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군함도’(류승완 감독)가 보조출연자였다는 한 누리꾼이 온라인에 올린 부당한 대우 주장으로, 지난 28일 개봉된 ‘리얼’(이사랑 감독)과 촬영 중인 ‘자전차왕 엄복동’(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제작)이 감독교체 등의 이슈로 각각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군함도’의 시시비비는 일단 스리슬쩍 사라지는 분위기. 처우문제를 거론한 누리꾼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다른 출연자와 스태프 그리고 제작사의 글이 잇달아 올라오자 해당 누리꾼은 글을 삭제했다. 그러자 일시적으로 류 감독을 비난했던 여론이 호감 쪽으로 돌아오는 흐름이다.

28일 개봉된 저예산 영화 ‘박열’(이준익 감독)이 순수제작비 115억 원의 ‘리얼’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흥행선두를 달림으로써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소재로 한 ‘군함도’ 역시 애국심을 자극하는 상황이다.

▲ 영화 <리얼> 스틸 이미지

‘리얼’과 ‘자전차왕 엄복동’의 숙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중국 알리바바픽처스로부터 투자를 받은 ‘리얼’은 개봉 전 흘러나온 부정적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대다수 관람객의 불평불만을 이끌어내고 있다.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원래 연출자인 이정섭에서 김수현의 이부형제인 이사랑으로 교체된 데. 이사랑은 제작사인 큐브픽쳐스 대표이기도 하다.

개봉 전 언론시사회 후 각 매체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어지럽다’는 쪽으로 흘렀다. 감독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고, 도대체 어느 지점에 흥행의 포인트를 맞춘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감상평이 주류였다. 개봉 후 관객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수현의 이름값을 믿고 표를 샀다가 감독에게 한방 먹었다고 입을 모은다.

‘자전차왕 엄복동’도 감독교체가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자전거 영웅 엄복동을 소재로 했고, 타이틀롤을 비가 맡았으며, 이범수가 출연과 동시에 제작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일찍이 화제가 됐다. 여주인공은 강소라와 민효린.

▲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포스터

각 매체에 따르면 지난 4월 크랭크인됐는데 30회 차쯤 진도가 나갔을 무렵 김유성 감독이 돌연 촬영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촬영은 계속되고 있다. 김 감독이 있을 때부터 메가폰을 잡고 현장을 지휘했던 이범수가 그대로 ‘총감독’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크랭크업 시기는 8월에서 9월로 밀렸다.

한 매체에 따르면 김 감독의 연출 과정과 결과물에 대해 제작사가 이견을 냈고, 이 때문에 김 감독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고. 결국 결과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제작사 대표 이범수가 메가폰을 잡고 현장을 지휘하는 일이 잦게 됐다는 것.

더불어 근로표준계약서 내용의 불공정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매체는 각 부문 팀장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이 강행군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전했다. 또 야간촬영에 대한 추가수당이나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은 표준근로계약서가 문화체육관광부의 권고를 어겼다는 스태프의 전언도 전했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매체가 입수한 계약서에는 ‘갑은 약속된 포괄근무시간 임금을 주기로 한다. 단, 을이 포괄근무시간을 초과해도 을은 갑에게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기재돼있었다. 문체부가 권고한 근로표준계약서의 조건은 노동은 1일 12시간, 주 52시간까지를 노사 합의로 정할 수 있는데 이 중 밤 10시 이후 촬영이나 휴일 촬영에 대해선 연장근로수당(1.5배)을 주도록 돼있다.

그러나 ‘자전차왕 엄복동’의 계약서는 포괄임금 개념이기에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는 구조. 제작사는 스태프의 급여에 대한 권리를 축소시킨 채 작업을 강행한 셈이지만 현행법 상 근로표준계약서는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라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런 언론의 지적은 사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 사회 구석구석엔 ‘관행’이라는 이유로 ‘을’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갑’에게 노동력을 제공해온 사례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건 일방적으로 ‘갑’이란 자본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자전차왕 엄복동’의 경우 제작사가 문체부의 권고사항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스태프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를 거부할 경우 당장 생계가 어렵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이 더 걱정하는 건 차후에 있다. 만약 이번에 권리를 주장해 당연한 수당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게 소문이 날 경우 다른 제작사가 고용을 꺼릴 것을 우려한 것이다.

▲ 영화 <리얼> 스틸 이미지

물론 정부부처에도 고민도 있을 것이다. 행정부는 각 기업의 정당한 산업활동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 사법부 역시 헌법이 정한 틀 외엔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냥 합리적이고 통상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수 있을 따름이다.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의 수준을 충족시킨다면 ‘더 줘라’ ‘덜 줘라’ 명령할 수 없다. 세금만 꼬박꼬박 낸다면.

문제는 고질적인 횡포에 대한 ‘갑’의 도덕적 무책임감과 이에 관성화된 ‘을’의 노예근성 등의 ‘업계관행’이라는 데 있다. 경쟁계약이 자리 잡은 듯하지만 사실 경쟁계약 자체도 애초에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경우가 많고, 아직도 수의계약이 횡행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일거리를 따내기 위해선 ‘을’이 ‘갑’에게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고, 심지어 거래가 성사될 경우 ‘을’은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한 ‘갑’의 실권자에게 ‘사례’를 하는 게 관행으로 굳어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 나쁜 관행이 방산비리 등을 만연케 함으로써 국정농단사태 같은 엄청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정도로 사회 구석구석을 썩게 만들었다.

▲ 영화 <군함도> 스틸 이미지

영화는 일반적인 산업과는 또 다른 별개의 사업이자 문화·예술 활동이다. 자본의 논리가 개입하고, 그래서 시장의 상업적 구조를 철저하게 따르면서도 감독과 배우 그리고 각 분야 스태프의 디테일한 예술정신이 탄탄하게 뒷받침돼야하며, 그게 강할수록 관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공헌한다.

영화산업이 가진 가장 강한 모순은 제작자(투자사)와 감독의 같은 여정이지만 매우 다른 종착역이다. 한 열차를 탔음에도 제작자는 상품에 도착하고자 하고, 감독은 작품에 다다르고자 한다. 배우와 스태프도 인생의 역작을 만들자는 쪽과, 큰돈을 벌 수 있는 계기나 목적으로 가자는 방향으로 각각 나뉘거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자 한다. 이런 합일할 수 없는 괴리감이 영원히 공존하는 게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태생적으로 ‘감독놀음’이었다. 돈을 누가 대든, 그렇게 대도록 누가 끌어당기든 결국 콘티를 짜고 ‘액션’과 ‘컷’을 외치는 사람은 감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투수놀음’이라는 프로야구조차도 감독의 중요성이 극대화된 현대다.

▲ 영화 <옥자> 촬영 현장

제작사는 어떤 영화에 어떤 감독을 선임할지만 정하면 사실상 그걸로 임무는 끝이다. 물론 말을 잘 듣는 감독으로 선정해 마음대로 부리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다. 봉준호처럼 투자 배급 캐스팅 흥행 완성도 등 전방위에 걸쳐 믿음직한 감독을 고르거나-돈이 많이 든다는 게 맹점-연상호처럼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는 게 교과서다. 둘 다 싫거나 불가능하다면 완벽한 제작시스템을 갖춘 뒤 다루기 쉬운 감독을 앉히든지, 아니면 이범수처럼 메가폰을 직접 잡든지.

스태프나 보조출연자의 노동환경 및 임금체계에 대해선 문체부, 4대 메이저배급사를 비롯한 군소배급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등 유력 관련단체 등이 협상테이블에 함께 앉을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하는 최저임금을 고려하고, 영화산업이라는 특수성을 적용해, 최저임금 및 기준 노동형태를 규정함과 동시에 입법화 추진 혹은 강력한 제재장치 마련이 이해관계의 충돌을 완화시킬 수 있다.

그게 수의계약이 낳을 수밖에 없는 ‘갑질’의 횡포, 억지로 그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는 노예근성, 그리고 ‘인사치레’ 등의 폐단을 막는 왕도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출 만큼 선진화된 한국 영화계가 아직도 그토록 후진적 구조에서 못 벗어난 것은 정부와 업계의 책임이지 열정 노동자의 잘못은 아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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