타올랐고, 대통령이 탄핵됐다. 탄핵된 대통령은 헌재 재판관의 만장일치로 파면됐다.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이 기간을 역사가들은 위대한 여정이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교범을 만들었다고 자랑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의 이야기에서도 미국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의 위대한 여정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의 부드러운 정권교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치 한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쉬운 것처럼 보일 정도로 조금 질투가 난다. 한국은 전 세계에 모범을 보였다”고 일련의 사태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17일자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을 경고했다. 그리고 이를 반전시키는 유일한 방안은 소통과 양극화 해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즈음 농민 백남기씨의 사인을 놓고 외인사 논란이나 하는 등 소통의지를 읽을 수 없었다.

▲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레임덕 위험성을 경고한지 일주일이 지난 10월 24일. 박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임기내 개헌카드를 던졌다. 언론에 일부 보도되던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무마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이날 신문사 논설위원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면서도 진정성 없는 개헌 제안을 비판했다. 개헌논의가 불랙홀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빗나갔다. 박대통령의 진정성 없는 개헌 제의에 대한 비판이 주종을 이뤘다.

역사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박대통령이 개헌제안을 하던 그날 저녁 JTBC는 최순실 태블릿 PC에 저장된 국정농단 사건의 증거들을 쏟아냈다. 박대통령은 개헌문제가 모든 의제를 집어삼킬 블랙홀이 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사태가 개헌제의마저 집어 삼킨 슈퍼블랙홀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역사의 물꼬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에앞서 이원종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정감사에서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것을 좋아했다는 언론 보도를 확인하는 질문에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런데 최 씨가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대통령 연설문이 쏟아져 나와 할 말을 잃게 했다. 타오른던 불 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다음날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했다. 그것도 취임 초 참모진이 제자리를 잡기 전에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1차 사과는 결론적으로 진정성 없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가 개최됐다. 이 때만해도 청계천변에서 시작된 작은 촛불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 광화문과 전국을 뒤덮는 촛불혁명으로 확대 될 것이라는 건 감히 짐작도 하지 못했다.

▲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촛불집회의 구호는 대통령 하야, 2선후퇴였다. 탄핵이라는 구호도 있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탄핵될 것으로 믿는 국민들은 소수에 그쳤다. 특히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탄핵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듯 보였다. 중립내각구성과 대통령 2선후퇴를 주장했다. 잠룡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등은 탄핵을 주장했지만 의석 분포상 불가능한 주장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 여겨졌다. 새누리당이 반대하면 탄핵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또 악수를 뒀다. 11월 2일 김병준 국민대교수를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야당과 사전 협의를 제대로 했다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일방적인 총리 지명으로 받아들여졌고, 2선 후퇴 방식도 결단이 아니라 국회에 맡기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결국 그는 인사청문회도 받지 못하고 37일을 버티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지위 상실로 물러나는 쓴 맛을 봤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문 전 대표의 하야 및 2선후퇴 주장을 초헌법적이라고 반박하면서 법과 헌법에 의한 질서있는 퇴진은 탄핵밖에 없다며 국회에서의 탄핵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촛불집회는 회를 거듭하면서 전국으로 확대됐다. 국회에서 박대통령에 대한 탄핵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국가 원로들이 나서 박대통령 4월 하야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울러 박영수 특검이 임명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특검 수사가 시작됐다.

▲ 사진=kbs 뉴스화면 캡처

2016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장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소란을 피우는 의원들은 없었다.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을 제외한 299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결과는 탄핵 찬성이 234표로 압도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되는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촛불 집회장에서 만난 박석무 다산연구소이사장은 “문재인 후보가 먼저 탄핵을 주장했다면 탄핵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리가 있는 얘기라 생각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 탄핵은 의석 분포상 바른정당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른정당이 탄핵에 동참한 데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기대가 한 몫을 했다. 반 전 총장을 영입해 대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과 결별할 수밖에 없다. 탄핵에 동참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대선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해 탄핵을 주장했을 것이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역사의 짧은 순간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가 마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설계를 해놓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예측은 하면서도 과연 이 결과에 대해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저 불확실한 미래를 더듬으면서 어두운 터널을 지날 뿐이다. 이번에는 촛불이 그 어둠을 비추는 길잡이가 돼 줬다.

대통령 탄핵은 위대한 여정의 서막이었다.

강동형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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