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옥자> 촬영 현장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봉준호는 관객동원 능력과 해외 인지도 등을 총망라한 종합성적으로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몇 안 되는 영화감독이다. 그래서 그의 최신작 ‘옥자’의 개봉방식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제작비 600억 원을 투자한 곳은 미국의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온라인과 극장에서 동시개봉하는 방식을 취했음에도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3대 멀티플렉스는 ‘홀드 백’(한 편의 영화가 극장 상영 뒤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공백기) 등 업계 관행을 이유로 개봉을 보이콧했다. 따라서 ‘극장 구경’은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전국 6개 권역의 7개 극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지난 14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내 영화적 욕심 때문에 이런 논란이 생겼다”며 “피로감을 느낀 분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또한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했을 때의 논란은 당시 프랑스 법이 정리가 안 됐기 때문”이라며 “국내 논란은 그것과 양상이 다르기에 멀티플렉스와 넷플릭스 양측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덧붙였다.​

확고하게 넷플릭스나 멀티플렉스 중 어느 한 곳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니지만 행간에서 변화하는 영화계의 ‘구조조정’에 대한 고뇌가 읽히는 건 사실이다. 사실상 순응 쪽에 가까운 듯한 뉘앙스였다. 과연 이는 재벌들의 ‘밥그릇 다툼’이 야기한 영화산업 질서의 붕괴일까, 아니면 시대적 흐름에 따른 새로운 플랫폼을 낳기 위한 산통인가?​

현재 50대 이상에겐 ‘극장 구경 가자’는 말이 익숙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단관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에게 영화를 보러 가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오죽하면 ‘영화 구경 가자’가 아니라 ‘극장 구경 가자’였다.​

▲ 영화 <옥자> 스틸 이미지

먼저 넷플릭스 등 ‘정통 영화 자본’이 아닌 재벌의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는 일리가 없지 않다. 넷플릭스는 비디오 대여업으로 시작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동영상 온라인서비스 업체로 성장했다. 유료가입자만 전 세계 9300만여 명. ‘옥자’를 오는 29일 한국 미국 영국 등에서만 극장 개봉할 뿐 동시에 기존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취하는 배급방식을 취하는 게 기존 스튜디오들에겐 위협이다.​

이는 영화계의 ‘비정통’ 자본들에게 영화시장 잠식의 쉬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영화를 예술이 아닌,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만 취급할 우려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한국의 몇몇 방송사들도 이미 영화시장에 뛰어든 지 오래. 그러나 넷플릭스의 진입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긴 어렵다. 그 이유는 사회 전반의 모든 패러다임의 빠른 변화에 있다.

극장이 문화라면 온라인은 그냥 생활 그 자체다. 소수의 ‘컴맹’을 제외하곤 도시에선 모든 삶이 온라인을 통해 해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다수의 시청자들은 드라마나 예능을 본방송에 상관없이 편한 시간에 온라인을 통해 즐긴다. 뉴스는 24시간 방송되는 전문채널이 있다. 오히려 멀티플렉스의 동시개봉불가 방침이 관객들의 볼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적지 않은 마니아들은 극장 관람을 고집하긴 한다. 드라마와 영화의 제작상의 디테일이 다르기도 하지만 문화·예술적 정체성 역시 구분되기 때문이다. 일부 영화인들은 그렇잖아도 우리나라가 ‘홀드 백’ 기간이 짧은 편인데 이렇게 온-오프라인 동시 개봉 및 향후 온라인 단독개봉 등으로 플랫폼이 옮겨갈 경우 영화산업 전반에 걸쳐 혼란이 올 것이란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기존에 무소불위의 기득권을 휘두르던 지상파 방송사 역시 이젠 케이블TV나 종합편성채널 등과 채널을 경쟁할 뿐만 아니라 아이피티비(IPTV) 등과 플랫폼 경쟁까지 벌여야 하는 힘겨운 전투 중이다.​

▲ 영화 <옥자> 스틸 이미지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한다는 마니아층이 있듯 편하게 집에서 혼자 보겠다는 관객이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에 따라 관람하겠다는 소비자도 있기 마련이다. 3대 멀티플렉스의 담합에 소비자들이 쉽게 납득하지 않는 이유다. 미풍양속을 지키자는 ‘보수’는 정통성 측면에서 올바르지만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사수 방식은 시대착오적 쇄국주의다. 수출만 하고 수입은 안 하겠다는 아집이다.​

영화의 극장 우선개봉을 주장하는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영화는 예술이고 극장은 예술을 향유하는 문화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오프 라인 동시개봉이 그런 취지에 어긋난다고 개봉불가로 대응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수많은 관객들이 극장에서 예술을 즐기는 문화를 누릴 기회를 박탈한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멀티플렉스들은 그동안 계열사 배급 영화 밀어주기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양성 영화를 외면하고 돈이 되는 영화에 집중한다는 비난도 받아왔다. 그래서 ‘퐁당퐁당’(교차상영)이란 신조어가 생겼고, 독립영화 제작자들 사이에서 ‘올관상영(한 스크린에서 하루 종일 상영된다는 뜻)이 꿈’이란 희망사항까지 나왔다.​

이번 멀티플렉스와 넷플릭스 간의 신경전을 놓고 관객들이 멀티플렉스 측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넷플릭스가 먼저 극장개봉을 거부했다면 주제와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속내야 어떻건 넷플릭스는 배급의 경쟁관계인 멀티플렉스에 수익을 나눠주겠다는 ‘아량’을 베풀었다.​

▲ 영화 <옥자> 스틸 이미지

공룡배급사들은 다양성영화를 지원하는 취지의 계열배급사를 거느리고, 멀티플렉스도 그런 뜻에 부합하는 ‘특별관’을 만들긴 했지만 독립영화계와 대중의 체감온도는 ‘다양성’을 그리 다양하게 느끼는 눈치는 아니다. 넷플릭스가 무려 600억 원이란, 국내영화 제작비에서 보기 드문 거액을 투자한 점을 전가의 보도로 들고 나오는 것까지 밉게 볼 수만은 없는 이유도 거기에 포함된다.

오히려 국내 배급사나 멀티플렉스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블록버스터에 흔쾌히 돈을 대준 넷플릭스에 고마워하거나 최소한 협조해 대중의 볼 권리를 충족시키는 문화사업의 사명감에 충실한 게 옳다는 여론이 힘을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

플랫폼의 다변화로 방송사나 극장이나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새로운 수익창출의 통로 모색에 고심하는 속내는 이해는 된다. 하지만 독자가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옮겨간 흐름에 신문사가 적응해 온라인 매체로 무게중심을 옮겼듯 대중문화 콘텐츠 배급사들도 변화의 리듬을 탈 줄 아는 게 현명하다.

기업은 자본주의의 꽃 중에서도 꽃이다. 넷플릭스의 영화 배급과 투자 진입은 자본주의 체제에선 반칙이 아니라 자연스런 시대적 흐름에 부응한 기업활동의 변화의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다. 영화가 예술이건 외설이건 관객이 선택하면 그만이고, 극장이든 모바일이든 대중이 만족스럽게 즐기면 그뿐이다. 기업은 그런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건전한 기업이윤을 취하면 된다. 그게 자본주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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