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결국 유아인(31)의 군 입대는 불가능했다. 지난달 22일 제5차 신체검사에서 그는 최종적으로 ‘현역자원 활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이 결과를 놓고 응원하는 여론과 싸늘한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과연 이 충돌을 야기한 유아인의 군 관련 일련의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미국과 구소련의 야욕에 희생돼 북측과 주적관계를 형성한 우리에게 군은 그 어느 국가보다도 각별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소원은 통일’보다 ‘우리의 첫째는 안보’가 더 돋보이게 된 상황. 김정은의 최근 행보가 그런 정신무장을 더 강화시키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즈음 우리는 군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에 대한 재조명을 고려해봄직하다. 그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이 조작한 이념의 마취와 무조건적으로 전방위에 걸쳐 주입한 군사문화의 폐해 탓이다.​

헌법은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건 모든 국민의 인권과 인격과 지위가 동등하다는 의미다. 즉 계급이 없는 평등국가라는 정의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을 둘러보면 온통 계급으로 형성돼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시골의 ‘형님-아우’ 문화는 우리 고유의 전통이고 정서다. 회사의 ‘부장님’ 문화는 자본주의가 가장 강력하게 적용되는 기업 간의 전쟁터에서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질서다. 군대의 상명하복 역시 군인 각자의 안전 및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데 필요한 위계질서다. 하지만 국가의 모든 조직과 사회가 이렇게 수직구조로 기계화된다면 그건 진정한 민주주의의 진로와 어긋남을 다수가 안다.

크고 힘이 있는 조직일수록-검찰이 좋은 예-후배가 ‘장’ 자리에 오르면 선배는 옷을 벗는 게 관행이다. 부서의 장은 앞서가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발탁되는 게 당연하지만 그게 반드시 경력순이라는 건 잘못 배운 군사문화의 폐해다. 리더로선 부족한 점이 있을지라도 현장업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선배’가 당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실무와 데스크는 총체적인 능력이 가른다기보다는 성향과 취향과 개성과 전문성 문제다. 군사문화의 잔재인 ‘무조건적인 서열순’이라는 고정관념의 맹점이다.​

어느 구조, 어느 사회를 가더라도 대한민국은 ‘너 몇 기니?’ ‘너 몇 살이니?’ ‘너 언제 입사했니?’라고 물으며 애써 서열을 정리하려하는 경향이 짙다. 바로 군사문화의 폐단이다.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에서 굳이 계급을 정하려는 이런 악습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한다. 왜? 후배는 선배를 앞서가면 안 된다는 나이(경력) 우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이는 능력이나 벼슬과는 별개다. 사람은 사자나 원숭이와 다르다.

우리는 오랜 분단의 고통과 이념대결로 피곤하기에 군 경력에 유난히 예민하다. 이제 ‘딴따라’를 넘어서 ‘귀족계급’이 된 연예인의 군복무에 첨예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은연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첫째 조건으로 ‘군필’을 요구하는 것이다.​

강타는 수색대를 자원했고, 현빈은 해병대를 선택했다. 2PM의 옥택연은 허리 디스크로 인한 공익근무요원 판정에 불복해 수술 후 현역에 입대했다. 외국 국적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하는 연예인도 적지 않다. 남다른 소명의식이 있었겠지만 공명심과 더불어 약간의 전시적 의도가 없었다고 하기 쉽지 않다. 군복무 기간 2년이 짧지 않지만 꼼수로 그걸 피했다가 영원히 연예계서 퇴출될 경우의 수에 도전할 어리석은 연예인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연예인으로서 한창인 20대에 공백기를 갖는 게 결코 이롭진 않다. 연예인이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텐데 일반인과 달리 큰돈을 벌고 화려하게 즐길 수 있는, 판단력이 그리 명민하지 않은 혈기 왕성한 나이에 경력에 빈 공간을 조성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연예인이 불편한 기색대신 흔쾌히 머리를 깎는 이유는 연예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파간다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메이킹 때문이다. 연예인의 생명력은 대중의 지지가 좌우하기 때문이다.​

유아인은 그동안 ‘시키지 않은 짓’을 앞장서 해왔다. SNS를 통해 사회 전반에 걸친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덕망 있는 NGO 운동가에 못지않은 똑 부러지는 주장을 펼쳐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 연말연시엔 광화문광장 촛불집회 현장에 나타났고, 이를 인증하는 사진을 통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했다.​

아무리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였다고 폄훼할지라도 스타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왜? 그렇지 않은 스타들이 더 많으니까. 누가 뭐래도 지금까지 그가 보인 행보에 근거할 때 그는 소신이 올곧고, 불의에 입을 닫지 않으며, 정의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립된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연출한 거든 진심이든 그는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현역입대 의지를 강력하게 불태웠다. 5차까지 가는 신체검사에 대해 일부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팩트만 놓고 본다면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게다가 면제 이유가 골육종(골종양)이다. 일종의 암이다.

물론 이 병은 전문가에 따라, 환자의 경우 상태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근시나 편평족 등과는 차원이 다른 것만은 확실하다. 일반인이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수준의 가벼운 병이 아닌 것도 명확하다.​

본질은 달라진 군대 ‘문화’에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안보임은 불변의 진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정치권이 헤게모니의 수단으로 악용해온 이념논쟁에 휘말리는 어리석은 짓은 이젠 시대착오임을 자인할 때다. 그래서 달라진 군대문화에 이젠 적응하고 순응해야한다.

최백호는 정든 이들과 헤어지는 아쉬운 밤이라고 ‘입영전야’를 노래했고, 김민우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인이 자신을 잊을까 우려하며 그곳(군대)의 생활이 낯설고 힘들어 연인을 그리워하기도 전에 잠들지 모른다고 매우 비관적으로 ‘입영열차 안에서’를 불렀다.​

하지만 지금의 입영전야와 입대당일은 축제를 방불케 한다. 강타가 수색대를 자원한 건 기왕 온 군대에서 보다 더 활기차게 군 생활을 즐겨보기 위함이었다. 그건 현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통과해야 할 의례라면, 그리고 인생에 단 한 번 있는 기회라면 남들보다 조금 더 익사이팅하게 경험하자는 의미다. 군복무가 국민의 4대의무 중 하나인 건 맞지만 교육의 의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었듯 그것 역시 변화될 필요는 있다.​

군사독재 정권 하에선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마지못해 가는 형태였다면 이젠 기꺼운 마음으로 청춘을 즐기는 방향으로 바뀐 게 군 입대다. 이젠 추억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비록 사고가 있긴 했지만 어린이들은 체험놀이로 단기간 군 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복무한 부대 쪽으로 볼일 보기도 싫다던 어른들도 이젠 돈을 내고 그런 체험을 즐긴다.​

군대가 장병 선택에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하는 게 첨단의 전쟁환경이다. 예전엔 어중이떠중이 다 받아들였지만 이젠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젊은이는 매의 눈으로 걸러낸다. 신체검사는 군대를 건강하게 완성할 유닛을 뽑는 목적인 동시에 해가 될 수 있는 인물을 걸러내자는 의미도 강하다.​

유아인의 병세를 떠나 그런 병을 앓는 자원이 득보단 실이 크다는 군대의 시선은 지극히 당연하다. 군대는 병사를 돌볼 의무가 있긴 하지만 그건 병사가 군에 보탬이 된다는 전제 하에서지, 유아인처럼 자원활용이 불가할 정도로 돌보는 게 앞장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부에서 유아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심의 흑백 여부를 떠나 병무청의 판단에 무게가 강하게 실리는 이유다.​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우리 국군을 몰아세웠던 한국전쟁 당시와 현재는 변해도 매우 다르게 확 변했다. 머릿수가 아니라 첨단무기와 그걸 잘 활용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머리, 그리고 머리를 유지하는 건강한 육체가 중요하다. 그래야 방산비리도 없어지고, 군 조직도 더 건강해진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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