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이번에는 '좋은 부부싸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좋은 부부싸움' 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선 '나쁜 부부싸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싸우고 나서 (원래 문제는 전혀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감정이 상하여 다음에 또 싸울 때까지도 그 앙금이 남아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좋은 부부싸움'은 싸우는 도중이나 싸운 후에도 각자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어서, 불쾌감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또 설령 심하게 싸웠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각자 원하고 또 싫어하는 점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이해를 토대로 하여 서로를 배려하며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들은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부싸움을 '잘 한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또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우선 사람들이 싸울 때 흔히 저지르는 잘못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싸워라. 단, 지혜롭게!

제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는 개인적인 질문들 중 하나는 “선생님은 부부싸움 안 하세요?”라는 것입니다.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대부분 대단히 조심스럽게 묻는데, 이럴 때 내가 “왜요? 저도 싸울 때가 있죠.”라고 하면 그들의 표정이 ‘봄날 햇살처럼’ 밝아집니다. 아마 저 같은 전문가도 부부싸움을 한다면 자신들이 싸우는 것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기 때문일 테지요.

사실은 저도 처음 부터 '좋은 부부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우리 부부가 언제 처음 싸웠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아내는 우리가 처음 싸운 게 ‘이불 개는 것’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아내의 기억이 맞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에 대한 여성들의 기억은 대부분 틀림이 없으니까요!

저희는 '맞벌이'로 결혼 했는데, 신혼 휴가가 끝나고 첫 출근하는 날이었습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내가 제게 이불을 개어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누가 집에 오기로 되어 있나 싶어서 물었더니, 아내는 그런 건 아니라 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굳이 이불을 갤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휴가 기간 내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으면 이불을 개지 않고 지내왔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냥 깔아두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처음 부탁한 건데 그것도 들어주지 않느냐?”면서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자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저는 아내가 ‘화를 낸다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말 중에서 ‘처음’이라는 것을 트집 잡았습니다. 그 동안 장도 같이 보면서 무거운 것을 들어주었고, 손님이 온다면 이불을 개고 청소도 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졌습니다.

저의 반격에 아내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런 건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지 부탁을 들어준 것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여하간 나는 그런 일들 말고도 이미 수없이 많은 부탁을 들어주었는데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느냐고 재차 따져 들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이불 개는 것 하나 해주기 싫어서 말 꼬리 잡는거냐?”고 하면서 말문을 닫았습니다. 싸움에서는 제가 이긴 것 같은데, 기분 좋았던 아침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저는 졸지에 ‘치사한 신랑’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이기는 싸움을 하라

저의 경우처럼 사소한 일로 싸우게 되는 경우는 어느 부부나 경험하였을 것입니다.그러나 이런 사소한 말툼이 심각한 부부 불화로 이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로, 싸움에 너무 열중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뭐든지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부싸움에서도 어떻게든 이기려 합니다. 사실 부부싸움에서 이겨보았자 남는 것이 뭐 있는가요? 그래도 일단 싸움이 되면 지지 말아야겠다는 ‘못된 본능’에 사로 잡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맙니다. 제 경우를 보면, 그 싸움은 그야말로 별일 아닌 ‘이불 개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내의 부탁이 처음이든 아니든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인데도, 저는 (단지 아내를 이기기 위해서) ‘첫 부탁’이라는 말을 물고 늘어져서 아내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했습니다. 반면 아내는 제가 흔쾌히 들어 줄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자 감정이 상했고, 그런 결과로 저희 두 사람은 결혼하고 출근하는 첫날에 기분을 상하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 제가 이기려는 ‘못된 본능’에 사로 잡힌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저지른 잘못처럼, 단지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억지 논리’를 세우고 상대의 실수를 파고듭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싸움에서 이겼다 해도 남는 것 하나 없을 뿐 아니라, 그럴수록 자신만 쩨쩨한 사람이 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내 역시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는 순순히 제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요.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저처럼 '싸우면 이겨야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이기고도 지는 싸움’을 수 없이 반복합니다. ​따라서 이런 못된 본능만 잘 다스려도 불필요한 싸움을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싸우는 동안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배우자를 모욕하거나 협박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부부들이 대화의 문을 닫고 사는 것은 싸우는 동안 주고 받은 모욕과 좌절감 때문입니다. 즉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라는 문제로 시작한 대화가 순식간에 ‘누가 더 옳은가’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누가 더 형편없는 사람인가’ 까지 싸움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싸우면 일단 이기려는 본능’ 때문에 상대를 헐뜯고 무시해서라도 일어나는 현상인데, 결과적으로 애초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면서 불쾌감만 남게 됩니다.

부부심리연구가 존 M. 고트맨은 부부가 대화하는 것을 3분만 지켜봐도 그들이 앞으로 이혼하게 될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특히 ‘비난’과 ‘모욕’이 부부관계에 가장 치명적이라고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 이유는 그다지 상관이 없고, 싸우면서 상대의 인격을 비하하고 상대를 무시하며 외면하는 태도 때문에 이혼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싸울 때나 싸우지 않을 때나, 부부 간에 주고 받는 말과 느낌이 부부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부부가 각자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역효과만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우더라도, 싸우는 중에 ‘나는 당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도 나를 싫어하지 않을 것을 믿는다’는 표현을 (의도적으로라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만약 열심히 싸우다가 뜻하지 않은 말실수로 상대를 모욕한 것 같으면 즉시 사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아까는 흥분해서 심한 말을 했는데, 그건 사과할께. 하지만 애초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정리하고 싶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싸우는 동안 스스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검토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싸움이 끝나고 심지어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상대가 자신에게 했던 잘못에 대해서 분을 풀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 당시 자신이 상대에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을 못한다는 겁니다. 더러 자신이 지나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상대가 먼저 도발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합니다. 

그런데 그 상대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먼저 화해를 청하기 보다는, 서로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반성을 하며 용서를 빌어오기를 기다립니다. ‘나쁜 부부싸움’에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문제도 간단하게 넘기지를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잘 싸우기 위해서는 우선 필요 이상으로 격한 단어를 쓰거나 지나치게 방어적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잘못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 동시에 상대가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저지른) 말 실수 정도로 여기고 너그럽게 넘어가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대도 나와 마찬가지로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동정심'을 가지고) ‘자신이 받고자 하는 대로’ 상대를 위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 결혼 생활이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면서 주의하여 지켜야 할 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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