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MBC ‘듀엣가요제’가 배출한 최효인이 지난 5월 27일 서울의 한 소규모 공연장에서 첫 팬미팅을 가졌다. 이제 아마추어가 아닌 연예기획사 소속 프로가수로서 힘찬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티켓은 거의 매진돼 400석이 가득 찼다. 30~40대의 여자들이 압도적이었다. 10대는 극히 일부분. 20대 젊은이와 50대 장년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아직 데뷔곡도 나오지 않은 신인 중의 신인이 벌써 팬미팅 미니콘서트라니 참으로 의외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니 이해가 됐다.​

그녀의 레퍼터리는 주로 ‘듀엣가요제’를 통해 불렀던 기성곡들.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모두 발라드 계열이었고, 가사는 청춘의 성장통을 그린, 심금을 울리는 그녀가 걸어온 길이었고, 멜로디는 그 길에서 그녀가 느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아무리 지상파 인기 예능프로그램이라고 할지라도 최효인은 기성가수의 아마추어 파트너 자격으로 출연했을 따름인데 벌써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로 대중적 파급력이 뛰어났다. ‘효움’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춘 팬클럽은 SNS와 정기모임을 통해 그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는 가운데 벌써부터 슈퍼스타로 대하는 자세였다.

이날 입장료는 3만3000원. 콘서트 티켓치고는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지만 아직 오리지널 레퍼터리 하나 없는, 정식 데뷔도 하지 않은 신예임에 비춰선 유료라는 것조차 다소 터무니없었다. 그러나 온라인 판매가 개시되자마자 매진됐다. 그녀에 대한 성원과 후원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증거.​

확실히 ‘가수’ 최효인은 실력과 매력을 갖춘 유망주임에 틀림없었다. 풍부한 성량과 안정된 음정은 롱런에 대한 확신의 근거. 기초가 튼튼하고 체력이 뒷받침된다는 증거다.

개성도 강했다. 미성과 탁성을 넘나들고, 진성과 가성의 경계가 애매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마음대로 주무르는 테크닉 혹은 타고난 재능이 놀라웠다. 당연히 음역이 넓었다. 가창력만 놓고 본다면 흠잡을 데가 거의 없었다. 뭣보다 놀라운 건 아직 정식 취입이나 콘서트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이입과 그것의 표현능력이 프로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는 점.​

가창력은 타고날 수 있다. 그러나 곡의 소화력은 선천적 재능에 후천적 경험에 의한 표현력을 더해 갖추게 되는 연예인으로서의 기량이다. 즉 연기력과 연관이 없지 않다. 팬에게 선물하기 위해 원두커피를 내릴 땐 손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아직 풋내기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녀가 곡의 해석에서 이렇게 탁월한 가능성을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경험에 있는 듯했다.​

매미가 여름 한철 짧은 성충시절의 가창을 위해 수년 간 땅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듯이 그녀에게 있어서만큼은 지난했던 지난 치열한 여정이 오롯이 자신만의 감정의 색채로 채색돼 이제 그게 우화된 ‘가수 최효인’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다만 아직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한 건 향후 가장 큰 숙제다. 에릭 클랩튼, 밥 딜런, 마크 노플러 등이 기타리스트가 아닌 보컬리스트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부족한 가창력을 개성이 충분히 보완했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광대나 기술자와 다른 이유는 창의력의 오리지널리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능력이 없는 가수는 아직 예술가가 아니다. 최효인처럼 자신의 전용곡이 없는 가수 역시 아직 정식 가수라고 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다. 대역배우, 재연배우 등을 배우와 구분해서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 가수 위어드 알 얀코빅은 1980년대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을 코믹하게 바꾼 ‘Eat it’을 크게 히트시킨 적이 있다. 그래미어워드에서 최근까지 두 번째 코미디앨범부문 상을 받을 정도로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미국에서는 그를 패러디의 제왕으로 추앙하며 패러디음악을 일정한 장르로 인정해준다.​

물론 얀코빅은 예술가라기보다는 확실하게 광대 쪽이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대중을 웃겨서 즐겁게 만듦으로써 돈을 버는 데 있다. 그렇다면 최효인은 아직 ‘딴따라’가 아니고, 그렇다고 예술가는 더욱더 아니다. 그렇다. 그녀는 직업 가수를 꿈꿨던 취업준비생에서 이제 막 업계에 입문한 신입가수다.

그녀의 연관 검색어는 ‘최효인 성별’과 ‘최효인 나이’다. 팬미팅에서 그녀는 “7살 이후로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보이쉬 혹은 매니쉬한 컨셉트는 개인의 취향 혹은 마케팅 수법이다. 그녀의 경우는 전자다.​

그 점에선 지금까지 치마 입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고 매번 짧은 헤어스타일이었던 이선희와 이상은이 연상된다. 남자가 없지 않았지만 그녀들의 가장 큰 지원군은 소녀팬들이었는데 최효인의 팬들은 대부분 ‘언니’들이라는 점에서 좀 다르다.​

초등학생 자식을 둔 한 아줌마 팬은 한참 동생뻘인 최효인의 추첨에 의해 머그컵 하나를 선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로또 맞았다”며 펄쩍펄쩍 기뻐하면서 그녀를 한 번 안고, 아쉬워서 또 안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들이 최효인을 그토록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소년 소녀들이 아이돌그룹을 좋아하는 건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혹은 나르시소를 향한 설익은 이성애의 대리만족인 동시에 시시포스의 신화다. 그렇다면 효움의 사랑은 불과 얼마 전 자신들이 느꼈던 좌절과 고통과 절망의 과정을 꿋꿋이 이겨내 이제 터널을 막 벗어난 ‘취준생’의 비상을 격려하는 응원이다.​

문화와 예술의 생명은 창의성과 더불어 다양성이다. 립싱크로 보컬을 대충 때우는 대신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아이돌이 청소년의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강한 존재의 이유를 갖는다면 최효인 같은 ‘꿈꾸는 취준생’형 가창력의 가수는 말초신경이 아닌 뇌에서 생성되는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과 심장을 흐르는 피의 운동량의 증가로 인한 감정의 변화로 음악을 즐기는 팬들을 위해 절실하다.

지성이 깬 사람은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스타와 지도자를 지지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본체학적 행진곡보다는 선험적 관점의 현상학적 정서의 아리아나 레퀴엠을 좋아한다. 최효인의 존재의 의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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