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옥자>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동시에 영화와 가요 시장에서 전통고수와 시대적 변화의 도입이란 상반된 두 가치관이 맞붙었다. ‘옥자’(봉준호 감독)의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미국의 거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넷플릭스가 오는 29일 극장과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겠다고 하자 국내 스크린의 90% 이상을 차지한 3대 멀티플렉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상영불가를 선언했다.​

지드래곤의 신곡을 서비스하는 USB ‘권지용’을 가온차트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이하 협회)가 앨범판매 집계 대상에서 제외했다. ‘권지용’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유형물(앨범 혹은 음반)과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통해 음원에 접근하는 서로 다른 방식에 대한 개념의 대립이다. 당연히 지드래곤은 불편한 기색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영화를 뛰어난 음향시스템과 선명한 화질의 대형 스크린을 갖춘 극장에서 관람하는 게 최적이라는 원칙은 금과옥조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달라졌고, 대중문화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화됨에 따라 이를 즐기는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극장구경'은 확실히 TV 드라마와 다른 콘텐츠이자 문화다. 거의 공짜로 손쉽고 편하게 집에서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굳이 교통비를 지불하고 이동해 1만원 안팎의 관람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고정관념이 영화를 오로지 극장에서만 관람할 수 있었던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관개봉 시절만 해도 관객은 개봉관 재개봉관 동시상영관 등으로 극장의 수준을 분류했었다. 이는 하나의 계급문화였다. 당연히 다수의 사람들은 개봉관 관람을 선호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했으며 동시상영관은 음습하고 저급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깊게 지니고 있었다.​

물론 멀티플렉스로 환골탈태한 지금의 문화양상은 현저하게 다르다. 그러나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서도 손쉽게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환경의 변화가 패러다임을 바꾼 건 명확한 사실이다.

‘극장구경’을 고집하는 사람과 다양한 플랫폼의 적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각각 갈리는 현상은 취향의 차이일 뿐 그 어느 쪽이 옳다는 고집은 시대착오적 아집이다.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양대산맥인 전쟁과 유행에서 전쟁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뒤로 밀린 지금 유행은 소비의 압도적인 첨병이다.​

패션의 경우 관련된 회사들의 교묘하고 교활한 마케팅에 의해 소비를 촉진하지만 문화는 창작자와 대중의 정서가 로맨스를 이룸으로써 변화하고 시장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각종 필름이 유명무실해졌고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이 커다란 변화 속에서 ‘극장개봉’이란 원칙론은 전통의 고수라기보다는 기득권자의 밥그릇 사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협회 측의 USB에 대한 시각은 3대 멀티플렉스의 고집보다 더 명분이 희박해 보인다. 음악감상의 첫 방식은 라이브였다. 연주자들이 직접 펼치는 공연을 청자들이 생생하게 감상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다 LP레코드에 녹음된 연주를 축음기를 통해 감상하는 편리함으로 바뀌었을 때 그 누구도 새로운 감상법이 이단이라고 배척하진 않았다.

LP 소비자들이 한국 가요보단 팝을 더 즐기던 시절 LP 역시 등급이 있었다. 직수입한 오리지널 음반, 한국의 음반사가 재생한 라이선스 음반, 그리고 주로 청계천을 통해 유통되던 불법 복제음반 등이었다. 불법음반은 제외하고, 오리지널과 라이선스의 품격에 대한 차등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라이선스 음반을 음반으로 인정하지 않지는 않았다.​

레코드의 홈에 담긴 세세한 음질을 읽어내는 다이아몬드 바늘과 이를 재생하는 디테일하고 웅장한 스피커 등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춘 진공관 축음기 등 재생기의 완벽한 품질로 음악감상의 질을 평가할 따름이었다.

카세트테이프는 LP에 비해 음질이 훨씬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휴대와 재생의 편리함 덕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불법복제 LP가 사라진 불법시장에 ‘길보드’ 같은 불법카세트테이프 시장이 형성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만약 CD가 나오지 않았다면 마지막 재생 유형물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CD는 완벽한 음질을 보장했지만 음악이 가진 섬세한 정서적 표현을 깎아내고 기계음만 담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오디오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대중은 자연스럽게 음질보다는 작가의 정서나 기량만 즐기는 쪽으로 자연스레 취향을 단순화했다.​

그 결과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게 감상에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요즘이다. 그래서 이제 매우 당연한 생필품이 된 USB를 통해 음원에 접근해 감상하는 게 과연 유형물을 통해 단번에 감상하는 것과 다르다는 고집의 의미는 현대인을 설득하기 힘들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풍경이 일상화된 지금이다.

시대는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알파고가 세계의 바둑고수들과 대국을 펼치고, 그게 생중계되는 현실이다. 변화가 사람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배제돼야 하겠지만 값싸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받아들이는 게 선순환구조다. 다만 그게 지나치게 삭막한 소비지향적이냐, 자연회귀를 주창한 장 자크 루소의 자연주의 철학적 관념이냐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는 있는데 그것 역시 소비자의 몫이다.

오히려 본질은 비껴가고 있다. 아이돌그룹의 콘서트와 그들이 스페셜 한정판이랍시고 내놓는 CD와 LP, 그리고 USB 등에 청소년들이 수십만 원에서 최소한 3만 원 이상의 부담스러운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게 현실에 맞는지, 멀티플렉스의 팝콘 가격이 된장찌개와 맞먹는 게 맞는지 등에 대한 생활밀착형 고민이 비생산적인 논란 때문에 관심대상에서 밀려났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