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원더 우먼>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DC코믹스의 마블스튜디오에 대한 회심의 대항마 ‘원더우먼’과 그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뛰어들어 경쟁하겠다는 유니버설스튜디오의 다크 유니버스의 첫 작품 ‘미이라’가 국내흥행에서 순풍에 돛 단 듯 순항 중이다. 하지만 관람하고 나오는 관객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이 흥행지수와 평가지수의 불협화음은 왜일까?

먼저 지난해 가을 불거진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과 그로 인해 앞당겨진 대선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정농단 의혹이 사실로 굳어지는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정국이 얼어붙고, 국론이 보수와 진보라는 케케묵은 정치인의 마케팅에 깊게 마취돼 갈라서면서 극장가는 얼어붙었다.

‘뉴스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게 극장을 외면하는 관객의 이유였고, 이에 한숨짓는 관계자들의 분석이었다. 심지어 강우석 감독은 진행되던 정치풍자 영화의 제작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내부자들’ ‘더 킹’ ‘마스터’ ‘판도라’ 등의 영화들이 기가 막히게 예언을 했다는 꿰맞추기까지 등장할 정도.​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문제로 야당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8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얻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당장 국민들의 생활이 확연하게 나아진 가시적인 효과는 없지만 최소한 국민들이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잘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은 맞다.​

경제와 정치가 혼란스러울 땐 심각한 영화가 잘 안 먹힌다. 유해진 주연의 ‘럭키’가 많은 관계자들의 예상을 깨고 빅히트한 이유는 코미디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마인드가 긍정적으로 바뀐 요즘 역시 심각한 영화보단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눈요깃거리가 제격이다. ‘원더우먼’과 ‘미이라’가 딱 그렇다.​

그럼에도 둘이 함께 관람하면 그 중 한명은 불만을 터뜨리기 마련. ‘원더우먼’은 서사구조가 약하고, ‘미이라’는 이전 3편의 시리즈에 비교할 땐 상전벽해지만 마블의 슈퍼히어로들과 비교하기엔 톰 크루즈가 많이 약해졌다. 특히 두 작품이 갤 가돗과 소피아 부텔라라는 여주인공에 지나치게 흥행의 무게중심을 싣고 있다는 게 강점이자 단점.​

▲ 영화 <원더 우먼> 스틸 이미지

‘원더우먼’은 원더우먼의 탄생신화에 집중한다. 제우스가 인간을 창조하지만 전쟁의 신 아레스가 인간세계를 파괴한다. 제우스가 그를 물리쳐 봉인한 뒤 여전사족 아마조네스를 신비의 섬 데미스키라로 인도해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만든 뒤 수천 년이 지난 1900년대 초.

히폴리테 여왕의 딸 다이애나는 우연히 섬에 불시착한 영국 공군 대위 트레버를 따라 세상에 나가 독일군의 심장부에 침투해 제1차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영화가 마블에 대적하기 위해 주력하는 곳은 ‘배트맨 대 슈퍼맨’ 등에서 실패한 시나리오의 설득력이고, 마블과의 차별화된 전략을 취하는 지점은 철학 대신 단순한 재미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정체성의 고뇌, 정의의 기준에 관한 고민과 갈등, 과거의 트라우마 등의 진지한 내면을 심도 있게 다뤘다면 ‘원더우먼’은 그냥 유쾌하다.​

▲ 영화 <원더 우먼> 스틸 이미지

다이애나는 고민과 주저함이 없는, 단순하고 때론 무식하다고 느껴지리만치 거침없는 성격이다.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신하균)에서 광기가 유쾌함으로 바뀐 인물이라고 보면 ‘딱’이다. 반전 역시 그런 구조를 따른다.​

데미스키라는 ‘반지의 제왕’의 비주얼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황홀하고, 그곳의 여전사들의 훈련과 전투장면은 액션 자체도 좋지만 눈이 호강하는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다. 전쟁터에서의 다이애나의 활약 역시 ‘배트맨 대 슈퍼맨’의 허황된 액션보다는 사실에 가깝되 판타지를 포기하지 않는 중도노선을 걷는 게 강점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갤 가돗의 ‘원 우먼 쇼’에 가까운 미모와 몸매 자랑은 절대 1만 원이 아깝지 않다. ‘원더우먼’이 그리스신화를 모티프로 취했다면 ‘미이라’는 이집트신화와 손을 잡았다. 고대 이집트인의 신앙의 근간이 된 ‘사자의 서’의 주인공인 부활의 신 오시리스를 죽인 악의 신 세트를 내세웠다.​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아마네트 공주는 부왕으로부터 왕위계승을 약속받지만 새 왕비로부터 왕자가 태어남으로써 계승서열에서 밀려나자 세트를 불러내 왕 왕비 왕자 등을 살해한 뒤 충신들에게 잡혀 산 채 매장된다.​

도굴꾼 닉 모튼(톰 크루즈)에 의해 봉인이 풀린 아마네트가 지하에 잠들어있던 고대와 중세의 시체들을 깨워 부하로 삼은 뒤 다시 세트를 부활시키기 위해 세트의 단검을 찾아 인간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다는 내용.​

다크 유니버스의 전개를 위해 각종 몬스터를 잡아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하려는 비밀조직 프로디지움을 설립한 것은 적절했다. 미리 하이드란 ‘떡밥’을 던지고, 닉에게 초능력을 주입함으로써 향후 다크 유니버스 안에서 이 다크 히어로들이 어떻게 힘을 합치거나 대결할지에 대한 관심도와 궁금증을 증폭시킨 점은 높이 살 만하다.

▲ 영화 <미이라> 스틸 이미지

특히 약간의 유머를 잊지 않으면서도 니체의 니힐리즘(허무주의)과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그리고 카뮈의 부조리론을 차용한 어두운 세계관의 설정은 훌륭하다. 그러나 SF 오컬트 스릴러에 좀비스타일까지 다양한 장르를 담은 건 과유불급이었다. 다수의 관객은 버라이어티한 장르와 장치를 한꺼번에 즐기길 원하기보다는 특정 탄착점에 안착하는 관람스타일을 선호한다.​

6월 21일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28일 ‘박열’, 29일 ‘옥자’, 7월 5일 ‘스파이더맨: 홈커밍’ 등이 차례로 개봉되면 판도가 확 바뀔 확률이 매우 높은 이유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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